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한 모습.

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한 모습. <출처: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

제주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 씨는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기 전 집안에 설치된 스마트미터를 꼭 확인한다. 하루 중 전기료가 가장 저렴한 시간에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함이다. 직업상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 만화가 김아무개 씨는 올빼미 생활에 익숙해졌다. 전기료가 가장 싼 심야 시간에 주로 작업을 하다보니 어느새 낮과 밤이 바뀐 채 생활하게 됐다.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 사례가 2020년에는 일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을 이용해 외부에서 원격으로 집에 설치한 보일러나 에어컨을 조작하고,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해 어떤 가전제품이 언제 전기를 많이 쓰는지도 스마트폰 앱으로 파악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는 2020년, ‘스마트그리드’(SmartGrid)와 사물인터넷이 정착되면, 미래의 전기 사용 패턴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지 모른다.

스마트그리드가 바꾸는 거실 풍경.

스마트그리드가 바꾸는 거실 풍경. <출처: 한국전력공사>

똑똑한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스마트그리드는 ‘똑똑한’을 뜻하는 ‘Smart’와 전기, 가스 등의 공급용 배급망, 전력망이란 뜻의 ‘Grid’가 합쳐진 단어다. 차세대 전력망, 지능형 전력망으로 불린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에서는 ‘스마트그리드를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ICT)을 더해 전력 생산과 소비 정보를 양방향, 실시간으로 주고받음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전략망’이라고 설명한다.

즉, 스마트그리드란 전기 공급자와 생산자들에게 전기 사용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전기 공급을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전기와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전력망을 지능화‧고도화해 고품질 전력서비스를 제공하고 에너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한다.

기존 전력망과 지능형 전력망 비교.

기존 전력망과 지능형 전력망 비교. <출처: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

기존 전력망은 최대 수요량에 맞춰 예비율을 두고 일반적으로 예상 수요보다 15% 정도 많이 생산한다. 중앙집중형 발전 형태로, 공급자 중심으로 설비를 운영한다. 전기를 생산하기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로 대규모 발전을 한다. 이렇게 생산한 전기가 동시에 버려지기도 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스마트그리드는 다양한 데이터로 사용하는 전기량을 예측하는 식으로 효율을 높여 에너지 낭비를 막는다. 신·재생에너지를 고려한 분산 발전 형태다. 양방향으로 전력과 정보가 흘러 소비자 참여로 설비가 운영된다. 전력 수급 상황별 차등 요금제를 적용해 전기 사용자에게 전기 사용량과 요금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앞에서 ‘에너지 효율’을 고민하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얘기는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언제부턴가 ‘불볕더위’, ‘최강한파’라는 말이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가장 더운날, 추운날이 매년 새롭게 한계치를 갱신한다. 고무줄 같은 날씨에 전력 사용량도 널을 뛰었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전력 수급과 관리의 어려움을 키웠다. 정부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백화점, 매장 시설 내 온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할 것을 권유했고, 대규모 사업장엔 10% 전력 절감을 권고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아파트에선 관리사무소를 통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했다.

모두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의 화석연료 사용량은 1965년에서 2006년까지만 2.927% 상승했고, 전 세계적으로 165%나 상승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발생하면서 전세계는 녹생성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나라가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를 찾아나섰고 태양열, 수력 등의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했다.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스마트그리드는 이런 고민에서 등장한 기술이자 에너지 정책이다. 미국은 에너지 자립과 노후된 전력망의 현대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목표로 2003년 ‘그리드 2030(Grid 2030)’이라는 국가 비전을 발표하고 전력망 현대화, 스마트 계량기 보급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EU도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06년 ‘스마트 그리드 비전 & 전략(Smart Grids Vision & Strategy)’을 선포했다.

지난 2014년 3월 유럽에서 진행된 ‘에너지 레볼루션’ 행진.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얘기도 함께 이뤄졌다.

지난 2014년 3월 유럽에서 진행된 ‘에너지 레볼루션’ 행진.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얘기도 함께 이뤄졌다. <출처: Flickr ‘Friends of the Earth Europe’ CC BY>

일본은 2030년 태양광 발전량을 100GW까지 늘이는 로드맵을 세워 스마트그리드 분야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전체 전력망 지능화 완성을 위해 2020년까지 총 1조7천억 위안화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0년 1월 수립된 ‘스마트 그리드 산업 국가 로드맵’을 바탕으로 2020년까지 도시단위 지능형 전력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에너지 저장, 스마트그리드 구현의 핵심

가장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는 가전제품에 IT를 적용해 가정 내 전력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사용하지 않는 기기를 구분하고,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시간대에 충전하는 식이다.

그 외에도 건물 전체 혹은 여러 건물들을 연결해서 스마트그리드를 구성할 수 있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에 전기를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한 시간에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스마트그리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건물 내 전력, 가스, 물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냉·난방 운영설비부터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스마트계량기(AMI),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전기차 및 충전소, 분산 전원, 신·재생에너지, 양방향 정보통신기술, 지능형 송·배전시스템 등이 필요하다.

이 중 핵심은 바로 ESS다. 예전에는 수요를 예측해 전력공급량을 조절해도 이미 생산된 뒤 사용하지 못한 전기는 그대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ESS는 대용량 전기를 저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에너지를 컨테이너 모양의 대형 배터리에 저장하는 식이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나 납축전지, 나트륨-황 배터리 등이 대용량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로 쓰인다.

ESS를 이용해 전기를 저장할 수 있게 되면 태양광, 풍력, 조력, 파력 등 신·재생에너지나 소규모 발전소에서 얻은 소량의 전기를 저장해 나중에 쓸 수 있다. ESS가 저장된 에너지로 수요과 공급을 적절히 조절해 버려지는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또한, ESS는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반복되는 전력 부족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 ESS에 전기를 저장해 수요가 최고치에 달하는 시점의 전력 부하를 조절해 발전 설비에 대한 과잉 투자를 막고 돌발적인 정전 시에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출처: 한국전력공사 공식 블로그>

AMI는 스마트미터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원격 검침기를 통해 측정해 전력 사용 현황을 자동 분석하는 기술이다. 스마트미터는 각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력 사용량을 자동으로 검침하고, 그 정보를 통신망을 통해 전달하는 똑똑한 계량기다.

전력회사는 스마트미터를 통해 얻은 전기 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전력 사용량에 맞춰 전기요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용자별 전기 사용 패턴을 파악해 최적화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에, 전기요금을 절약하고 전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

AMI로 수집한 정보를 와이파이 등 통신망으로 전송한다.

AMI로 수집한 정보를 와이파이 등 통신망으로 전송한다. <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상상에너지공장소>

AMI를 활용하면 지금처럼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며 검침하는 데 따라 발생하는 오차 등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효율적으로 전력을 생산·관리할 수 있다.

AMI.

AMI. <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상상에너지공장소>

제주도에 실증단지 구축

한국전력공사는 2009년부터 제주도 구좌읍(제주 동북부 소재)일대 스마트그리드를 위한 실증단지 ‘제주 SG 실증단지’ 인프라를 구축했다. 2011년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실증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 한국전력공사, 민간기업이 총 2465억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시범사업이다.

제주 SG 실증단지는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현을 위해 국내 최초로 조성되는 시범단지로, 세계 최고수준의 스마트그리드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방향 전력 전송과 고장 시 자동복구가 가능하고, 각종 첨단 가전기기와 통신하면서 전력 요소를 제어할 수 있다.

실증단지에서는 스마트계량기를 기반으로 실시간 전기요금 정보를 제공해 전기요금이 비싼 시간대 전력사용을 저렴한 시간대로 변경해 사용할 수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연계하고 남는 전력은 다른 지역으로 전송할 수도 있다.

제주 SG 실증단지가 구현하는 스마트그리드.

제주 SG 실증단지가 구현하는 스마트그리드. <출처: 한국전력공사 공식 블로그>

전기자동차가 운행될 수 있도록 전기충전소와 배터리 교환소도 설치했다, 가정에서도 자동차 전지를 충전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 외에도 맞춤형 에너지 정보, 수요관리, 실시간 요금제 등 국내형 신전력서비스를 개발·운영하고 통합운영센터를 구축해 실증단지 운영 상황을 종합 모니터링해 에너지 정보 취합 및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제주 스마트그리드 체험관.

제주 스마트그리드 체험관. <출처: 한국전력공사 공식 블로그>

인천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도 스마트그리드를 준비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는 15억원을 투자해 AMI를 5천 가구에 보급하고 에너지 컨설팅 사업도 제공할 계획이다.

남양주시도 22억원을 투자해 AMI를 1만 가구에 보급할 예정이다. 전라남도 광주시 광산구청은 스마트그리드 기반의 자립형 분산전원시스템을 구축해 전기와 열을 탄력적으로 생산, 공급할 계획이다.

기업도 스마트그리드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SK는 SK텔레콤 사옥 중 SK T타워, SK남산, FMI 연수원을 기준 현장으로 선정해 ‘SK 클라우드 BEMS(SK Cloud 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

클라우드 BEMS란 시스템 내 건물들에 에너지 시설 관리 및 에너지 절감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로부터 창출된 에너지 절감 수익을 건물주와 공유하는 건물관리 서비스다.

이 글은 ‘네이버캐스트→테크놀로지월드→용어로 보는 IT’에도 게재됐습니다. ☞‘네이버캐스트’ 보기

izziene@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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