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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중독자’ 하박사가 제시하는 미래 ‘만물지능통신망’

2010.03.03

90년대 중반만 해도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일부 젊은층만이 모뎀을 이용해 PC 통신을 하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주고받으려 해도 십수 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과 3, 4년 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쇼핑을 하고, 뱅킹을 하는 일이 시작된다. 이후 웹의 등장과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으로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물론 산업 전반이 뒤바뀌어 버렸다.

사진-하원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하원규 박사는 참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국내에서 인터넷이 처음 상용화 되던 시절, “앞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100만이 되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빨리 인터넷이 생활 곳곳으로 침투하게 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인터넷 이용자는 ‘초고속’으로 늘어났다.

하 박사는 국내 인터넷 이용자가 100만을 넘어 200만~300만으로 늘어날 때마다, 그 이후의 미래를 걱정했다. 혼자 끙끙대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글을 써 가까운 미래에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놓을 지에 대해 설파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인터넷이 보편화되자 그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유비쿼터스’로 넘어갔다. 그는 국내에 처음으로 유비쿼터스의 개념을 소개하는 한편, 정부 차원에서 ‘u-Korea’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스마트폰과 무선인터넷이 생활속으로 파고드는 요즘, 그는 또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그의 대답은 ‘만물지능통신망’이다.

하원규 박사는 국내 IT 정책 연구 분야의 선구자다. ETRI에서 IT 정책을 연구한지만 30년이 다 되어간다. 92년 동경대에서 사회정보학 박사를 받은 그는 ETRI에 자리를 잡고 한국 IT산업의 심장부에서 초고속 통신망이 보급되고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함께했다. 정년을 3년 앞둔 지금도 그는 활발히 저술활동을 펼치며 20년, 30년 뒤 IT 산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봄을 알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금요일 오후, ETRI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하 박사는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영화 ‘아바타’ 얘기를 꺼냈다. 1조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통해 촘촘히 연결돼 있다는 아바타의 세계관에서 IT의 미래를 보았다는 것.

“아바타 행성의 나무들은 인간 뇌의 신경보다 훨씬 촘촘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나무 뿐만 아니라 주변의 식물, 동물과도 연결돼 있죠. 일종의 B2N2망(Bio-Botanical Neuro-Network)입니다. 미래 네트워크의 모습도 이와 같은 형태가 될 것입니다. 바로 만물지능통신망이죠.”

avatar network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출처 : james-camerons-avatar.wikia.com)

남들이 아바타의 현란한 3D 그래픽에 빠져들고 있을 때 가방에서 필기구를 꺼낸 하 박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바타 행성의 네트워크 구조에 대해 메모를 했단다. 그가 집필하고 있는 새 책에는 아바타의 네트워크 아키텍처를 분석해 만물지능통신망의 아키텍처와 비교하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연구 주제를 메모하기 바빴다니 이쯤 되면 말 그대로 ‘연구 중독’이 아닐 수 없다.

하 박사는 “50살이 되기 전까지는 항상 사무실에서 밤 11시에 퇴근했습니다. 주말에도 출근하기 일쑤였죠”라며, 요즘 들어서는 나이가 많아지다 보니 주말에는 집에서 집필 활동을 한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지금도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잡아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동중에도 가방을 두 개씩 들고 다니며 외국 신문과 저널을 읽는 것은 물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점에 가서 신간 쇼핑을 한다. 기술과 경제와 관련된 단행본을 모두 구입해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정보만 캐치해서 그날 밤에 모두 읽어 내린다고 했다.

“그렇게 10년 정도 하다 보니 그제서야 기술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기술 흐름을 습득하는 데에만 하루에 꼬박 4시간씩 투자했으니, 10년간 1만 시간이 걸린 셈이죠. 이제는 기술의 싹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술 변화가 너무 급박해서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또 그렇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쓰고 싶어서 견딜 수 없게 되는 시점이 온다고 설명했다.

“쇠는 달궈졌을 때 내리쳐야 합니다. 책을 쓸 때에는 하루에 적어도 서너 시간 집필 활동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는 중에도 새로운 기술 흐름은 놓칠 수 없으니, 집필 활동도 사실 체력이 돼야 하는 거죠.”

그래서 그는 매일 점심시간에 40분씩 ETRI의 뒷산을 뛰어오른다고 했다. 샤워를 마치고 1시에 식사를 하면 그렇게 밥맛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마음으로 오후 시간을 또 연구에 집중한다.

beyond the internet of things 2월 선보인 저서 ‘모든 것은 생각한다(부제 : Beyond the Internet of Things)”도 그렇게 탄생했다. 하 박사 뿐만 아니라 방통위의 형태근 상임위원과 충주대학교의 최남희 교수가 함께 했다. IT 정책을 전공한 연구원과 정부당국자, 대학교수가 한 데 모여 미래 정보통신의 공통 아젠다를 찾아내고자 했던 시도의 결과물이다.

‘모든 것은 생각한다’는 지금의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통신의 주체가 되는 만물지능통신 시대를 그리고 있다. 단순히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만물지능통신망을 미래의 핵심 SoC(사회간접자본)로 삼아 우리나라가 IT 강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만물지능통신망 기반 10대 프로젝트’를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만물지능통신망이란 유선 광대역 통합망과 4G 혹은 5G 무선통신망에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와 스마트그리드를 포함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래의 모든 네트워크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빠른 네트워크 속도는 기본이고, USN과 스마트그리드, 무선통신망을 통해 사람과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과 환경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물지능통신망이 먼 미래의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3D TV의 사례를 보세요. 몇 년 전 세계 미래학회는 3D TV가 2025년은 돼야 모든 가정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아바타 이후 이미 3D TV의 시대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만물지능통신망도 그렇게 먼 세상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모르게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는 통신의 대상이 사람에서 사물과 공간으로 확장되는 만물지능통신망의 개념이 미래 사회의 새로운 IT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만물지능통신망을 보다 앞서서 구축하는 국가가 IT 신시대의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되자 30여 년간 IT 정책을 연구해온 하 박사에게 다소 난감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최근들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IT 인프라와 하드웨어 기술은 우수한 편이지만 소프트웨어 분야가 취약하기 때문에 더 이상 IT 강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 박사에게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다양한 유형과 전략이 있듯 정보화 과정에서도 국가별로 가기 다른 전략이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미국처럼 소프트웨어가 매우 강한 국가가 있는 반면, 핀란드의 노키아 사례와 같이 휴대폰 산업이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까지 모든 면을 완벽하게 갖추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일단 가진 장점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큰 기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하 박사는 또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출간한 ‘SUPER IT KOREA 2020’에 이어 앞으로 2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SUPER IT KOREA 2030’을 쓰고 있다. 그는 앞으로 1년에 한 권씩 2030년, 2040년, 2050년의 IT 세상을 지속적으로 그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3년 후 ‘SUPER IT KOREA 2050’이 출간되는 해에 그는 정년퇴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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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닷넷 기자. 모바일의 시대에 모두 다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 모바일, 스마트폰, 통신, 소통 / 따뜻한 시선으로 IT 세상의 곳곳을 '줌~인'하겠습니다. ezoomin@bloter.net / 트위터 @ezo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