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욱하는 성질이 문제다. 별 일 아닌 일로도 화가 나서 못 견딜 때가 많다. 생각에 그치고 만다면야 젊은 기질로 치부하고 말면 될 일이다. 그런데 꼭 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만다. 일이 벌어지고 나면 후회막급이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자신을 자책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 일만 해도 그랬다. 3년 전쯤인가 지인 소개로 막걸리 개발에 미친 선배를 만난 적이 있었다. 막걸리 열풍이 불기 전인 그 때야 막걸리는 가능성이 전무한 사업 아이템에 불과했다. 간단한 격려성 온라인 기사를 쓰고 나서 그를 그냥 잊고 지냈다. 한두 해 전쯤 막걸리 열풍이 불 무렵 공교롭게도 그이를 다시 만났다. 난 오래 전부터 막걸리에 온 에너지와 시간, 돈을 쏟아 부은 그가 엄청난 부자가 돼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영세 사업자로 그는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특허를 받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는 했으나 제대로 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혼자 막걸리 냉장차를 몰고 전국을 도는 낭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막걸리에 미친 그 선배, 이상철)그의 처지를 본 순간 또 욱하는 성질이 발동하고 말았다.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할 형편도, 광고를 할 처지도 아니라면 내가 직접 팔겠다고 선언하고 만 것이다. 계산이야 서 있었다.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며 막걸리를 알리자는 생각이었다. 개발자에게 내가 나서서 막걸리를 팔아주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을 하고나서야 내가 얼마나 성급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막걸리 전문점을 만들어 고객에게 판다고는 하나, 장사나 사업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내가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돈도, 시간도 없었다.
몇날 며칠을 두고 내 성급한 기질을 후회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머리 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자질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머리를 남에게서 빌려올 수 있지만, 건강은 안 된다.’ 그의 말대로, 그는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마당에도 여전한 건강과 불건전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남의 머리조차 공공연히 빌린다는 얘기를 하는 상황에서 뭐든 못 빌릴 게 뭐가 있을까. 경험이나 돈, 시간이 없다면 그건 남들한테 빌리면 된다. 그간 만나온 사람들을 찾아보자. 이런 생각이 스친 것이다. 막걸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무작정 불러 모은 것은 그래서였다. 결과는 일사천리였다. 누군가는 돈을 조금씩 냈고, 경험이 있는 이는 노하우를 제공했다. 나를 대신해 일을 처리해주는 후배들도 생겼다. 나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공허하게 느껴졌던 일이 비로소 현실성 있는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읽은 것이 바로 히라노 아쓰시 칼이 쓴 <얼라이언스>라는 책이다. 이 사람은 일본 최대의 이동통신 기업인 NTT도코모사에서 ‘신용카드 전자지갑 휴대전화’의 신화를 만든 이다. 신용카드 전자지갑 휴대전화는 말 그대로 신용카드와 전자지갑 기능이 휴대전화와 결합한 형태를 말한다. 지금이야 대부분 휴대전화가 그런 기능을 갖고 있으나, 2000년대 초반 그의 발상은 혁신적인 것이었다. 아이디어보다 더 혁신적인 것은 그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방식이었다. 1999년 그가 NTT도코모의 미래 사업팀에 입사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정보통신(IT)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12년간 니혼코교은행서 잔뼈가 굵은 금융통이었다. 그런 그가 최첨단 IT 비즈니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무엇이 그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히라노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얼라이언스다. 원래 얼라이언스는 제휴나 동맹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보통 기업간의 제휴나 동맹을 의미하는 용어다. 그런데 히라노는 개인 차원에서도 남과의 얼라이언스를 통해,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빌리되, 그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얼라이언스다. 신용카드 전자지갑 휴대전화도 그렇게 현실화 됐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가 진화를 거듭하던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와 전자지갑 기능을 생각한 것은 히라노만이 아니었다. 다수가 엇비슷한 생각을 했다. 오히려 누가 가장 먼저, 효과적으로 실행하느냐가 문제였다. 이 때 히라노는 회사 바깥 증시 애널리스트를 만나 통신업이 금융산업에 진출할 경우의 파괴력에 대해 설파했다. 이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나오자, 소속 회사인 도코모가 히라노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 때 다시 업계 2위 신용카드 업체 대표를 만나 설득했다. 1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경쟁업체가 놓친 신사업에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런 식이었다. 일단 아이디어가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하자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람을 벗어나 기업과 산업까지 연결되는 거대 얼라이언스가 형성됐다.
물론 남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즉 얼라이언스를 이끌어내려면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히라노는 그것을 ‘목적에 대한 공유와 윈-윈(win-win)에 대한 확신’이라고 본다. 남들이 나와 목표가 같다고 느끼는 동시에 나와 함께 하면 자신에게도 득이 된다는 사실을 납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세계의 전략적 제휴나 동맹 관계를 개인 차원에 적용하면서, 히라노는 구체적인 얼라이언스 노하우들을 제시하고 있다. 얼라이언스를 위한 사고방식이나 정보 정리, 인맥관리 방법 같은 것들이다.
막걸리 전문점을 개업하면서 내가 했던 것도 실은 얼라이언스였다. 그런 개념 자체를 모른 상태였지만, 돌이켜보면 분명히 그랬다. 막걸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 가운데 자본을 댈 사람들을 구했다. 그들과는 막걸리라는 목표가 같았고, 전문점이 잘 되면 나나 그들 모두 득이 될 일이었다. 식당이나 바 경험자들이나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도 끌어 모았다. 그들과도 윈-윈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결국 대부분이 공감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단순히 계약 관계에서 찾을 수 없는 상대방과 일에 대한 진정한 몰입이 얼라이언스의 최대 장점이었다.
얼라이언스를 하나의 가설이나 이론이라고 하기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히라노의 책은 자신의 경험이 주가 되는 일종의 비망론(memorandum)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군데군데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보더라도, 그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빼어난 상상력과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실행력이다. 히라노는 두 가지를 결합한 것을 상행력(想行力)이라고 명명했다. 하긴 요즘 사회생활에서 상행력 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히라노의 휴대전화 아이디어처럼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내 막걸리 전문점 아이디어도 아직까지는 순항중이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나처럼, 혹은 히라노처럼 생각할 일이다.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자.’
히라노 아쓰시 칼 지음, 김정환 옮김, <얼라이언스>, 브레인스토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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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지금 호드 무시하나연?” 류의 댓글이 달려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없어서 달고 갑니다.-_-
록타르 오가~
아.. 윗분 제가 달러왔는데….-_-;;;ㅋㅋ 그렇지만 좋은글에 장난성 댓글을 달기가 조금 찔리네요ㅠ 잘읽었습니다:)
전 호드지 말입니다..
얼라이언스를 위하여!!!
죄송합니다..ㅜ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호드를 위하여!!!!!!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얼마전 서점에서 책을 잠깐 읽었는데 그 작가분이시군요.
책도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