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열쇳말] 전자프론티어재단(E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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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입력하는 내 개인 정보나 e메일, 소셜미디어 정보는 아주 중요한 데이터다. 동시에 누군가가 함부로 볼 수 없고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다. 지금은 누구나 동의하는 이 논리는 그러나 1990년대만 해도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막 퍼지기 시작했던 때라, 이를 대응할 법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누구보다 먼저 인터넷의 자유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쟁취해낸 단체가 있다. ‘전자프론티어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EFF)이다. 1990년 설립된 전자프론티어재단은 현재까지도 디지털 시대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며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EFF 출범 20주년 기념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ectronic_Frontier_Foundation_20th_anniversary_mecha_poster.jpg, CC BY)

▲EFF 출범 20주년 기념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CC BY)

EFF 이끌어낸 ‘스티브 잭슨 게임스’ 사건

전자프론티어재단의 시작은 한 게임잡지 회사와 정부의 소송에서 출발했다. 1990년 미국 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은 ‘E911’이라는 문서를 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E911에는 911 긴급전화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적혀 있었다. 이 문서가 벨사우스라는 기업의 컴퓨터를 통해 불법복제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미국 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은 해커 손에 해당 정보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검사하고 있었다. 기술을 아는 사람이 해당 문서를 입수하면 실제 911에 걸려오는 전화를 마음대로 받아 통화가 불가능하거나 누군가 피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복제된 문서를 추적하는 중 비밀수사국 눈에 띈 기업이 하나 있었다.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작은 게임 잡지사 ‘스티브 잭슨 게임스’였다. 미국 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은 곧바로 스티브 잭슨 게임스에 영장을 발부하고 해당 기업이 가지고 있는 전자 기기와 곧 출판될 원고까지 몽땅 가져갔다. 스티브 잭슨 게임스는 영문도 모른 채 컴퓨터를 뺏겼고, 마감 일정을 맞추지 못해 새로운 잡지를 출판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미국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은 나름 조사를 진행했지만 스티브 잭슨 게임스가 관련 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비밀수사국은 무혐의로 결론내리고 스티브 잭슨 게임스를 기소하지 않았고, 이들로부터 가져갔던 모든 기기를 돌려줬다.

▲EFF 로고 (출처: EFF 홈페이지 https://www.eff.org/)

▲EFF 로고 (출처: EFF 홈페이지)

정부 당국의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스티브 잭슨 게임스 사업은 풍비박산이 났다. CEO인 스티브 잭슨은 직원의 절반 가까이 해고시켜야 했다.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직원들의 이메일, 기업 내부 게시판에 작성된 내용, 외부 사용자에게 연락한 내용과 개인적으로 보낸 메시지 등을 정부가 마음대로 살펴보고 삭제까지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부 행동을 알고 스티브 잭슨 CEO는 격노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도와줄 단체를 찾았다. 단순히 개인 사생활 정보가 침해돼서가 아니었다. 스티브 잭슨 게임스는 출판사였다. 정부가 마음대로 독자의 정보를 삭제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독자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많은 단체들을 찾아보지만 스티브 잭슨 게임스가 침해당한 권리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거나 도와줄 만한 곳은 없었다. 일단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곳이 없었고 사이버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대부분 몰랐기 때문이다.

EFF 설립을 이끈 인물들

▲EFF 설립을 주도한 미첼 케이포, 존 페리 바를로, 존 길모어(왼쪽부터).

▲EFF 설립을 주도한 미첼 케이포, 존 페리 바를로, 존 길모어(왼쪽부터).

스티브 잭슨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물들이 인터넷 게시판 ‘웰닷컴’에 나타났다. 미첼 케이포, 존 페리 바를로, 존 길모어였다. 미첼 케이포는 현재 IBM에 인수된 로터스 디벨로프먼트 코퍼레이션이라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부사장이었고, 존 페리 바를로는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였다. 존 길모어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초기 멤버였다. 세 사람은 스티브 잭슨을 돕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디지털 세상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전자프론티어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미국 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세 사람이 스티브잭슨 사건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이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 페리 바를로는 1990년 4월 FBI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가 매킨토시 롬(ROM)과 관련된 소스코드를 훔쳐갔다는 절도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존 페리 바를로는 무죄였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컴퓨터 기술에 대해 전혀 몰라 상황이 굉장히 복잡했다”라며 “무엇이 유죄인지 대해 스스로 설명을 해야 했다”라고 밝혔다.

존 페리 바를로는 자신이 겪은 사건을 ‘웰닷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고, 미첼 케이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연락이 닿았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인터넷에서도 시민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소송에 대비할 수 있는 자금을 모으기로 했다. 존 길모어는 이러한 자금을 지원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애플 공동설립자인 스티브 워즈니악도 스티브 잭슨 사건을 듣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향후 스티브 잭슨 게임스 사건은 사이버 공간에서 필요한 법의 뼈대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먼저 이 사건 이후 법원은 이메일이 전화 통화만큼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인정했다. 또한 법 집행 과정에서 이메일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되며 구체적으로 권한이 명시된 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판결도 이끌어냈다.

▲ EFF와 함께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소송을 진행한 다니엘 번스타인. (출처: 위키피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an_Bernstein_27C3.jpg, CC BY)

▲ EFF와 함께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소송을 진행한 다니엘 번스타인. (출처: 위키피디아, CC BY)

그 이후에도 전자프론티어재단은 여러 굵직한 사건에 개입해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지켰다. 대표적인 것인 다니엘 번스타인과 정부의 소송이다. 버클리대학 수학 전공 대학원생이었던 다니엘 번스타인은 자신이 개발한 암호화 알고리즘을 외부에 공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암호 기술은 군사작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정부는 다니엘 번스타인에게 암호 기술을 공개하려면 무기 거래상으로 등록하고 관련 라이선스를 취득하라고 요구했다. 전자프론티어재단이 다니엘 번스타인 지원에 나섰다. 그 결과 법원은 이 사건에서 처음으로 “미국 헌법 수정 제1항에 의거해 소스코드도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판결 덕분에 암호화 기술이 미국 외 국가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출판, 저작권, 기술 지원까지 확대된 EFF 운동들

▲EFF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출처: EFF 홈페이지 https://www.eff.org/issues)

▲EFF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출처: EFF 홈페이지)

작은 조직으로 시작한 전자프론티어재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70여명 직원을 둔 단체로 성장했다. 운영 비용은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모인 자금은 2300만 달러, 우리돈 약 257억원에 이른다.

현재 전자프론티어재단은 법률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보안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시민운동, 출판과 언론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또한 ‘EFF 선구자 어워드(EFF Pioneer Awards)’로 전자프론티어재단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을 발굴해 수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견제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전자프론티어재단 홈페이지에서는 NSA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별도의 페이지를 볼 수 있으며, 여기에서 NSA의 문제점과 관련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EFF가 진행하고 있는 NSA 감시 프로젝트 (출처: https://www.eff.org/nsa-spying)

▲EFF가 진행하고 있는 NSA 감시 프로젝트 (출처: https://www.eff.org/nsa-spying)

※ 참고링크

  • https://www.eff.org/about/history
  • https://www.eff.org/issues
  • https://www.eff.org/nsa-spying
  • http://www.kapor.com/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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