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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니] VR 기술 경연장에서 보낸 하루

2017.03.14

2010년 3D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상영관을 들어설 때 미소지기가 3D 안경을 나눠주고,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이 3D 안경을 일일이 반납하고 나가는 식이었죠. 친구, 선배, 친척들, 너나 할 것 없이 TV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연일 촉수 달린 외계괴물 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폭발적인 반응에 오히려 끝까지 외면하고 싶다는 반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회화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어느새 3D 안경을 쓰고 상영관에 앉아있었습니다. 그토록 유명한 영화를 본 소감은 단순했습니다.

오, 토할 것 같다….

3D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후로 3D 영화 열풍도 잦아들었습니다. 콘텐츠가 많지 않은 데다가 매번 기기를 착용해야 하는 번거로움, 착용 후의 멀미 등 여러 이유 때문이었죠. 입체를 넘어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게 해준다는 가상현실(VR)은 어떨까요? 지난주 코엑스에서 열린 ‘VR 엑스포 2017‘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과거 3D 안경의 악몽이 아른거려 식사도 조금만 했습니다. 엑스포 관람객은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꽤 다양했고 또  매우 많았습니다. VR 게임 체험장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저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사진=VR EXPO 2017

사진=미디어프론트의 ‘VR 어드벤처’

미디어프론트는 VR 콘텐츠와 함께 행글라이더, 번지점프 같은 각종 VR 놀이기구(어트랙션)를 제작하는 업체입니다. 줄이 끊이지 않고 서있던 곳이죠. 외관이 가장 화려했습니다. 나무에 동물 인형까지 세심한 설정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지켜보면 기기들이 너무 단순하게만 움직여 ‘재미가 있긴 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글탐험을 선택했습니다. 헤드기어를 끼고 몇 초 후 SBS ‘정글의 법칙’에 나올 법한 정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사실적인 묘사는 아니었으나 몰입감 있는 정도였습니다. 대기하면서 볼 때에는 그네처럼 생긴 기기가 위, 아래로만 이동해 매우 단순해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탑승해보니 기기가 흔들릴 때마다 실제로 전진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위로 올라갔다가 훅 내려올 때에는 실제로 떨어질 것처럼 아찔했습니다. 순간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습니다. ‘아악!’  대기하는 동안 이런 고성을 들은 적 없었다는 생각이 든 건 순전히 기분 탓입니다.

단점도 있었습니다. 좌우로 고개를 돌릴 때는 괜찮았지만 상하로 움직이자 화면이 엉켰습니다. 하늘을 볼 때는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체험 시간은 5분 남짓이었습니다. 줄을 선 시간은 15분 정도. ‘실제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을 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진=나우웨이팅 부스 모습

사진=나우웨이팅 부스 모습

엑스포 부스 곳곳에 O2O 서비스 ‘나우웨이팅’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휴대폰 번호를 적어두면 몇 분이 소요될지 미리 알려주고, 내 순서가 다가오면 카톡을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여러 맛집에 설치되고 있다고 합니다. 엑스포 안에 있을 때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편리했습니다. 그런데 앞 사람이 대기를 취소하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제 순서가 되어버린 것이죠. 자리에 없으면 자동취소되기 때문에 해당 VR 게임은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또 휴대폰 배터리가 꺼지면 아예 대기할 수 없었습니다. 가까운 위치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 유용하게 쓰일 듯합니다. 

사진=VR게임 체험하는 모습

사진=VR 게임 체험하는 모습

인스퀘어는 게임, 안전, 재난, 의료 분야의 체험형 VR를 만드는 업체입니다. 인스퀘어의 ‘배틀 스쿼드 VR’ 게임 체험은 미리 가서 기다렸습니다. 배틀 스쿼트 VR는 총으로 사격하는 1인칭 슈팅게임(FPS)이었습니다. 게임 부스는 전부 사용자가 보고 있는 화면을 관람객도 볼 수 있게 TV 화면으로 보여주게 돼 있었습니다. 일행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게임 중이었습니다. 남성은 후방 사격은 물론 앉아쏴까지 했고 여성의 열정적인 사격과 방어는 흡사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내가 저렇게 해야 한다고….’

2인게임이었지만 홀로 배틀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사방을 살펴야 하는 FPS 게임에 친숙하지 않았습니다. 헤드폰으로 총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어느새 적이 제게 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실제였으면 아마 참혹한 광경이 연출됐을 겁니다. 적군을 돌아본 이후로만 40연발 정도 맞았으니까요. 다행히 이번 행사용 게임 모드에서 이용자가 죽는 일은 없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대기하면서 봤던 게이머들의 모습이 생각나 게임 내내 여간 의식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앉아서 쏴야 하나. 몸을 숙여야 하나. 폼이 너무 이상한가. 너무 못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몰입은커녕 누군가 저를 죽여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습니다. 5분 동안 적군 셋을 죽이는 처참한 스코어가 나왔습니다. 배틀 스쿼드 VR는 VR방에 최적화된 2인용 배틀 게임이라고 합니다. PC방처럼 VR방이 대중화된다면 그곳에서 한번 더 도전해볼까 합니다. 이 밖에도 많은 업체들이 자사의 VR 기술을 뽐냈습니다. 다 체험해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사진=VR EXPO 2017

사진=VR 엑스포 2017

아직 VR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KT경영연구소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교량, 융합현실’ 보고서에서 “초기 시장은 VR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2017년 이후부터는 AR(증강현실)이 전체 시장의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AR는 ‘포켓몬 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3D 산업은 어지러움증, 콘텐츠 부족 등의 문제 때문에 크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VR 산업 역시 하드웨어 기기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킬러 콘텐츠가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힙니다. 3D 산업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입니다.

VR 엑스포 2017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앤디킴 HTC 바이브 부사장은 “지금은 ‘가상’이지 ‘가상현실’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현재 VR 기기들이 구현하는 감각은 시각에 치중돼 있습니다. 오감 중 많은 감각들이 비어있기 때문에 몰입이 어렵고 이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현석 스틱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은 컨퍼런스에서 VR 기기 착용시 어지러움이 유발되는 문제를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콘텐츠에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며 VR카페를 적극 보급해 대중화시켜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글탐험 같은 VR 체험은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일상 속으로 VR를 끌어오려면 좀더 폭넓은 콘텐츠 제작과 사용자 경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VR는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일상 속으로 편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AR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건, VR 기기를 체험해본 저는 VR방이 생기면 가볼 거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