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스 미디어, ‘독특한 소재·1인칭 시점·고품질’로 세계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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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은 혁신적인 실험들로 주목받고 있는 해외 디지털 뉴스 미디어와 관련 인물을 소개하는 새로운 기획 연재 ‘디지털 뉴스 미디어 톺아보기’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연합뉴스 미디어랩의 한운희 기자와 리틀베이클라우드의 박상현 이사가 번갈아가며 꾸려갈 예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마약쟁이 20대 청년이 만든 언더그라운드 잡지에서 기업 가치 3조 원의 거대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한 ‘바이스 미디어’를 소개하며 연재의 첫 회를 시작한다. <편집자주>

1994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마약 재활 센터를 나온 25살 청년 수루시 앨비는 친구 개빈 맥긴스를 찾아가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잡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들려준다. 이를 들은 개빈 맥긴스는 유럽에 거주 중인 불알친구 셰인 스미스를 데려온다. 마약, 교도소 생활, 펑크 음악 등을 다루는 16쪽짜리 무가지 ‘몬트리올의 소리(Voice of Montreal)’는 그해 10월 세 사람의 합작품으로 탄생한다. 발행은 아이티 출신 이민자 알릭스 로랑이 맡았다. 당시 몬트리올시가 진행하던 이민자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세 사람의 급여는 몬트리올시의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셰인 스미스는 광고 영업을 담당했는 데, 그가 따온 광고비는 잡지 출판 비용으로 쓰였다. 1995년 세 사람은 부모로부터 1만 5,000달러를 빌려 ‘몬트리올의 소리’를 발행인으로부터 인수하고 ‘보이스(Voice)’로 잡지 이름을 줄인다. 이듬해 다시 ‘오(o)’를 떼어낸다. 우리가 아는 그 ‘바이스(Vice)’는 이렇게 탄생한다. 1

언더그라운드 무가지에서 동영상 전문 미디어로

[사진1] 다큐멘터리 ‘바그다드의 헤비메탈’ 초반부 수루시 앨비가 방탄복을 착용하는 장면.8 이 다큐멘터리에는 바이스 미디어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수루시 앨비가 직접 출연한다.

[사진1] 다큐멘터리 ‘바그다드의 헤비메탈’ 초반부 수루시 앨비가 방탄복을 착용하는 장면. 이 다큐멘터리에는 바이스 미디어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수루시 앨비가 직접 출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바이스 미디어는 ‘마약쟁이 20대 청년이 주도해 만든 언더그라운드 무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바이스는 1996년 첫 번째 웹사이트인 바이스랜드닷컴(viceland.com)을 열며 디지털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었다. 1998년은 바이스 미디어가 규모를 양적, 질적으로 확장한 원년이 된다. 몬트리올시에 국한하지 않고 캐나다 전국판과 북미판을 발간하기 시작한다. 이때 마침 커지기 시작한 닷컴 버블은 바이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캐나다 출신 인터넷 기업인인 리처드 스잘윈스키는 바이스에 약 50만 달러를 투자한다. 바이스 미디어는 본사를 뉴욕 맨해튼으로 옮기고 미국 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닷컴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이듬해 투자자는 바이스 미디어와 관계를 청산한다. 2001년 결국 바이스 미디어는 200만 달러의 빚을 안은 채 수루시 앨비의 표현 그대로 브루클린의 ‘황무지 같은’ 창고로 본사를 옮긴다. 2

바이스 미디어에게 가장 어려웠던 2000년대 초반은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스다움’을 가장 탄탄하게 갈고 닦는 것과 동시에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의 기초를 놓는 시기가 된다. 레코드 레이블을 만들고 도서출판 부문을 시작하며 ‘바이스 필름’을 만들어 비디오카메라를 본격적으로 집어 든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사업가로서 바이스 미디어 곳곳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셰인 스미스의 존재감도 이때 더욱 선명해진다. 바이스 미디어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성공적이었는지는 2005년 개빈 맥긴스가 밝힌 매출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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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미디어는 잡지 45%, 리테일 숍 7%, 출판 부문 8%, 영화 10%, TV 제휴 10%, 레코드 레이블 20% 등의 매출 비율을 갖춰 종이 기반 무가지로서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점점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기틀을 닦고 있었다. 3 같은 해 12월 바이스 미디어는 뉴욕을 포함 몬트리올, 런던, 호주, 독일, 일본 등 세계 10곳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글로벌 미디어의 골격을 갖춘다. 19~25세 여성과 25~30세 남성을 주요 목표 오디언스로 선언하는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다음 해 초 바이스 미디어는 1,000만 달 러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4 200만 달러짜리 빚더미에서 절치부심한 지 5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탄탄하게 가꾼 바이스 미디어의 골격에 본격적으로 근육이 붙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MTV의 소유주 바이어컴과 함께 시작한 온라인 동영상 네트 워크 VBS.TV가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 5 협업은 브루클린 창고 시절 시작한 바이스 필름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MTV가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형식이었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으로 유명한 스파이크 존즈가 VBS.TV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것은 바이스 미디어를 더욱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6 같은 해 제작한 이라크의 스래시 헤비메탈 그 룹 ‘아크라시카우다’를 주제로 한 84분짜리 다큐멘터리 ‘바그다드의 헤비메탈(사진1)’은 바이스 미디어만의 콘텐츠 개성과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작품은 토론토와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 성황리에 상영됐고 3개 부문에 걸쳐 상을 받기도 했다. 7 바이스 미디어가 이제 더는 종이잡지 미디어가 아닌, 경쟁력 있는 동영상 전문 미디어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기업 가치 무려 45억 달러

[사진2] ‘이슬람 국가’ 동영상과 유튜브 시청 통계.13 일별 조회수 그래프를 보면 동영상 공개 이후 지속해서 소비됨은 물론 최근에 이르러서도 콘텐츠 소비량이 증가한 시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통계는 2016.4.23. 기준).

[사진2] ‘이슬람 국가’ 동영상과 유튜브 시청 통계. 일별 조회수 그래프를 보면 동영상 공개 이후 지속해서 소비됨은 물론 최근에 이르러서도 콘텐츠 소비량이 증가한 시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통계는 2016.4.23. 기준).

이후 바이스 미디어는 2011년부터 세 군데 투자자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5억 8,000만 달러를 투자받는 것으로 그 가치를 도도하게 유지하고 있다. 8 이 중 최대 규모는 2015년 A&E네트워크로부터 투자받은 2억 5,000만 달러인데, 당시 바 이스 미디어의 기업가치는 25억 달러였다. 9 워싱턴포스트 인수 가격(2.5억 달 러)의 10배, 파이낸셜타임스 인수 가격 (13억 달러)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참고로 가장 최근 바이스 미디어의 기업 가치는 약 42~45억 달러 규모다. 10

정부 지원금으로 시작한 바이스 미디어가 40억 달러 넘게 가치를 평가받을 정도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바이스 미디어 고유의 콘텐츠다. 섹스, 범죄 등을 뜻하는 바이스(vice)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섹스, 마약, 폭력, 전쟁을 소재로 다룬다는 것도 특징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바이스 미디어는 이러한 소재를 다룰 때 철저하게 1인칭 시점을 취한다. 기자는 언제나 긴박 하고 민감한 현장 깊숙이 들어가 카메라 즉, 오디언스를 향해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넨다. 판단은 콘텐츠 를 경험하는 오디언스가 내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2014년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 메디안 다이리에가 이슬람국가(IS) 대원 몇 명과 3주 동안 동행하며 제작한 5부작 다큐멘터리 ‘이슬람 국가(The Islamic State)’는 바이스 미디어다운 콘텐츠가 무엇인지 단박에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1,000만회를 넘겼고 누적 시청 시간은 278년 (1억 4,600시간)에 달한다. 댓글 또한 3만 개 가까이 되는데 이를 통해 “콘텐츠를 주고 해석할 여지는 남긴다” 11는 바이스 미디어의 전략이 잘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소재와 시점의 독특함이 바이스 미디어 동영상 콘텐츠의 전부는 아니다. 공동 창업자인 셰인 스미스는 일찍부터 ‘프리미엄 동영상 콘텐츠’에 관한 집착을 보여왔다. 그래서 바이스 미디어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프리미엄 콘텐츠 제작에 총력을 기 울인다. “온라인용으로 만드는 콘텐츠는 텔레비전용만큼이나 훌륭해야 한다” 12는 게 바이스 미디어 의 기준이다. 이러한 고품질 콘텐츠에 대한 고집은 바이스 미디어의 콘텐츠를 인터넷, 모바일, 케이블, 지상파 등 어떤 플랫폼에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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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료방송 채널인 HBO와 2018년까지 특집 콘텐츠를 32편 방영하기로 계약한 결과도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다양한 매출원 확보와 멀티 플랫폼 운영은 2016년 현재까지도 바이스 미디어의 변치 않는 전략이다. 바이스 미디어는 바이스닷컴을 포함 총 12개의 버티컬 채널을 운영 중이다. 뉴스부터 시작해 기술(마더보드 Motherboard), 여행과 음식(먼치즈 Munchies), 패션(I-D), 여성 문화(브로들리 Broadly), 남성 스타일 (멘스 럭셔리 & 스타일 Men’s Luxury & Style), 익스트림 스포츠(파이트랜드 Fightland) 등에 이르기까지 18~34세 젊은이가 관심 두는 영역을 최대한 집중 공략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버티컬 채널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채널 특화를 충분히 이루되 필요하다면 하나의 플랫폼처럼 작동하도록 하는 게 바이스 미디어의 핵심 전략이다[그림 참조]. 이러한 디지털 동영상 상품은 바이스 미디어 전체 상품의 약 80%를 차지한다. 여기에 브랜드와 상품 전략 조 직인 버추(Virtue)도 눈여겨 볼 곳이다. 버추는 현재 나이키, 보다폰, 델, 노스페이스 등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 13 물론 바이스 북스, 바이스 레코드 등과 같은 고전적인 사업 영역도 여전히 존재한다. 바이스 미디어의 시작인 잡지 역시 여전히 발간 중인데, 매출의 5%만 차지할 뿐이다. 14 바이스 미디어는 누가 봐도 디지털 미디어 기업이다.

바이스 미디어만 할 수 있는 일

* 가장 안쪽은 바이스 미디어의 각 채널 브랜드이며 그 밖은 각 채널과 연결된 파트너사들이다. 가장 바깥쪽은 각 채널 브랜드가 어떤 사람을 다루고 대상으로 하는지 적혀 있다.17

* 가장 안쪽은 바이스 미디어의 각 채널 브랜드이며 그 밖은 각 채널과 연결된 파트너사들이다. 가장 바깥쪽은 각 채널 브랜드가 어떤 사람을 다루고 대상으로 하는지 적혀 있다.(출처 : 바이스 디지털. 미디어 키트. 2016. 1.)

언더그라운드 무가지에서 거대한 디지털 미디어로 진화에 성공한 바이스 미디어는 다른 곳에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시점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신만의 특질을 지키고 성장시 킬 수 있는 튼튼한 뼈대(버티컬 채널과 플랫폼)도 다져나가고 있다. 무엇이 바이스 미디어를 이렇게 만 들었을까? 어떻게 하면 바이스 미디어의 장점을 잘 흡수해 우리도 진화할 수 있을까? 셰인 스미스의 말에서 곱씹으며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조직 자체를 뜯어내야 한다. 전혀 다른 방식으 로 일해야 하고 TV나 광고, 영화 쪽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채용해야 하며 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중략) 내가 이 모든 걸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내 비결을 누설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이다.” 15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월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5월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고의 저자는 한운희 연합뉴스 미디어랩 기자입니다.  <블로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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