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IT

가 +
가 -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1863년 11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남북전쟁의 포화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게티스버그에서 남긴 연설의 결론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되지 않아 흑인노예 문제 등을 둘러싼 남부와 북부의 첨예한 대립이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 국가의 통합을 위해 그가 남긴 원칙이자, 사명, 그리고 비전이었다. 이제 그 메시지는 민주국가를 지향하는 전세계 국가들에서 공유되고 있다.

시대는 흘러 우리는 이제 그 동안 분열되었던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하나로 합쳐지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회의 아날로그 영역들이 디지털화되고 있다. 조금 더 지나면 종이신문보다 전자신문을 더 많이 접하 듯, 전자책이 종이책을 압도할 지도 모른다. 그에 따라 오프라인에 잔존하던 지식과 정보가 모두 디지털화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는 실로 눈 깜짝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 회로(wire)를 타고 흐르는 전자(electronics)는 빛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걷고 뛰고, 마차와 자동차, 기차와 비행기를 말하던 시대에서 빛을, 그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디지털 영역들이 이제는 ‘소셜화’되어 간다. 독점적 컴퓨터 운영체제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서 시작된 오픈소스 운동(opensource movement)이 대안 운영체제를 넘어 ‘위키피디아’로 확대됐다. 그리고 이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의 붐과 함께 사회 전체의 일반적 상식이자, 보편적 문화로 정착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만남이 꼭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일까?

과거 산업시대를 돌아볼 때, 인간과 기계의 만남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만으로 가지 않았다. 산업시대가 개막하였을 때, 노동자들은 기계에 위협을 느끼고 그것을 부수려고 했다. 사람들은 기계의 효율성에서 풍요의 약속을 보기보다는 고용 불안정의 위험성을 더 크게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뇌를 모방할 기계의 발전이 우리의 지성을 무력화시킬 것이라 믿게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니, 꼭 그러한 극단적인 상상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넷(Net)’ 세계는 유익한 정보 뿐 아니라 유해한 정보의 확산을 위해서도 탁월한 통로라는 점, 개인 영역의 침투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점 등 많은 위험성과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가 균형점이 되어야 할까?

여러 잠재된 위험을 생각한다면, 웹이 중심이 되어 새롭게 개편되어가는 사회 생태계에서 우리 자신을, 그 연결된 코드를 뽑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대세에 역류하는 그런 행위는 불가능하다. 디지털이 보편화되어 간다는 것은, 전기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다.

남은 길은 어떻게든 이 디지털과 아날로그 간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에 타협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타협안의 핵심은 기술과 사회, 인간과 기계가 융합되는 사회에서 ‘기술이 인간을 위해서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결국 위의 논쟁들도 핵심은 기술발전이, 웹을 중심으로 한 사회 생태계의 형성과 성장이 우리 사람들에게 과연 좋으냐 나쁘냐는 것을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의 방향성,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누구 못지 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바로 MIT 미디어랩의 설립자이자 미국의 유력한 IT 전문지인 ‘와이어드'(Wired)의 창립과 발전에 기여한, 그리고 현재는 ‘100달 짜리 노트북으로 제3세계 아동의 교육 문제 해결하기'(One Laptop Per Child)에 몰두하고 있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loas Negroponte)다.

그가 세운 MIT 미디어랩에서 학위를 받은 바 있는 윤송이 전 SK 상무의 2004년 5월 1일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의 통찰력에 대한 한 단면이 보인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TV는 무선, 전화는 유선이 일반적이던 때 기술의 진보 방향이 그에서 역전하여 진행될 것을 예고했다. 즉 TV는 유선, 전화는 무선으로 간다. 그리고 그 예측은 들어맞았다. 그는 그렇게 감각있는 예언자고, 통찰력 있는 분별가다.

바로 그 네그로폰테가 잘 나가는 MIT 미디어랩과 와이어드의 일선에서 물러나 제3세계를 누비면서 열성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저 ‘100달러 짜리 노트북를 전세계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운동’이다.

네그로폰테의 기술과 사회에 대한 혜안을 생각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앞서 질문을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의 이 대담한 무한도전은 사실 향후 십 오년 이후의, 우리가 가야만 할 기술 트렌드, 사회와 IT가 창의적으로 절충할 수 있는 균형점에 대하여 어떠한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그가 전세계 빈곤국가의 아이들에게 돌리고 있는 ‘저가 노트북'(XO Laptop)을 잘 보자. 그 노트북은 철저히 아이들 중심적이다. 아이들이 갖고 놀기 쉽게 단순하고 예쁘고, 던져도 괜찮을 만큼 튼튼하다. 동력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곳이므로 아이들이 자가 동력기를 돌리면서 놀다가 충전이 되게 만들어 놓았고,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므로 무선랜을 통한 네트워킹 서비스를 지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맹인 것을 감안해, 모든 것은 글자 하나 없이 다 그래픽으로만 진행 가능하다. 완전한 GUI(Graphic User Interface)다.

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IT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대답은 간결하고, 분명하고, 아름답다. 단순한 진리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IT’다.

기술혁신만을 위한 기술혁신, 스펙만을 위한 스펙은 맹목적 개발비용과 추가학습에 따른 불편만 높일 뿐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이용자의 혜택, 그들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IT, 저 저가 노트북은 아이들을 구하고, 교육을 살리고, 빈곤을 퇴치한다.

어느 쪽이 더 지속 가능한 트렌드인가? 사람없이 기계가 남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 기계도 같이 산다. 따라서 후자가 정답이다. 지속 가능한 기술이란 결국 쓰는 사람의 고유한 필요와 욕구를 위해 최적화된 기술이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것이다.

“이윤만을 위한 IT는 사라지고 유행만을 위한 IT는 시들겠지만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IT는 결코 미래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나갈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새로운 균형점, 그 기반이 되는 기술과 사회의 합의점, 그들 간의 원칙, 그리고 공동의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