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블로거] 성공한 사람이 히말라야에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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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어느 날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이가 있다. 히말라야를 경험한 것이 계기였다. 그런가 하면 매년 휴가를 히말라야만 고집하는 이도 있다. 그는 히말라야야말로 번잡한 속세의 완벽한 탈출구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히말라야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네팔이나 인도일 수도 있고, 때로는 티벳일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절일 수도 있다. 아르마니를 입던 월가 투자은행가 한 사람은 불현듯 우리나라의 화계사를 찾아 현각 스님으로 거듭났다. 어느 곳이든, 누구든 상관없다. 우리 주변에는 성공적인 인생의 한 순간 돌연 명상의 삶으로 선회한 사람들이 있다.P4023601
이들에 대한 첫인상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실제 대면하든 글로 만나든.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고조되면서는 이들을 아예 수긍할 수 없게 됐다. 마음 한 켠으로 비난하는 마음마저 일었다. 현실도피자의 삶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탈리아 언론인 티찌아노 테르짜니(1938~2004)의 책을 접하고 나서였다.

우리 말 제목은 <네 마음껏 살아라!>(이광일 옮김, 들녘 펴냄).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끝은 곧 나의 시작>이라는 이탈리아어 원제가 훨씬 더 좋아진다. 위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테르짜니가 아들에게 회고하는 자신의 삶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아들에게 히말라야 현인의 면모로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뭐랄까, 오만함 같은 게 있어야 돼”

테르짜니는 국내 언론계 선배들로부터도 얼핏 들은 적이 있는 전설적인 기자다. 누구는 객관적인 기록자로 언급했고, 혹자는 좌파 기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양자 모두로 해석될 면모가 있었다. 그는 1970년대 초반부터 25년간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아시아 특파원이었다. 이 시기는 베트남 패망과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 중국의 문화대혁명 같은 동아시아의 격변이 벌어졌던 때다. 그는 이 일들을 직접 보고, 겪으며 전했다. 동시에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하고, 독일 매체에서 일한 언론인답게 서구 기준의 획일적인 관점을 거부했다. 게다가 그는 기자 이전에 내심 아시아와 혁명을 사랑한 지식인이었다. “나는 마오이스트(Maoist)였던 적이 없어. 어떤 집단이나 정당에도 매달렸던 적이 없지. 하지만 마오의 이념에는 완전히 매료됐어. 그가 중국에서 벌인 일은 정말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웠어!”

그러나 객관적 기록자이자 자유분방한 여행가였던 그는 아시아에서 벌어진 혁명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실험들은 하나같이 실패했다. 중국에서 취재를 하면서는 마오의 문화혁명이 낳은 황폐함에 진저리를 쳤다. 마오보다 더한 인간 개조를 꿈꿨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즈를 취재할 때는 죽음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건 젊은 시절부터 그가 꿈꿔왔던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혁명은 어린아이와 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무엇보다도 그는 사실에 토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였다. 진실과 양심에 근거해 자유롭게 쓰는 언론의 자유를 누구보다도 더 깊이 신봉했다. “기자는 뭐랄까. 오만함 같은 게 있어야 돼. 어떤 권력에도 주눅 들지 않는 독립적인 태도가 필요해. 나한테 어떤 일이 닥쳐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문화 대혁명 이후의) 중국에서 체포됐을 때 난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어. ‘권력? 마음대로 하세요! 난 쓰고 싶은 대로 쓸 겁니다.’ 이렇게 진실에 대한 발언을 신성한 권리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힘이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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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으로서 그의 주무대는 인류사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치명적이었던 1970년대의 동아시아였다. 말년의 그가 대변인실에 앉아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기나 하는 기자들을 얼마나 경멸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때(1970년대)야말로 저널리즘의 영웅 시대였지. 텔레비전을 따라한답시고 요란 떨다 망가지기 직전이었으니까. 그 땐 정말 제대로 썼어! 지금은 아니야. 텔레비전이 사람들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지. 이젠 집중을 요하는 기사가 없어. 짧은 광고문 수준이야. 그래서 신문은 잡다한 정보의 만물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어.”

베트남과 중국, 캄보디아를 거쳐 인도에서 근무할 무렵, 그는 아시아와 혁명, 저널리즘 전반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 그 결과 찾은 것이 히말라야였다. 그 곳에서의 영성 체험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게 됐다. “정치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오랫동안 나는 인식의 힘을 믿어왔어. 하지만 결국 사회의 외적인 변화가 개인의 내면적 변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 혁명, 전쟁, 끔찍한 학살극은 늘 있어 왔어. 하지만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지. 폭력, 공포, 절망,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어. 인간 내면의 세계가 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그는 자신이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아들이나 독자들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양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각자의 깨달음을 얻을 것을 권한다. “진리는 길 없는 땅이야. 길은 가는 사람이 찾는 거야. 누구도 너한테, ‘봐라, 저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아. 그럴 수 없지.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서는 절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해. 뭔가를 추구할 때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결코 찾을 수 없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는 대화 상대였던 아들과 나중에 불러들인 딸 앞에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며 스러져간다. “우리가 대지라고 부르는 이 찬란하고도 영원한 묘지는 계속 존재할 거야. 먼지와 재 위에 다시 풀이 돋겠지. 그렇다고 슬퍼할 건 없어…나의 끝은 곧 시작이니까.”

티찌아노 테르짜니의 정신을 이어 받아서일까? 그의 마지막을 기록한 아들의 글조차 아버지의 죽음 앞에 담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린 양쪽에서 아빠를 부축했다. 아빠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도저히 명상실에 데려갈 수가 없어서 아빠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숨결이 바람처럼 오락가락했다. 왔다간 가고, 왔다가고….”

테르짜니에 비하자면, 한창 어린 나로서는 생을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끝낼 수 있을지 아직 자신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삶에 대한 구분으로 보자면, 나는 여전히 치열한 언론인의 삶이라는 2단계 초입에 머무르고 있다. 히말라야와 명상, 그리고 영성으로 향한 그의 변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문득, 내가 히말라야를 그리워하게 될 날이 언제쯤일지 궁금해지기는 한다.

왜 현자(賢者)들은 히말라야에 오르는가?
– 아시아와 혁명을 사랑했던 한 언론인의 죽음 직전 회고-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네 마음껏 살아라!>, 들녘 펴냄,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