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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의 눈으로 기계문명을 산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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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가 범람하는 시대다.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찰나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 기계가 넘실댄다. 매일 새로운 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그 유혹에 답한다. 언론은 새로운 기계의 ‘스펙’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의 일상은 기계 없이 굴러가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아트계열 융합예술을 가르치는 이영준 교수는 예의 보기 드문 일을 하는 기계비평가다. 그는 국내에서 ‘기계비평’이라는 낯선 장르를 개척했다. 이영준 교수는 잠실야구장과 수술실, 도심의 지하철과 마지막 뗏목 사공이 있는 강원도 영월군을 넘나들며 인문학자의 눈으로 ‘기계’를 말한다. 기계의 기능에만 천착하지 않고 그 의미를 성찰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기계비평가 이영준 교수가 계원예술대학교 본관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중이다.

▲이영준 교수

시작은 미술비평…인천항 풍경 보고 기계비평 길로

이영준 교수가 처음 비평 활동을 시작한 분야는 예술 분야다. 그러다가 2003년 인천항을 처음 보고 예술비평을 접고 기계비평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항해하면서 본 큰 항만들에 비하면 작지만, 생전 처음 본 인천항 풍경은 너무 놀라웠다. 커다란 기계들이 굉음을 내면서 움직이고 작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기계들의 풍경을 비평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천항 풍경을 접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15년간 기계비평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기계비평-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현실문화연구), ‘페가서스 10000마일'(2012, 워크룸 프레스), ‘기계산책자-비평가 이영준, 기계들의 도시를 걷다'(2012, 이음) 등 기계비평서를 냈다.

이영준 교수가 15년 가까이 활동하며 여러 책을 냈지만, 기계비평은 여전히 국내에서 낯선 분야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프랑스의 질베르 시몽동, 폴 비릴리오 등 테크놀로지 철학자가 있고, 일본에는 직접적인 비평서는 아니어도 ‘철도사고는 왜 일어나는가’, ‘터널의 역사’ 등 비평의 토대가 될 만한 책들이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 기술비평가라 일컬을 만한 사람은 이영준 교수와 함께 최근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기술비평'(2017, 반비)을 펴낸 임태훈, 홍성욱 정도가 있을 뿐이다. 깊이 있는 기술 서적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영준 교수가 2003년 본 인천항의 모습

▲인천항 모습 (사진=이영준)

이영준 교수는 “내가 하는 일이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라며 “앞으로도 이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폭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기계비평 활동을 봐줬으면 하는 독자층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엔지니어가 보고 틀린 점이 있다고 지적해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그가 체감적으로 느끼기에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독자가 많다고 했다.

‘테크놀로지 밑지층’의 중요성

“대부분 물건이 산업생산체계 안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시스템을 벗어나서 조금씩 달리 만들어진 물건 전반을 ‘테크놀로지 밑지층’이라고 한다.”

이영준 교수는 기계문명 전면을 장식한 테크놀로지만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산업화·표준화되지 못한 테크놀로지의 다양한 면모에 주목한다. 그는 이런 기계와 기술 전반에 ‘테크놀로지 밑지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책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밑지층’이라는 말을 따와 만든 개념이다.

“테크놀로지 밑지층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영준 교수는 테크놀로지 밑지층을 이같이 역설적인 말로 설명했다. 사실 중요해 보이는 테크놀로지는 표준화를 거쳐 산업 생산 시스템의 궤도 안에 든 테크놀로지들이다. 이들은 안전성을 검증받았고 널리 쓰인다. 또 대형 마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손쉽게 살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이영준 교수는 이같은 편리성 이면에 주목했다. 그는 “산업화와 표준화가 테크놀로지의 다양한 면을 몰아내고 소수가 독점하는 테크놀로지만 남겨 놓았다”라며 “이런 테크놀로지로는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테크놀로지 밑지층은 테크놀로지의 층위를 다양하게 한다. 이런 가운데 테크놀로지는 변형을 거듭하며 새로운 용도로 쓰이고 창의적인 테크놀로지의 개발로 이어진다. 이영준 교수는 “테크놀로지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것을 자꾸 생각해야지 창의적인 게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영준 교수는▲지역 테크놀로지 ▲불법 테크놀로지 ▲오타쿠 테크놀로지 ▲옛날 테크놀로지 ▲실패한 테크놀로지 ▲그밖에 사용자가 변형할 수 있는 수많은 자생적 테크놀로지 등이 테크놀로지 밑지층이라고 설명했다. 규정을 무시하고 각자의 기호에 맞춰 개조해 만든 오토바이 쵸퍼(Chopper), 미국 라이트 형제에게 영감을 주었던 독일의 활공기 연구가 오토 릴리엔탈의 글라인더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가깝게는 전통시장에서 흔히 보는, 반으로 자른 페트병에 끼워진 까망 비닐봉지도 테크놀로지 밑지층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오토바이 배달하는 분들을 보면 추우니까 손잡이에 비닐을 씌워서 다닌다. 비닐이 얇으면 너덜너덜해지니까 두꺼운 비닐을 가죽같이 만든 게 있다. 이런 건 오토바이 회사가 안 만든다. 이런 게 다 테크놀로지 밑지층이다.”

그는 이어 “청계천에 가보면 만날 수 있는 풍경도 다 테크놀로지의 밑지층”이라며 “다른 예로 LED가 있는데, 이게 21세기 들어 대한민국 영등포의 카바레 건물을 번쩍번쩍 장식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최근에 촛불집회에 LED 촛불이 많은 것도 흥미로운 사례”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테크놀로지 밑지층에 알게 모르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이영준 교수는 테크놀로지 밑지층에 대해 이같이 정리했다.

이영준 교수가 한강 다리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영준 교수

“‘엔진의 역사’에 집중할 것”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이영준 교수는 “기계비평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요즘에서야 확실히 잡았다”라며 “‘엔진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려 한다”라고 답했다.

왜 하필 ‘엔진’일까.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는 기계가 뭘까? 그중에서도 가장 원동력이 되는 것을 생각해보니 ‘엔진’이었다.”

대부분의 탈것의 가장 앞에는 엔진이 있다. 이영준 교수는 “현대인은 엔진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간다. 갈 수 있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드니까…”라며 엔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엔진의 종류와 각 엔진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연구할 계획이다. 엔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없다고 한다.

엔진에 대한 기술비평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자 이영준 교수는 “우선 가장 상위 질문은 ‘엔진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무엇일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는 엔진을 끌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하는 게 (엔진의)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엔진이 우리 삶을 끌고 다니는 형국이 됐다”라며 “엔진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를 끌고 다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각 엔진이 등장하고 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대적 배경을 비평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정당성’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다. 이영준 교수가 정의하는 기술적 정당성은 ▲효율 ▲가격 ▲기능 3가지를 적절히 갖춘 상태다. 그는 엔진의 역사에 대한 자료 조사를 1년 정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계비평의 첫걸음은 ‘관찰’

마지막으로 이영준 교수에게 기계비평에 필요한 자세를 물었다. 대답은 명료했다.

“관찰하라.”

관찰은 전문지식 없이도 할 수 있다. 그저 대상을 바라보면 된다. 관찰을 토대로 한 현상적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전문적 지식은 그다음 일이다.

이영준 교수는 평생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가면 무슨 새인지 관찰하고, 비행기가 지나가면 비행기를 관찰하는 식이다. 이영준 교수는 “평생을 관찰하니 날아가는 새도 보면 대략 무슨 새인지 판별이 된다. 너무 멀지 않으면 비행기나 헬리콥터 기종도 대강 안다”라고 말했다.

관찰은 곧 ‘사유’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평면사각 모양을 한 요즘 모니터를 관찰한 다음 “왜 곡면이 아니라 평면사각으로 만들었을까”라고 질문하며 사유하는 것이다. 전문지식 없이도 일반인이 할 수 있다. 이영준 교수는 “창의적으로 관찰하는 태도를 기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외에도 ▲기계를 사용하는 다른 방식과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기 ▲사라진 테크놀로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사라질 테크놀로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 등 자세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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