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갈아넣어’ 게임 만드는 게임업계, 막을 순 없나

우울증은 일반 인구 4배·자살 시도는 5배…게임 업계 노동자 건강에 켜진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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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게임산업 업무 환경을 말할 때 ‘직원을 갈아 넣어 게임을 만든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살인적이란 얘기다.

이달 초, 만성적인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나 업데이트를 앞두고 회사에서 모든 팀원이 강제로 초과근무를 하는 노동행태를 이르는 말.close에 시달리던 넷마블네오 직원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게임 업계에서 크런치모드로 인한 사망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다.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겨우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다’라고 말한다. 의학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산업에 과로사 및 과로자살 위험 요인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한다. 8월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넷마블과로사 사태와 게임산업의 위험신호들’ 토론회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8월16일 국회에서 '넷마블 과로사 사태와 게임산업의 위험신호들' 토론회가 열렸다. 가운데는 발제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모습.

▲8월16일 국회에서 ‘넷마블 과로사 사태와 게임산업의 위험신호들’ 토론회가 열렸다.가운데는 발제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모습.

게임 업계 위험신호 : 일반 인구 평균 대비 우울증은  4배↑, 자살 시도는 5배↑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게임 업계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게임회사 직원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라고 진단했다.

최 전문의가 게임 업계 노동자의 노동 환경과 건강상태를 연구한 결과, 게임 노동자의 약 14%가 ‘우울증 의심’, 약 40%가 ‘우울증 확실’ 상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3월과 4월 온라인 설문조사(620명 참여)와 12건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얻은 연구·조사 결과다.

이날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교수 역시 “직업을 가졌다는 게 우울증 예방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직업을 가진 집단의 우울증 비율은 대개 일반인구집단보다 낮다”라며 “그런데 (게임 업계에서는) 40%에 달하는 사람들이 우울증 확신 상태로 나타났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우울증은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게임 노동자의 자살 시도 경험은 남녀 평균 2.1%로,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평균인 0.4% 비해 5배 높다. 최민 전문의는 “집중적 초장시간 노동과 자살 사고의 관련성이 뚜렷이 드러났다”라며 “장시간 노동은 당연한 게 아니다. 초장시간 노동을 시급히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 전문의는 “언론에 알려진 넷마블 직원의 과로사 및 과로자살 의심 사례는 총 3건으로, 이 중 1건이 산재로 인정된 것”이라며 “해당 사업장의 역학조사와 노동자 건강 실태 점검, 노동자 교육 등 과제가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알려지지 않은 급성심장사나 자살 건이 더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조사 및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전문의는 이어 “넷마블이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전·현직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등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정최경희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센터장은 “한 노동자의 사망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회사 또는 그 직종에 만연한 위험 요인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라며 “적극적인 조사와 적절한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회사(넷마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 잘 시행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기구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게임업계의 살인적인 근로행태는 실제 '죽음'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다음웹툰 108화 발췌.

▲게임업계의 살인적인 노동은 실제 ‘죽음’으로 이어졌다. (출처=다음웹툰 ‘게임회사 여직원들’ 108화 중)

과로사 및 과로자살 막기 위한 정부 대책 필요

물론 업계에만 맡겨서 될 일은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최민 전문의는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과제로 ▲집중적인 초장시간 노동 규제 ▲산업안전보건 및 근로감독의 연계 강화 ▲게임산업 노동자 과로사 예방 대책 마련 등 3가지를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윤현욱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근로감독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라며 “문제는 산업안전보건 쪽에서 단독으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주의 구체적인 장시간 근로에 대해 어떻게 조치해야 한다는 게 명문화돼 있지 않아 근로감독을 하게 되면 ‘권고’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과태료가 있지만고용노동부는 넷마블에 대해 수시 근로감독을 진행하고, 근로자 건강검진 미시행과 근로계약서에 근로조건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은 계열사 9개에 대해 총 29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close 사회적으로 동의하지 못할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관행으로 손꼽히는 근로시간 특별업종과 관련,  “(정부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고 장기적으로는 폐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과로사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과로사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규정돼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뇌혈관 질병 혹은 심장 질병 등에 대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을 따져 업무와 발병 간 ‘관련성이 강하다(즉 산재로 봐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는 정도다.

‘전 세계에서 일하다 과로사하는 두 나라’를 꼽자면 한국과 일본이 있는데, 일본은 비교적 과로사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하고, ‘뇌심질환 산재 사망과 과로자살’을 과로사로 규정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과로사 정의는 명확하지 않고 과로사와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까다롭다. 윤현욱 사무관은 “(우리 정부가) 일본처럼 과로사 정의를 명확히 한다면 이에 따른 명확한 조사 기준과 방법을 세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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