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을 배회하는 유령 ‘공인인증서’, 왜 안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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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인인증서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로 꼽힌다. 다른 세계와 단절돼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 갈라파고스 섬처럼, 국가에 의해 강제된 공인인증서 사용은 IT 생태계를 ‘글로벌 스탠다드’와 단절시킨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사용자 불편부터 보안 취약성까지 다채롭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이 있다.

공인인증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

공인인증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공인인증서 문제해결을 위한 이용자모임(이하 이용자모임)은 지난 2월27일 ‘공인인증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단법인 시민이만드는생활정책원구원, 오픈넷 등이 주축이 된 ‘이용자모임’은 공인인증서 문제해결에 관심 있는 단체와 개인이 함께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이용자모임의 첫 공식 행사다. 스타트업 업체와 관련 전문가가 모여 공인인증서 규제에 대해 스타트업 업체가 가진 고민과 정책적 대안에 대해 논의했다.

행사에 참여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공인인증서 규제로 인해 한국 스타트업들의 경쟁력이 낮아지는 것을 우려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해외 스타트업들이 고객에 맞춰 UX를 최적화하는 반면 한국 스타트업은 규제에 맞춰 UX를 최적화한다”라며 규제가 스타트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또 해외 스타트업과 비교해 국내 스타트업은 “시장에서 이긴 최고의 기술이 아닌 규제에 맞춘 기술을 선택하게 된다”라며 공인인증서 규제 문제가 기술을 발전을 더디게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스타트업과 해외 스타트업 비교

한국 스타트업과 해외 스타트업 비교(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센터장 발표 자료)

“외국 서비스와 경쟁하기에 많은 불합리함을 겪고 있는 건 확실하다.” 국내 숙박 예약 스타트업 야놀자에서 개발을 담당해온 김진중 야놀자 R&D 그룹장은 실제 업계에서 체감하는 규제의 불합리함을 토로했다. 숙박 예약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구매 과정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호텔스닷컴 등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해외 업체는 원클릭으로 예약이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국내 업체는 규제에 따른 사용자 인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공인인증서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박지환 오픈넷 자문 변호사는 ▲엄격한 온라인 본인확인 규제 ▲전자서명법에 명시된 공인인증서 규제 ▲전자금융거래법령의 공인인증서 사용관련 규제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전자금융거래법령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제9조 1항에 따라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의 손해 배상 책임을 묻고 있지만 2항에 붙은 단서 조항에 의해 책임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자가 부담하도록 한다.close상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규정은 폐지됐지만 보안 책임을 소비자에게 묻는 금융회사에게 유리한 손해배상 규정이 여전하기 때문에 업체들이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단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번 행사에서 논의된 공인인증서 규제에 대한 대안은 크게 세 가지다. ▲전면 시장 자율화 ▲정부 및 공공기관 본인확인 방법에만 개입 ▲지금 그대로 계속 개입 등이다. 전면 시장 자율화는 말 그대로 본인 확인 방식에 국가가 사전 개입하지 않고 시장의 원리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얘기다. 두 번째 방법은 영국 본인확인 제도처럼 공공영역에만 개입하되 본인확인 기술은 서비스 목적에 맞게 다양화하자는 주장이다. 이용자 모임은 첫 번째 방안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이영준 로아팩토리 대표, 김진중 야놀자 R&D 그룹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이영준 로아팩토리 대표, 김진중 야놀자 R&D 그룹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왼쪽부터)

“그는 공인인증서 없는 한국인처럼 슬피 울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공인인증서에 대한 불편을 드러낸 ‘갈라파고스적 농담’이다. 한국인은 언제까지 슬피 울어야만 할까. 김진중 야놀자 R&D 그룹장은 “공인인증서 자체는 나쁜 건 아니지만 정부기관에서 이것만 강제하는 것은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다”라며 “공인인증서 외에 다른 본인 인증 수단도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용자모임측은 “가능하다면 대선주자와 함께 3-4월 중 2차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