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에서 글꼴까지, 저작권의 아슬아슬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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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 일입니다. 20세기폭스 등 미국 6개 드라마 제작사가 미국드라마 한글자막 제작자 15명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했던 사건 말입니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수많은 소송은 있었지만, 자막 제작자에 대한 고소는 처음이었습니다. 영상 업로더에 대한 소송은 명백히 불법으로 인식돼 큰 이견이나 논란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금전적 대가를 바라지 않고 취미삼아 활동해온 자막 제작자들을 형사고소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꽤 크게 일었습니다.

당시에 많은 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다뤘습니다. 덩달아 저작권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후, 소송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지금도 많은 미드 팬들이 영상과 자막을 일명 ‘웹하드’라 불리는 파일 호스팅 서비스나 토렌트에서 얻고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든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할 상태에 놓여있는 것 아닐까요?

대부분의 법이 어렵듯 저작권법도 참 복잡합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당시 자막 제작자 소송의 결과를 전하고 이어서 합법과 불법사이에 놓인 저작권법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자막 임의로 만들어 공유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불법’

먼저 자막을 임의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불법입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지 않고 소리를 옮겨 자막을 만드는 것은 불법복제입니다.  영어자막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 역시 2차적저작물로서 제재를 받습니다. 물론 만든 자막을 혼자 사용할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금전적 대가 여부와 상관없이 온라인에 자막을 올려놔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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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자막제작자 중 이 15명이 선택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고소인인 6개 드라마 제작사의 의중에 달린 것이라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만, 가장 타당한 추론으로 그들이 ‘헤비 업로더’였음을 들 수 있습니다. 조재언 서울서부경찰서 사이버팀장은 “이들 15명이 올린 자막이 총 5천건에 이른다”고 당시 기사에서 밝혔습니다. 오픈넷의 박지환 변호사는 “건수가 많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라며 “한두번 자막 만든 사람보다는 꾸준히 만들어낸 자막 제작자들을 고소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픈넷은 당시 피고소인 15명의 자막 제작자 중 2명에게 법률지원을 했습니다. <블로터>는 오픈넷을 통해 이 2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형사재판으로 넘겨지지 않았고, 합의금도 요구받지 않았습니다. 경찰조사를 받은 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난 것입니다. 이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 자체는 인정되나 고소는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민사가 아닌 형사고소를 취했고, 정말 손해를 입었다면 손해배상을 요구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아했습니다. 박지환 변호사는 이를 “이어질 미국 콘텐츠 유통업체의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일종의 교통정리 및 사전작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팬들이 만든 자막을 콘텐츠 유통사가 상업용 자막으로 무단 도용한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자막 제작자는 저작권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유통사를 고소하면 본인 역시 저작권법을 위반했음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제5조2차적저작물이란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고, 2차적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close 때문입니다.

합법과 불법의 담장 위를 걷는 저작권

저작권법의 실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면 괜한 일에도 ‘혹시 잡혀가는 건 아닐까?’하고 위축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엔 불법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당당히 행동하기도 합니다. 실생활에서 마주할 확률이 높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저작권법의 합법과 불법사이를 알아봅시다. (아래 내용은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의 위키콘퍼런스2016 강연과 <블로터>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 다음 중 저작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① 나는 어제 혼자 치맥을 먹으며 웹하드에서 영화 ‘마션’을 다운받아 봤다.
② 나는 어제 혼자 치맥을 먹으며 토렌트로 영화 ‘마션’을 다운받아 봤다.
③ 나는 웹하드에서 다운받은 영화 ‘마션’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TV에 연결해 친구들과 함께 봤다.

☞정답 및 해설 보기① ×, ② ○, ③ ○. (해설) 물론 웹하드에 불법으로 유통된 영화를 내려받는 것 역시 엄밀히 말해 불법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즐길 목적의 내려받기, 즉 사적이용에 한해서는 처벌하지 않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제30조) 그러나 토렌트는 자신이 내려받은 파일이 다른 사람이 내려받을 때 함께 업로드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상을 유포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려받은 영화를 학교 TV에 연결해 친구들과 보는 것은 사적이용으로 보호되지 못하므로 저작권법 위반입니다.close

# 우리 학교는 예쁜 폰트(오픈소스 아님)로 가정통신문을 만들어 나눠줬다. 폰트를 만든 회사에서 저작권법 위반으로 신고가 들어왔다. 다음 두 가지 중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는?

① 그 폰트는 인터넷에서 폰트 패키지를 다운 받은 것이다.(O)
② 그 폰트는 스크린 캡처를 해서 비트맵으로 본뜬 것이다.(X)

☞정답 및 해설 보기① ○, ②×. (해설) 정식으로 구매를 하지 않았더라도 폰트가 찍혀 나온 문서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그 폰트로 문서를 작성하려면 컴퓨터에 폰트 파일이 저장돼 있어야 하겠지요. 소프트웨어는 저작권으로 보호되므로 폰트 파일이 발견되면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그러나 대안은 존재한다고 합니다. 폰트 사진을 찍은 후 스캔을 거쳐 글꼴의 비트맵을 떠서 사용하면 합법입니다. 물론, 그럴 바에야 돈주고 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close

# 가족과 교외로 놀러갔다가 무척 아름답게 건축된 주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나와서 집이 찍힌 사진을 당장 지우라고 한다. 지워야 할까, 안 지워도 될까?

☞정답 및 해설 보기(해설) 대부분의 경우, 안 지워도 됩니다. 2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건축물 자체에 저작권이 인정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저작권은 예술적 영감의 결과물을 보호하지 생존적 필요의 결과물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그 집이 심미적으로 아름답더라도 ‘주거’라는 실용성이 지배한다면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파노라마 권리의 인정 때문입니다. 그 주택은 공개된 장소에 영구히 보존돼 있습니다. 따라서 주택이 포함된 경치를 찍고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권리는 공정이용의 일부로 인정됩니다.close

# 엊그제 용산에 가서 해적판 DVD를 사왔다. 이 DVD를 보는 건 불법일까? 나에게 이 DVD를 판 사람은 잡히면 어떻게 될까?

☞해설 보기(해설) 해적판 DVD를 사와서 혼자 본다면 역시 사적이용에 한해 처벌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학교에 가져가서 함께 본다면 불법입니다.) 해적판 DVD를 파는 사람은 당연히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민간저작권자들의 모임인 ‘저작권보호센터’(문화체육관광부 위탁기관)가 불법 DVD 판매상을 발견하면 즉시 전량 수거할 수 있습니다.close

MILAN, ITALY - MARCH 01: (UK OUT) A model walks the runway at the Roberto Cavalli fashion show during Milan Fashion Week Womenswear Autumn/Winter 2009 on March 1, 2009 in Milan, Italy. (Photo by Karl Prouse/Catwalking/Getty Images)

# 파리에서 열린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에서 공개된 코트 디자인을 카피했다. 벌써 동대문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저작권법 위반일까?

☞해설 보기(해설) 옷 디자인은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습니다. 옷은 집과 마찬가지로 실용성에 지배당하므로 명품 의상을 본떠 만들어도 저작권법 위반이 아닙니다. (저작권보다는 디자인보호법을 따져봐야 합니다.) 주의할 점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경우인데, 그림 자체가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이 그림을 카피하면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이처럼 실용성과 예술성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을 ‘분리가능성 이론’이라고 합니다.close

# 대학교 수업교재가 너무 비싸다. 가격이 부담돼 친구 책을 복사해 제본하려고 한다. 불법일까?

☞해설 보기(해설) 대부분의 경우 합법입니다. 수업교재로 등록할 때 각 대학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보상금을 내므로 그 이후엔 학생들은 비영리 목적으로 복사·제본해 쓸 수 있습니다. 단, 대학에서 보상금을 안 낸 경우엔 불법이 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close

권익 보호 VS 문화 향유

저작권법은 2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저작권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둘째는 문화 향유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2014년 ‘자막대란’ 당시에도 여러 번 지적된 지점이 바로 이 둘의 불균형입니다.

당시 여론은 그동안 한국에서 많은 미국드라마 팬이 생기기까지 국내 팬자막 제작자들이 기여한 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형사고소를 통해 범법자로 몰아갔다는 데 대해 반발했습니다. 오픈넷의 박지환 변호사는 “금전적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재미로 활동한 자막 제작자를 형사고소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환기된 계기”라고 평했습니다.

오픈넷은 저작권을 침해했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손해가 산정되는 경우엔 형사고소를 금지하고 민사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만드는 저작권법 개정안 도입을 주장합니다. 박경신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법으로 1천달러 이상 저작권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범죄로 보지 않으며, 독일의 경우도 저작권 침해는 검찰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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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내에선 검찰이 개입하는 형사고소 형태를 취합니다.  이 경우 피고소인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실제 손해액보다도 많은 합의금을 물어주는 사례가 적잖습니다. 오픈넷은 “금전적 손해를 배상받기 위한 거라면 양 당사자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는 민사재판으로 가는 게 낫다”라며 “저작물 단가가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선 위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합의금 장사 방지법)이 법사위에 상정돼 계류 중이다가 19대 국회가 끝나며 자동 폐기됐습니다. 오픈넷은 “20대 국회에서 뜻을 모아 재발의할 국회의원을 타진 중”이라며 “취지는 변함없이 형사처벌의 범위를 축소해 합의금 장사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음 국회때는 변화된 저작권 정책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두고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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