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덕후를 위한 팟캐스트, ‘과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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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과학자를 꿈꾼다. 나도 어린 시절 목표 중 하나는 로봇을 만들어 태양에 온도계를 꽂아 온도를 측정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태양 온도가 이미 알려져 있다는 사실, 로봇이 태양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지구용사 선가드’에나 나올법한 일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고, 이내 꿈이 바뀌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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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쯤 되니까 태양도 가고 그런거란다. ‘지구용사 선가드(원제 : 태양의용자 파이버드)’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과학은 아예 삶에서 멀어졌다. 몰라도 사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교양 수준에서 가끔 네이버 메인에 올라오는 과학 관련 기사, 이를테면 노벨상 얘기 같은 것만 심심풀이로 봤다. 대체로 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과학 관련 뉴스는 ‘상식’ 내지는 ‘신기함’의 범주를 넘어가지 못한다.

“과학 대중화, 참 좋아요. 그런데 과학 대중화의 전제는 ‘사람들이 과학 지식을 많이 알면 과학 분야 성장에 지원을 할 것이다’ 거든요. 저희가 생각하기에 사회에서 ‘과학’을 지지하려면 단순히 과학 지식을 아는 것보단, 과학이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방향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걸 알아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죠.” – 정한별

과학을 주제로 올해 벌써 3년째를 맞고 있는 팟캐스트가 있다.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이하 ‘과정남’)이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재학중인 박대인, 정한별 님이 만들고 있는 과정남은 과학기술에 관심이 적은 일반인부터 연구원까지 두루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찾고자한다.

박대인 : 학부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석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현재 휴학 중. 관심 분야는 ‘어떻게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 어젠다가 설정되는지?’이며, 석사 때는 이공계 인력의 두뇌 유출 문제를 연구했다. 현재는 휴학하고 스포츠용 웨어러블 기기 만드는 회사를 공동 창업, CMO로 일하고 있다.

정한별 : 학부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석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현재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재학중. 학술적 관심은 IT가 한국의 각종 통제시스템 혹은 통제 담론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에 있고, 주로 교육과 관련된 정책, 산업, 현장을 대상으로 이를 연구한다. 석사 때에는 카이스트의 ‘에듀케이션3.0’이라는 수업 방법론의 정책과 현장 대해 연구를 했고 지금은 비슷한 관심사를 더 넓게 키워서 한국의 교육정책 전반과 IT의 관계를 ‘통제’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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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남의 박대인, 정한별

시민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과정남은 우발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2014년 2월이었다. 같이 공부하다가 졸업하는 친구와 밥 먹는 자리였다. 매번 하던 과학기술정책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가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기 아까운데 바깥에 알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명 중 졸업하는 1명이 빠지고, 3개의 박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1명이 빠져서 둘이 시작하게 됐다. 그냥 뱉어봤던 소리에 계획이 붙었다.

“저희가 되게 전문적으로 공학이나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면 팟캐스트를 할 생각을 안 했을 수도 있어요. 문제가 있으면 본인이 연구해서 해결하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연구 대상이 ‘정책’이다 보니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저희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끼리지만 이야기하니까 참 좋다’고 끝날 게 아닙니다. 세금도 내시고, 투표도 하시는 시민분들이 아셔야 하는 문제거든요.” – 정한별

요새는 경계가 흐려지고 있지만, 보통 대중과 전문가 사이에는 언론이 있다. 전문가가 하는 어려운 이야기를 시민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과학정책 분야는 조금 독특하다. 단순한 과학 상식 전달 차원에서 보면, 언론이나 출판을 통한 과학의 대중화는 꽤 잘 되고 있다는 게 과정남의 생각이다. 과정남은 그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연구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떠도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했다.

과정남은 첫 번째 콘텐츠인 ‘국가 과학기술통계를 통해 본 한국 과학기술정책 : 이공계의 위기?’를 시작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역사, 이공계 장학금, 국정감사, 과학과 법, 방재 정책과 과학기술,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순수수학자, 유기화학자, 이공계 학생회장, 초파리 유전학자 등 대중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 힘든 사람과의 접점도 마련했다.

“서점 가면 과학책 많이 나와요. 다 과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책인데요. 그걸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인이 중력파, 빅뱅 같은 걸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저는 모르거든요. (과학지식을 개념적으로 알기보다는) 이게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걸 공부하는 사람들이 적당한 노동의 가치를 받고 있는지 이걸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과학자들에 대한 이상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회랑 동떨어져 있고,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고. 근데 그렇지 않거든요. 과학자들이 겪는 문제도 경력단절여성, 남성 육아휴직 등 똑같아요.” – 박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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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남 팟캐스트

100명만 들어도 성공이라고 생각

박대인 씨는 “처음에는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전문적 지식 체계니까 밖으로 꺼내면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초기의 과정남은 쉽게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정한별 씨는 “중등교육 이상을 수료한 사람이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과정남은 업계의 이야기를 ‘더 넓은 업계’와 ‘준업계’까지 넓혔지만, 대중까지 넓히진 못했다. 과정남도 완전 대중을 지향하기보다는 대중과 전문가 사이 ‘덕후’를 지향하는 거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금도 전문가 그룹에서는 ‘틀린 얘기는 아닌데 대충해서 되겠냐’는 피드백을 받고, 또 한 쪽에서는 ‘너무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문가의 지식을 날 것이라고 했을 때, 가공을 거칠수록 조금 더 접근하기 쉬워지는 맛이 됩니다. 그런데 저희도 어느 순간 가공을 포기했어요. 날것의 재료를 던지고, ‘원하시면 즐겨라’는 느낌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꼭 쉽게 설명하는 게 좋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 지식을 다룰 때 쉽게 설명해야 좋은 것 같은 그런 미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 정한별

‘덕후’를 타깃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그래도 초기 기대 대비 1천% 이상 성장했다. 처음에는 예산도 없고, 시간 내서 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100명 정도가 목표였다. 지금은 안드로이드 기준으로 1100명이 구독하고 있다. iOS에서도 비슷할 것으로 추산한다. 재생 수도 많이 뛰었다. 2014년에는 1년 재생 요청을 다 해도 3천회 미만이었지만, 지금은 이번 달만 해서 재생횟수가 1만2천회를 넘었다. 팟빵 추천 팟캐스트에도 올라갔다. 페이스북 페이지도 광고 한 번 없이 좋아요 4천개를 넘겼다. 3년간 꾸준히 콘텐츠를 만든 결과다. 과정남은 비록 적지만 밀도가 높은 독자층을 확보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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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없는 팟캐스트

“말을 하는 건 부담이 덜하죠. 말하는 거 하나하나 레퍼런스를 달진 않잖아요.”

과정남이 팟캐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비교적 쉬워서’다. 학문하는 사람에게 글은 엄격한 전달 수단이다. 정한별 씨는 “저희에게 글은 최후의 수단이고, 가장 엄밀한 매체”라고 말했다. 글로 하면 그냥 못 넘어가는 내용도 말로 하면 둥글게 넘어갈 수 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팟캐스트가 최적이다.

콘텐츠를 제작하기 전에는 대본을 작성한다. 특히 정책 관련 방송은 대본을 확실하게 짜서 들어간다. 인터뷰도 처음에는 사전 미팅을 거쳐 대본을 짰는데, 자연스러운 방송을 위해 지금은 적당히 사전 정보만 가지고 방송에 임한다. 방송 첫 1년 동안은 학습계획표처럼 구성을 짜서 과정남의 문제의식을 전달하고자 했고, 지금은 큰 흐름은 유지하되,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아이템 등을 다루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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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말고! (사진=Novel Prize 페이스북)

순수수학부터 여성문제까지 다룬다

“첫 번째 인터뷰가 기억에 남아요. 순수수학을 하는 형님이신데, 박사를 받고 포닥을 갈 예정이셨거든요. 끝날 때 ‘내 주변에는 술, 마약, 도박으로 인생 망친 사람보다 수학으로 망친 사람이 많다’라고 하셨어요. 순수학문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 정한별

“저랑 친한 형이에요. 다들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노는데, 그 형도 박사 하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왜 이야기 안 하냐’ 물었더니, ‘너희들은 모른다’라고 하는 거예요. 들었는데 진짜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학문간의 벽이 이렇게 높고 험하구나, 정말 딴 세상이구나 생각했어요. 이공계 중에서도 실험도 하지 않는 이론의 세계가 (청취자에게도)새로울 것 같았습니다.” – 박대인

과정남은 대중매체가 잘 다루지 않는 주제를 고른다. 본 주제인 과학기술 정책 이야기도 다루지만, 원자력 안전 전문가, 메카트로닉스 엔지니어, 천체이론 물리학자, 줄기세포 연구자 등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도 갖는다. 대학원생, 정부출연연구소 소속, 제약회사 연구원 등도 만나 업계의 현실을 들어보기도 한다. 최근 다루고 있는 주제는 여성이다.

“과정남을 몇 번 진행하다 보니까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진행하면 특정한 시선만 보여주는 문제가 있겠다 싶더라고요. 섭외할 때도 (성별을 맞추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정말 열심히 노력해도 잘 안 맞거든요. ‘(섭외가)이렇게 노력해야 할 문제인가’ 생각하게 됐고,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죠” – 정한별

박대인 씨는 “언젠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라며 “저희가 별생각 안 하고 인터뷰이 모집했으면 100% 남자가 됐을 거다. 평균적인 성비가 그렇다”라고 말했다. 과정남은 과학기술과 여성 특집을 통해 여성의 몸과 관련된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상상이 되고, 대상화되고, 어떻게 제도적으로 정의되는지 풀고 있다. 과정남은 최근 이슈인 AI도 다룰 예정이다. 검역·방역은 과학기술 정책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그 외에 ‘장애와 과학기술’ 관련 주제도 다뤄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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