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국의 데이터스토리] 가장 위대한 데이터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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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묻는다. 도대체, 데이터 분석이란 무엇인가? 데이터 분석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앞으로 이 분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보다 대답이 쉽지 않다. 일부 들리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중구난방이다. 계속 발전하는 미래형 산업이라 아무래도 확실한 주장은 무리일까? 결국 미래를 기다리거나 뭐가 되든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는 걸까?

달리보면 대답은 오히려 쉽다. 미래에 대한 해답은 미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도 그렇게 말한다. “욕지미래 선찰이연(慾知未來 先察已然)”. 미래를 알고 싶으면 먼저 과거를 살피라는 말이다. 천년의 지혜다. 성공적인 데이터 분석과 데이터 분석가의 비밀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있다. 구글은 커녕 컴퓨터조차 없던 시대에 그 열쇠들이 있다. 200년 전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1. 어느 소녀의 꿈

▲ 어린 나이팅게일

1820년 어느 영국인 부부가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고 있었다. 부부는 여행길에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둘째 딸이 태어났다. 두 사람은 아이에게 여행중인 도시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총명한 아이는 큰 기대와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다 17살이 되었을 때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간호사가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간호사는 비천하게 여겨졌다. 부모님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반대에 부딪힌 소녀는 꿈을 내려놓은 듯 보였다.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마침내 33세에 작은 요양원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플로렌스는 영어로 피렌체를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팅게일을 ‘백의의 천사’라 부른다. 하지만 그 별명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병상에서 간호에만 매달린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찬 행정가였다. 나이팅게일에게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흥미로운 모습이 많다. ‘등불을 든 여인'( The Lady with the Lamp)이라는 특이한 별명도 있다. 그녀는 또한 통계전문가였다. 수학과 통계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여성 최초로 영국왕립통계학회 회원이었다. 간호학교를 설립한 교육가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 모든 탁월함은 개별적인 능력이 아니었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서 융합되어 그녀를 위대한 혁신가로 만들어주었다.

2. 참혹한 전쟁과 등불을 든 여인

1853년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남하에 오스만 제국과 동맹국들이 맞서 4년간 전쟁을 벌였다. 크림 전쟁이었다. 1854년 34세의 나이팅게일도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야전병원 간호 책임자가 된 것이다. 사실 말이 병원이지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군당국은 전방 전투에만 신경을 쓸 뿐 부상자에는 무관심했다. 오늘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초라한 의학 지식과 의료 체계도 문제였다. 의약품에서 침상까지 뭐 하나 제대로된 것이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이팅게일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 부상자를 맞이하는 나이팅게일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죽어가는 병사들이었다. 죽음의 참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에 참혹하지 않은 전쟁은 없다. 문제는 기형적인 상황이었다. 전투로 죽는 병사의 숫자보다 전염병으로 죽는 병사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전염병이 가장 무서운 적인데도 그 비정상을 모두가 정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의 위생상태가 원인이라는 것을 즉각 알아챘다. 그래서 군당국에 병원 환경의 개선을 요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뻔했다. 혁신의 요청은 늘 벽에 부딪힌다. 벽이 없다면 애초에 혁신이란 말도 없었을 것이다. 군당국이 보기에 나이팅게일의 요청은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전방의 전투력을 높이는 데 써야 하지 않겠는가? 현장의 경험과 직관이 서류쟁이들에게 좌절된 것이다.

모든 위대한 혁신가가 그렇듯이 나이팅게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노트에 매일의 상황을 정리했다. 입원과 퇴원 상황, 사망자 수, 사망 원인 등. 컴퓨터도 엑셀도 없었다. 노트와 펜이 전부였다. 모두가 잠든 후에도 그녀는 잠들 수 없었다. 밤 늦게까지 환자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본 기자가 “등불을 든 여인”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혁신가였다. 혁신가는 질문한다. 배척당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별도로 시간을 들여 파헤친다. 충돌한다. 조롱받는다. 그래도 길을 간다.

3. 세상을 구하는 데이터 분석

전쟁은 죽음을 부른다. 모두에게 당연한 공식이다. 그러나 죽음이라고 다 같은 죽음은 아니다. 군인들의 죽음은 싸우다 죽는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나이팅게일의 생각은 달랐다. 전염병으로 죽는 죽음이 더 많았다. 그것은 죽지 않아도 되는 죽음이었다. 막아야했다. 당국자들은 꿈쩍도 안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량 범위에서 최대한의 개선을 추진하면서 데이터 분석을 병행했다. 전염병과 사망률의 관계, 병원 위생과 사망률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들고 당국자들을 설득해갔다.

1854년 그녀가 처음 부임했을 때 한 야전병원의 경우 환자의 60% 이상이 사망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6개월 만에 이 비율을 2%까지 떨어뜨렸다. 단순한 통계 숫자의 변화가 아니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신호들이었다. 군당국은 결국 혁신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그녀는 영국군 전쟁지역 전체의 병원 간호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녀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변화가 이어졌고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건졌다.

▲ 병원을 돌아보는 나이팅게일

전쟁이 끝난 후 1858년 나이팅게일은 이 모든 일을 담아 상세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제목은 ‘영국군의 건강, 능률, 병원 행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관한 기록’이었다. 800쪽이 넘는 위대한 혁신의 이야기였다.

4. 1천개의 이야기, 한 장의 그림

나이팅게일은 내용 전달에서도 놀라운 통찰을 발휘했다. 방대한 보고서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요약했다. 보고서의 핵심을 담은 ‘사망 원인 도표'(Diagram of the Causes of Mortality)였다. 요즘 말로 데이터 시각화였다. ‘태블로'(Tableau)도 ‘파워 BI'(Power BI)도 없이 해냈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2년의 이야기가 말 그대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2개의 원형 그림은 파이 차트(원형 차트)와 비슷하다. ‘장미 도표'(Rose diagram)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 하나가 1년을 나타낸다. 1년은 다시 1개월짜리 조각 12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조각은 1개월 단위로 사망자 현황을 보여준다. 색깔은 사망 원인이다. 바깥쪽 푸른색은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 붉은 색은 전투 중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한 사망, 검은색은 기타 원인 사망이다. 이렇게 한 눈에 2년을 볼 수 있다. 1854년 4월~1855년 3월, 그리고 1855년 4월~1856년 3월. 분석과 개선 작업을 실행한 앞뒤 1년씩을 비교할 수 있다.

▲ 나이팅게일이 만든 사망 원인 도표

이 도표를 보면 영국군 최고의 적은 러시아가 아니라 전염병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적군이 나이팅게일의 지휘 아래 어떻게 패배해가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심각했던 1855년 1월 전염병 사망자수는 2761명이었다. 전체 사망자의 87%였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살 수 있는 생명들이었다. 직접적인 전투 부상 사망은 3%에 불과했다. 다음 1년 간의 변화를 보면 전투 부상 사망자 대비 전염병 사망자가 크게 줄어든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건졌다.

5. 나이팅게일과 데이터 분석가의 초상

나이팅게일은 데이터 분석가의 완벽한 모범이다. 솔루션 몽상가, 신기술 숭배자, 전문가 의존자, 탁상 이론가를 분석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팅게일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한 데이터 분석가의 초상을 그려준다.

(1) 현업 실무자

뭐라고 불러도 좋다. 데이터 과학자? 통계학자? 이런 사람들은 현장의 혁신을 만들기 어렵다. 현장을 잘 모른다. 모르니 바꿀 수 없다. 현업을 모르는 통계학 박사보다 중학교 ‘확률과 통계’를 아는 현업 실무자가 혁신에 훨씬 더 가깝다.

▲ 나이팅게일, 1858

(2) 의심하는 사람

의심한다. 의문을 제기한다. 혁신의 시작이다. 상식은 혁신의 최대 장애물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모두가 무심코 지나치는 지점에 혁신이 숨어있다. 연속성에서 불연속성을 찾아야한다.

(3) 분석하는 사람

현장의 경험과 직관은 큰 힘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혁신이 어렵다. 분석과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래야 평가하고 설득하고 개선할 수 있다.

(4) 다시 실행하고 측정하는 사람

A/B 테스트, 린 분석, 그로스 해킹…. 이런 말들이 나오기 수백년 전에 나이팅게일은 항상 분석하고 빨리 실행하고 다시 측정했다. 침상 위치, 환기, 채광 등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둘러싼 모든 것이 측정의 대상이요, 실행의 대상이었다.

(5) 데이터로 말하고 그림으로 설득하는 사람

혁신의 길에서 충돌은 변수가 아니고 상수다. 충돌의 벽을 넘으려면 최대한 객관적인 증거들로 디딤돌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로 말해야 한다. 입에서 지표가 나오고 손에서 그림이 나와야 한다. 한 장의 그림으로 설득해야 한다.

나이팅게일에게 있어 간호사와 분석가와 행정가와 교육가는 분리된 직무가 아니었다. 환자를 향한 마음 속에서 하나였다. 그래서 그 많은 일을 해낸 것이다. 그래서 나이팅게일이라는 이름 외에는 달리 정확히 부를 명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불을 든 여인’이란 별명만이 진정으로 그녀의 초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을 부르고 생명을 구하고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으나 완벽한 분석가의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가의 미래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