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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라시OS

[책] 더 나은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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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정치를 이어보는 효과에 대한 관점은 극단으로 갈리는 편입니다.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과,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입장이 있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분들과 짜게 식어 굳어버린 분들이 나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습니다만, 극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작은 변화로 인한 소소한 결과들, 그리고 그 소소한 결과가 쌓여 조금 더 큰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온라인과 정치라고 뭐 그렇게 크게 다를까 싶습니다. 일상에서 조금 더 민주적인 문화들을 갖춰나갈 수 있는 작은 도구나 시스템을 사용하다 보면 사회 전체가 좀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slack logo

슬랙 로고(사진=슬랙)

슬랙이 가져온 사소한 변화

보통 회사는 커뮤니케이션 용도의 도구를 따로 두고 사용합니다. 내부 소프트웨어를 구축해서 쓰는 곳도 있을 테고, 외부에서 협업용으로 제작된 도구를 쓰기도 합니다. <블로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따로 있습니다. 다른 도구도 조합해서 사용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슬랙‘을 씁니다.

예전에는 다른 도구를 썼습니다. 그 도구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너무 딱딱하고 사용도 불편하다는 거죠. 그 도구는 기본적으로 뉴스피드 형식이었는데요. 게시물을 만들고 댓글을 달아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보고를 위해 게시물을 작성하면 편집장님이 보고 알았다고 댓글로 확인해 주는 그런 시스템이었죠.

저희는 이 도구가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저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의 시간에 다른 도구를 사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테스트를 거쳐 슬랙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슬랙은 기본적으로 채팅 형식입니다. 마치 ‘단톡방’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하듯 보고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 –행사 왔는데 정말 영양가 없네요 ㅋㅋ’ 같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됐죠. 위에서 어떤 행사를 가보라고 한다든지, 어떤 자료를 참고하라고 슬랙에 던져주면 알겠다는 표시로 👌(OK 이모지)를 붙입니다. 굳이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번거로운 답글을 달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고작 뉴스피드 형식이 채팅방 형식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만, 내부 커뮤니케이션 양은 훨씬 늘어났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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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게이드 소개 화면 갈무리

시민참여 정치를 촉진하는 플랫폼

1979년생인 션 파커는 2016년 7월 기준 24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거부입니다. 7살에 프로그래밍에 입문해 15살에 해킹 혐의로 FBI 조사를 받고, 19살엔 친구 숀 패닝과 함께 P2P 음악 공유 사이트 ‘냅스터’를 만듭니다. 그리고 24살에 마크 저커버그 등과 페이스북을 공동 창업해 초대 CEO를 맡죠.

션 파커는 “정치는 웹을 통해 혁신의 효과를 가장 크게 낼 수 있는 제일 확실한 분야”라고 생각하고 이후 온라인 정치 플랫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2007년엔 온라인 기반 캠페인 플랫폼인 ‘코지즈’를 열었고, 2013년에 미국 유권자 네트워크인 ‘보티즌’을 인수합병했으며 2014년 벤처투자자와 함께 무려 930만달러를 투자해 정치 플랫폼 개발을 위한 브리게이드 미디어를 설립합니다.

브리게이드 미디어에서 만든 ‘브리게이드’는 정치에 특화된 SNS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이에 찬성·반대·보류 의견 표시를 합니다. 의견 표시를 하다 보면 ‘자신의 입장’이 수치로 보이게 되는데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의견 일치율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만나 구체적인 실천까지 계획할 수 있게 돕습니다.

찬성·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공간을 분리해 소모적인 감정표현을 줄이고, 자신이 낸 의견에 지지를 많이 받게 되면 영향력 점수를 얻는 깨알같은 장치도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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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정치(사진=문학동네)

IT 플랫폼과 함께하는 더 나은 민주주의

국내 최초의 정치 스타트업 와글이 내놓은 ‘듣도 보도 못한 정치 :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문학동네)에서는 브리게이드처럼 IT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세계 각지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사결정 플랫폼 ‘루미오’는 여느 설문 앱과 기능적인 차이는 크지 않지만, 투표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달 수 있게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재투표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토론을 통해 입장을 바꾸고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루미오는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 시의 의안 토론과 표결에도 사용됐으며, 창당 2년 만에 40만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원내 3당으로 올라간 스페인의 신흥정당 포데모스에서도 쓰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젊은 개발자 산티아고 시리가 만든 ‘데모크라시OS’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회에서 법안을 심의하는 데 쓰였습니다. 400개의 법안이 데모크라시OS를 통해 시민 토론을 거쳐 3개 프로젝트로 좁혀졌습니다. 이는 남미에서의 첫 번째 디지털 민주주의 사례로 꼽힙니다.

설문조사에 데이터 시각화를 입힌 ‘폴리스’는 대만에서 우버의 도입과 법 적용 여부를 두고 고민할 때 사용됐습니다. 폴리스로 시민의 의견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공식회의 안건을 정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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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만치니 데모크라시OS 공동 창업자(사진=테드 영상 갈무리)

온라인 만능론은 경계, 그렇지만 ‘가능하다’

“우리 시민들이 원래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고 하지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공청회에, 그것도 휴가를 내지 않으면 갈 수도 없는 평일에 열리는 공청회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가 우릴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 2014년 10월 피아 만치니의 테드 강연(‘듣도 보도 못한 정치’ p.165에서 재인용)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는 정치는 때때로 무척이나 시민의 의견 수렴에 비효율적입니다. 말마따나 열심히 일하고 있을 월요일 오후 3시에 여는 공청회에 대체 어떤 시민이, 몇 명이나 갈 수 있을까요? 대표자만 중심이 되는 간접민주주의는 기술이 부족한 시기의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일상의 거의 모든 행동이 인터넷과 연결된 현실에서 정치만 동떨어져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기술은 시민의 직접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숙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만능주의를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적절한 보완관계를 구축하면,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일상으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의 효과와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오프라인 역량과 결합시킬 때, 시민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에 한 발 다가설 수 있습니다.” – ‘듣도 보도 못한 정치’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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