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를 감시 카메라로 이용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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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 현대 사회를 진단하는 단어 중 하나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전자기기와 IT기술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감시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광범위한 도·감청이 지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TV가 도청장치로 이용될 수 있는 세상이다. 지난 주말엔 전자레인지가 감시 카메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됐다.

“전자레인지가 카메라로 변할 수 있다.” 지난 3월12일(현지시간) 켈리언 콘웨이 트럼프 대통령 수석 고문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콘웨이는 휴대폰과 TV 등을 통해 도청이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전자레인지 얘기를 덧붙였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중 트럼프 캠프를 도청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콘웨이는 “이는 현대 생활의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분명한 사실’일까.

블로터에서 사용하는 전자레인지

전자레인지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자레인지는 감시 카메라로 사용할 수 없다. 휴대폰이나 TV 등을 통한 도·감청은 위키리크스 문건에서 알 수 있듯 가능성 있는 일이다. 컴퓨터에 달린 웹캠은 오랫동안 해킹의 대상이 돼 왔지만, 전자레인지는 그렇지 않다. 효과적인 감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가 사용하는 마이크로파는 레이더처럼 특정 유형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카메라로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이론물리학자인 로버트 맥니 시카고 로욜라대학 교수는 <더버지>를 통해 “우리는 항상 마이크로파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지만, 콘웨이가 말한 것처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이러한 이미지화 작업은 일반 전자레인지와 거리가 멀다고 전했다.

만약 마이크로파를 통한 이미지화가 가능하다고 해도 전자레인지를 감시 카메라로 쓰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전자레인지는 기본적으로 문이 열린 상태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마이크로파 방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로파가 전자레인지 밖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감시 장비로 쓰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전자레인지가 문이 열린 채 작동한다면 눈치채기도 쉬울 것이다.

별도로 카메라가 달린 경우가 아니면 전자레인지를 감시장치로 사용하긴 힘들어 보인다.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전자레인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마이크가 장착된 전자레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제너럴일렉트로닉, 삼성, LG 등 주요 가전제품 제조사에도 인터넷과 연결된 전자레인지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기기를 통한 도·감청 문제는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잦은 문제 제기는 피로도를 높이고, 사람들을 감청 문제로부터 눈 돌리게 한다. 도·감청 문제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쟁에 활용할 경우 문제의 본질은 희석되고 비생산적인 논쟁만 남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청 주장에 대한 근거를 여전히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