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저널리즘=‘천천히’ ‘팀’으로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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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사람, 팀, 공유, 협업, 그리고 이야기….

‘데이터 저널리즘’이라는 비교적 낯선 분야에 대한 토론 공간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단어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인 용어가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참가했는데 정작 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너무나 익숙한 말들이었다. 4월 11일 미국 뉴욕 AP통신 본사에서 열린 ‘데이터 저널리즘 서밋 2016’에서는 이처럼 언론이 보다 깊이 있는 진실을 제대로,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문가 들은 한목소리로 ‘공유’와 ‘협업’을 강조했다.

“가족에게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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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MN 주최로 미국 뉴욕 AP통신 본사에서 열린 ‘데이터 저널리즘 서밋 2016’. 올해는 4월 3일 ICIJ가 발표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 사례가 자세히 소개됐다.

이번 서밋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국제 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소속으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지아니나 세그니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전한 프로젝트 후기였다. 4월 3일 ICIJ는 사상 최대 규모의 역외 탈세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매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등 각국 지도자와 전·현직 정치인들이 연루됐다고 폭로됐다. 아이슬란드 총리는 결국 사임했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 프로젝트는 분량부터 압도적이었다. 파나마 법률회사인 모색 폰세카의 내부 문서를 입수하면서 수집한 데이터의 양은 문서로 1,150만 건, 무려 2.6테라바이트(TB)의 용량이었다.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 관련 데이터 양이 1.7기가바이트(GB)였고 2013년 ICIJ의 조세회피처 폭로 관련 데이터가 260GB였다.

세그니니는 “기존 인력으로는 10초당 한 건의 문서를 봐야 1년 만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라고 표현했다. 데이 터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 역시 “지금까지 의 프로젝트와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용량의 일이었고, 이런 식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우리도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자료의 80% 정도는 이미지 형식만으로 존재했다. 사진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캐야 했고 자료에 포함된 200여 개 국가의 21만 4,000여 개 기업들 중에서 탈세 기업 정보를 일일이 가려내야 하기도 했다.

블로터아카데미

“Key is sharing.” 대형 프로젝트의 취재 후기가 간단히 설명됐다. 방대한 자료는 ‘공유’를 통해 실마 리를 풀어갔다. 이 자료를 처음 입수한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이 ICIJ에 건넸고 ICIJ는 전 세계 100여 개 언론사와 공유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뉴스타파가 참여했고 영국 BBC와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호주 ABC, 일본 아사히신문 등이 동참했다. ICIJ는 자료조사팀을 꾸렸고, 많은 양의 데이터를 모아 번역, 분석을 하고 또 시각화했다. 세그니니 교수는 정보를 나누는 과정을 소셜 네트워크의 형태로 비유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처럼 누구에게나 공개된 자료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이 ‘비밀’을 공유하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만의 전문적인 지식을 서로 나누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자료는 20개 언어로 번역됐고, 법률상 문제를 수시로 검토하기 위해 국적이 다른 4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50여 개국 140명의 정치인들에게 역외 탈세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200여 명이 전화기를 붙잡았다. 이렇게 완성된 자료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다양한 그래픽을 통해 시각화했다. 그 결과 파나마 페이퍼스는 발표가 되자마자 전 세계로 퍼져나가 영향력을 더 높였다. 진행 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점을 묻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이 일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것이 고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큰 비밀을 400명이 공유하고 있었는데 1년 동안 철저히 비밀이 지켜진 것이 스스로도 놀랍다”고 덧붙였다. “보안 문제 때문에 이번 주만 해도 벌써 서버를 일곱 번 갈아치울 만큼 (비밀을 지키기가) 힘든 일”이라면서 “그런데도 이렇게 철저히 지켜진 것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자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은 신뢰를 쌓는 과정이기도 했다”고도 덧붙였다. 발표가 끝난 뒤 그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데이터 저널리즘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이 보편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 “데이터 저널리즘은 꼭 팀으로만 운영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이 나왔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컬래버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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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그니니 교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심층적인 분석을 해야 하는 팀이기 때문에 데이터 저널리즘에 특화된 사람들이 필요하다”면서 보편화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이 분야는 개인적으로 일하기보다는 반드시 팀으로 일해야 한다”면서 “보통 뉴스룸에는 사진부, 취재부서 등이 나눠져 있지만 데이터 저널리즘은 한 팀에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 ‘컬래버레이션’의 강조였다. 또 기자에게 “기사를 쓰는 것과 데이터 저널리즘을 같이 가르치는 것부터가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만큼 ‘특별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편집국 환경에 있는 기자들을 데이터 저널리스트로 만드는 건 불가능할까. 세그니니는 “천천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서 톰슨로이터의 데이터 분야 대표 에디터인 레그 촤는 “그룹 활동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데이터 저널리즘은 ‘뉴 컬래버레이션’”이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여러 패널들의 발표가 이어질수록 데이터 저널리즘을 위해선 ‘팀’을 꾸려서 ‘천천히 일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요건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비영리 매체인 프로퍼블리카의 리차드 토플 대표가 2009년에 설립된 프로퍼블리카가 어떻게 데이터 저널리즘의 선두주자가 됐는지 실제 기사들을 소개한 부분은 좀 더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프로퍼블리카는 ‘흑인이 백인보다 빚을 질 확률이 더 높다’ 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실험을 펼쳤다. 직접 기자들이 세인트루이스와 쿡 카운티 지역에 1년 넘게 거주하며 인구센서스의 형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단다. 무려 50만 건이 넘는 사례를 모았고 일일이 분석했다. 그 결과 세인트루이스에서는 흑인들에게 4만 5,000여 건의 빚 소송이 걸려 있었다. 이 데이터 는 정부 기관과 관련 기업들에게도 제공돼 흑인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했다.

일간지 기자로서 좀 더 현실적인 조언으로 와 닿았던 것은 셰릴 필립스 스탠퍼드대 데이터 저널리즘 교수의 발표였다. 시애틀타임스 기자 출신인 그는 “데이터 저널리즘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읽어야 하는 양이 많아서 기자들의 불만을 사기가 쉽다”고 말문을 열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앞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프로퍼블리카의 사례를 접하고도 왠지 우리 현실에서는 아직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무엇보다도 ‘천천히 일할 준비’가 덜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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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교수는 ‘기자’들이 데이터 저널리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짚었다. 경력이 있는 기자라 해도 데이터 저널리즘을 시작할 때에는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다만 아직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도 데이터 저널리즘 수업이 마련돼 있지 않을 정도로 제한된 분야인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필립스 교수는 “뉴스룸에 ‘디지털 트레이닝’이 보편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하는지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자들이 디지털 문화에 더 익숙해져 자기 자신만의 특유한 정보 소스를 갖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러한 정보를 나누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13년 5월 워싱턴주 스카짓강에서 다리 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애틀타임스는 피해자들을 분별하기 위해 카운티 웹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서 유권자 정보를 스프레드시트로 정리한 다음 한 명씩 이름을 대조해 신원을 확인했다. 또 사고 발생 며칠 뒤에는 2012년 전국의 교량 목록을 토대로 워싱턴주에 143개의 다리가 여전히 구조적 결함이 있고 이 가운데 81개는 지어진 지 50년이 넘었다는 등의 내용을 분석했다. 지도에 각각의 다리 위치를 표시해 인터랙티브 뉴스로 눈에 띄게 완성했다.

진실의 한곳을 바라보며

파나마 페이퍼 탐사보도 프로젝트.

파나마 페이퍼 탐사보도 프로젝트.(이미지 : 파나마 페이퍼 프로젝트 웹사이트)

서밋에서는 데이터를 어떤 툴을 이용하여 수집할 것인지, 어떻게 시각화를 할 것인지 등의 기술적인 내용도 다뤄졌다. 특히 한눈에 알기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각화 역시 데이터 저널리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필립스 교수는 기자들을 향해 가장 원론적인 주문을 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자료를 접하게 되기 때문에 기자들이 ‘진실성’을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실성 있는 정보를 적확하게 이용할 줄 아는 것이 기자로서 데이터 저널리즘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스티브 도이그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도 언급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던 도이그 교수는 “데이터는 나날이 발전하고 숫자도 급증하고 있다”면서 “여기서 어떻게 분별해내고 이용하는지가 중요하며 가치 있는 스토리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언론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이 분야를 시작할 때 사람을 ‘연결’하는 데 우선 힘을 썼다”고 소개했다. “다른 지역, 문화, 종교, 언어를 넘어선 데이터 저널리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냈고, 각 나라에 분포돼 있는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우리를 움직였다”는 설명이다.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고 방대한 양을 다뤄야 하는 데이터 저널리즘이 여전히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을 깊이 있게 추적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어렵고 먼 분야이기만 해선 안 된다고 느꼈다. “그것은 우리가 한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나마 페이퍼스’에 참여했던 세그니니 교수의 이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1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월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5월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고의 저자는 허백윤 서울신문 온라인뉴스부 기자입니다. <블로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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