
희망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희망의 힘>_제롬 그루프먼_넥서스 2005
며칠 전, 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를 둘러보다 좌절감을 느꼈다. 아무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이토록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책들이라니. 중고교시절 ‘아, 서울대학교’와 같은 공부법 서적에 미쳐본 사람, 대학시절 성공학 서적에 미쳐본 사람은 아마 지금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변해야 하고 발전하고 싶은데, 이제 더 읽을 것이 없다고. 정녕 자기계발서적을 졸업해야 할 때가 온 거냐고.
“~~하게 행동해라”는 식의 시중 신간 자기계발서들이 시시하게 느껴질 땐, 자기계발서의 고전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돌고 도는 멘트들이라면, 그것의 원형이 어떠했나를 봐두는 게 의미가 있으니까. 언론에서 발표하는 2010년의 자기계발서 키워드가 ‘‘행복’이라면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어온 목적은 ‘희망’이었다. 더 잘될 수 있다는,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희망에 대한 메시지들이 자기계발 시장을 리드해왔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딱 5년 전부터만 되짚어 봐도 그랬다.
2년 전 기자 시절 흥미로운 기획을 하나 준비했다. 이 세상에서 일과 관련된 말을 꺼내기 가장 힘든 직업은 무엇일까? 그런 직종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할까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기획이었다. 특집 기사의 제목은 ‘설득의 법칙’. 고객을 설득하기는커녕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은 직종의 전문가들에게 설득의 노하우를 배우자는 취지였다.
이 특집을 구상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직업 때문이었다. 기자 역시 설득이 요체인 직업이었다. 기자인 나는 예민한 이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취재원에게 불쑥 전화를 걸든지 찾아가서, 어떻게든 말을 붙여야 하는 처지였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몸소 경험하면서, 난 그와 비슷한 일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그것도 그 직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들의 비결에 관심이 생겼다. 당시 특집 기사의 취재 대상은 공작원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어야 하는 국가정보원의 간부나, 싸이코패스에게서 범행을 자백받아야 하는 경찰의 프로파일러(범죄의 유형을 분석함으로써 범죄 수사를 해나가는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었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하는 암 전문의 박재갑 서울대 교수도 당시 인상적인 취재원이었다. 그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암 진단 결과를 전하는 방식은 여느 전문의와 달랐다. 최대한 희망적으로 전했다. 치료와 자기 관리만 열심히 한다면 암 진단에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식이었다. 그는 다른 의사들이 무미건조하게 진단 결과와 통계만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발암 사실을 통보하는 요즘 세태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그런 통보에서 일말의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암과의 싸움 1라운드에서부터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희망이 치유와 치료의 첫 걸음이라는 주장은 사실 박 교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희망의 위력에 대한 임상 실험과 보고를 한 암 전문의도 있다. 미 하버드대 의대의 제롬 그룹먼 교수는 실제로 암 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희망을 암시했다. 그 결과 이들 환자 상당수가 절망에 빠진 환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치료 효과를 보였다. 그는 2005년 이런 주장을 담은 <희망의 힘>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이 책은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희망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준 역사적 예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일 것이다. 헝가리 본대에서 파견된 수색분대가 알프스 산맥에서 조난당했다. 폭설과 한파가 겹친 탓에,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나자 본대는 수색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꼭 4일째 되던 날 수색대가 본대를 찾아왔다. 사상자 한 명 없는 멀쩡한 상태였다. 놀란 상사들이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분대장이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눈 내린 산 속에서 절망적이 됐죠. 그런데 분대원 가운데 한 명이 알프스 산맥 지도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걸으면서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분대장의 설명을 듣고 그 지도를 건네받은 상사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지도는 알프스 산맥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 지도였던 것이다. 길을 잃은 수색대의 입장에서는 지도야말로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던 셈이다.
합리적 희망이냐, 헛된 희망이냐 – 역사적 경험
그룹먼의 주장 이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의료계에서는 때 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의료계 일각에서 암 환자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룹먼은 우리가 아는 미래와 의학의 불완전성으로 맞섰다. 누구도 어떤 진단의 엄밀성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장담할 수 없는 바에야, 이를 가능한 희망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막연히 헛된 희망만 불어넣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합리적 희망이야말로 가공할 위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스톡데일의 역설(Stockdale’s Paradox)이 역설하는 것도 바로 합리적 희망이다. 미국의 제임스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 월맹군에 포로로 잡혔다. 그 후 무려 8년간의 하노이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종전 후 자신과 동료들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회고하던 중 그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됐다. 곧 풀려날 것이라고 무조건 낙관하던 동료들이 의외로 일찍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특별한 근거 없이 조만간 석방될 거라고만 믿었던 전쟁 포로들은, 쉽게, 또 자주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건강을 해쳤다. 반면 석방될 것이라는 점은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석방 시기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던 자신과 동료 일부는 수용소 생활을 훨씬 더 잘 견뎠다. 이 예를 통해 스톡데일은 단순한 희망과 합리적 희망을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보통 사람들, 특히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사회적 분열상에 더해 폭설·한파까지 겹쳐 여느 해보다 힘겨운 새해 초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필요한 것이 그룹먼과 스톡데일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희망은, 그것도 합리적인 희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는 통찰력 말이다. 신간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망설이던 분들께 자기계발서의 고전, <희망의 힘>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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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힘이라, 의미 심장하네요^^ 오래된 책인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글쓴이처럼 자기계발서적을 좋아하는 저한테 반가운 책이네요.
읽던책 마져 다 읽어야겠네요. 다음에 뭐 보지하면서 아껴보고있었는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