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가 해킹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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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컴퓨터란 깨진 창문과 같아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해킹)은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니다.”

FBI가 아동포르노 사이트에 악성코드를 심어 접속자들의 컴퓨터를 해킹한 사건에 대해 6월23일 미국 법원이 무죄를 판결했다.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개인 컴퓨터 해킹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사건은 이랬다. 아동포르노 사이트 플레이펜은 ‘토르‘로만 접속된다. ‘토르’는 접속 경로를 암호화해 웹 탐색 경로와 접속 기록을 남기지 않는 익명성 기반의 오픈소스 웹브라우저다. FBI는 플레이펜 서버를 압수해 ‘콘허스커'(Cornhusker)란 악성코드를 심었다. 플레이펜에 접속하는 컴퓨터를 감염시켜 토르의 익명성을 무력화시키는 악성코드다. 사이트는 계속 열어두었다. FBI는 접속자의 IP 주소를 수집해 그들을 처벌했다. 기소된 이들은 FBI가 영장 없이 컴퓨터를 해킹한 것을 문제삼아 맞소송을 걸었다.

6월23일 판결은 플레이펜 접속자들이 FBI 의 영장없는 해킹을 고소한 사건 중 하나에 관한 것이었다. 이 판결에서 헨리 모건 판사는 FBI의 손을 들어줬다. “FBI가 컴퓨터를 해킹한 것은 수정헌법 4조를 침해하지 않으며 영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수정헌법 4조는 국민의 사생활 침해를 막는 법이다. 정부에 의한 부당한 수색, 체포, 압수에 대해 국민이 신체, 가택, 서류의 안전을 보장받음을 약속하고 있다.

사진 : 플리커, Antonio Roberts. CC BY-SA.

사진 : 플리커, Antonio Roberts. CC BY-SA.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4조가 수사당국과 충돌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모건 판사는 1998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마약거래상들이 구속된 전례를 들었다. 한 경찰관이 블라인드가 드리워진 창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깨진 창문 틈으로 블라인드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그 집 안에선 마약거래상인 카터와 존스, 그리고 그들에게 코카인을 구매하고 있는 거주자가 있었다. 경찰은 곧 그들을 제압하고 집과 차안에서 마약을 압수했다. 마약거래로 기소된 카터는 애초에 경찰이 집 안을 들여다 본 것은 수정헌법 4조를 침해한 것이므로 집 안 수색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고법원은 카터가 단순한 손님이 아니며 집 안에서 마약거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정헌법 4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출처 : https://www.law.cornell.edu/supct/html/97-1147.ZS.html)

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렸다. 이 주석에 따르면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는 해킹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모양이다.

2007년 나인스 서킷(미국 서부 15개주 지방법원의 상위법원)은“단지 네트워크에 연결된 것이 개인 컴퓨터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제반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9년간 이 입장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제 웹에 연결된 컴퓨터가 해킹에 면역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입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세상에서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는 해킹될 수 있고,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 눈에 보일 듯 선명합니다.

판결에 대한 반론도 팽팽하다. 같은 날 전자프론티어재단 마크 루몰드 변호사는 이를 두고 “오늘 위험하도록 허점투성인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집에서 컴퓨터를 쓰는 평범한 개인들도 언제든지 수사를 빌미로 해킹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몰드는 ”법 집행은 앞으로 자유롭게 영장 없이, 명분 없이, 근거 있는 의혹도 없이 당신의 컴퓨터에서 정보를 찾고 갈취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범죄수사를 위해 공권력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그에 더해 현대인의 일상이 낱낱이 기록되는 컴퓨터와 디지털 기기가 본래부터 해킹당할 ‘운명’이라는 발언은 본격적인 감시사회의 전주곡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루몰드 변호사는 “더 이상 우리의 디지털 기기들이 침해받지 않도록 수정헌법 4조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항소 등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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