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노트북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다. 오로지 스마트폰에만 이목이 쏠린다. 그나마 LG전자 ‘그램’ 시리즈가 무게 마케팅으로 이름을 날린 정도다. TV 광고 속에서 노트북의 자리는 지워졌다. 그러더니 최근 갑자기 게이밍 노트북이라는 카테고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건 60만원대 게이밍 노트북 에이서 ‘니트로5’다.

60만원대 게이밍 노트북의 탄생설화

PC는 언제 죽을까. CPU가 총알에 뚫렸을 때? 불치의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버섯 수프를 키보드에 끼얹었을 때? 아니다. 사람들이 쓰지 않을 때다.

전통적인 PC 시장은 5년째 침체기다. PC를 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일할 때 빼고는 거의 PC를 쓰지 않는다. 싸이월드하러 PC방으로 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PC 기능들을 대체하면서 PC 시장은 죽어가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 생산성 도구로서 PC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업무 환경에 필요한 PC는 높은 사양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교체 주기가 길다. 그래서 시장이 성장하기 어렵다.

일할 때 말고 PC가 필요한 경우가 딱 하나 있다. 바로 게임이다. 3D 고사양 게임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PC가 필요하다. 최신 그래픽으로 치장한 게임은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만큼 기기의 교체주기도 빠르다. 결국 게임은 PC 시장의 한 줄기 희망으로 치솟았다. 휴대성과 이동성이 강조되는 추세와 맞물려 게이밍 노트북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지상으로 소환됐다. 각 PC 제조사들이 게이밍 노트북에 달려들기 시작한 이유다.

게이밍 노트북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뜨면서 천편일률적이었던 제품들도 다양한 제품군으로 분화됐다. 탱크처럼 무거운 게이밍 노트북에서 벗어나 성능과 휴대성을 어느 정도 타협한 가볍고 얇은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가격대도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급기야 60만원대 게이밍 노트북도 등장했다.

캐주얼 게이머를 위한 게이밍 노트북

69만9천원. 기본 100만원대 중반이던 기존 게이밍 노트북과 비교했을 때 파격적인 가격이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싸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조상님들의 오랜 지혜다. 에이서 니트로5는 본격적인 게이밍 노트북은 아니다. 에이서 측에서도 ‘캐주얼 게이머’를 위한 제품임을 강조한다. 확실히 하드코어 게이머를 만족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한 사양이다. 중요한 것은 60만원대 가격에 기대하는 수준을 만족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주요 스펙

  • 프로세서: 7세대 인텔 코어 i5-7300HQ 2.5GHz, 쿼드 코어
  • 메모리: DDR4 4GB(최대 32GB 추가 장착 가능)
  • 그래픽: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50(2GB GDDR5 VRAM)
  • 디스플레이: 15.6형 풀HD(1920×1080) IPS 디스플레이
  • 저장 장치: 1TB HDD(M.2 SSD 추가 장착 가능)
  • 배터리: 4셀 3220mAh 리튬 폴리머, 최대 8시간
  • 운영체제: 린퍼스 리눅스(윈도우10 별도 구매)
  • 연결 : 802.11ac 무선랜, 블루투스 4.0+HS, 기가비트 이더넷
  • 포트 및 커넥터: USB 3.0 1개, USB 2.0 2개 / HDMI 단자 / USB 3.1 Gen1 Type-C / 랜포트 / SD 카드리더기
  • 크기 및 무게: 390 x 266 x 26.75mm / 약 2.7kg(배터리포함)
  • 색상: 블랙
  • 가격: 69만9천원

결론부터 말하면 니트로5는 비지떡은 아니다. 캐주얼 게이머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한 성능을 발휘한다. 캐주얼 게이밍 노트북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다. 캐주얼 게이머의 척도는 뭘까.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사람일 것이다. 가볍게 즐기는 게임이 ‘피카츄 배구’는 아닐 것이다. 어느정도 시각적인 쾌락을 안겨주는 게임,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인생을 몰락시키는 과금형 과몰입 게임보다는 언제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게임, ‘오버워치’ 정도를 니트로5 평가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오버워치’를 깔아보았다. 내 지갑에선 4만5천원이 빠져나갔다. 데저트 이글을 들고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평정했던 옛 기억을 되살려 한조를 골랐다. 내 안의 용이 꿈틀댔다. 아군은 툴툴댔다. 패배가 쌓여갔다. 게임 환경을 탓해보려 했지만 화면 한구석에는 60fps가 꾸준히 표기되고 있었다. 화면 끊김 현상은 없었고 게임은 부드럽게 잘 돌아갔다.

설정값을 높여보았다. 그래픽 품질을 높음으로 설정했다. 여기서도 내 패배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캐릭터 선택 창에서 한조는 “죽음에는 명예가 따르고, 명예에는 구원이 따른다”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명예도 구원도 따르지 않았다. 오로지 죽음만이 따랐다. 그래픽 품질을 매우 높음으로 설정했을 때 깨달았다. 그냥 내가 못하는 거구나. 매우 높음으로 설정했을 때 약간의 끊김이 발생했고 프레임률이 날뛰기도 했지만 대체로 쾌적했다.

니트로5에는 인텔 7세대 카비레이크 i5 프로세서와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50이 탑재됐다. ‘오버워치’ 정도의 게임을 돌리기엔 무리가 없는 사양이다. 부모님 안부를 묻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는 풀옵션으로도 원활하게 돌아간다. 롤 유저인 동료 기자는 리뷰를 도와주겠다며 업무 시간에 내리 3판을 하고 “PC방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한줄평을 남겼다.

좀 더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려면 메모리 정도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편이 좋다. 기본 메모리는 4GB로 최대 32GB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래픽 메모리가 4GB가 아닌 2GB라는 건 아쉬운 점이다.

나쁘지 않은 기본기

게이밍 노트북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냉각 기능이다. 발열이 심할 경우 스펙상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니트로5는 에이서 쿨부스트 기술이 탑재된 듀얼 쿨링팬과 배기구를 통한 냉각 시스템으로 쾌적한 게이밍 환경을 제공한다, 라고 에이서 측은 홍보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다. 제조사들은 다들 발열을 잡았다고 홍보하니까.

한조의 궁극기를 20번쯤 썼을 때 노트북은 따뜻해졌다. 발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분 좋은 따뜻함이다. CPU와 GPU의 온도는 각각 섭씨 70도와 60도를 오르내렸다. 업무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HP ‘엔비13’은 발열로 악명 높은 제품이다. 업무용 노트북과 게이밍 노트북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엔비13의 발열이 지옥의 용광로 수준이라면 니트로5의 발열은 구들방의 온기처럼 훈훈하다.

소음도 적당한 편이다. 이어폰의 화이트 노이즈도 잡아내는 새벽녘 집에서 게임을 하면 당연히 소음이 신경 쓰이지만 사무실에서 게임을 했을 때는 다른 화이트 노이즈에 파묻혀 소음이 의식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소음이 문제 되지 않는다. 키보드는 다른 게이밍 노트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추세 대로 ‘WASD’ 버튼이 빨갛게 강조돼 있다. 또 빨간색 백릿 조명이 들어갔으며 키감은 반발력이 크지 않고 부드러운 편이다.

시야각은 나쁘지 않다.

디스플레이도 무난하다. 15.6형 풀HD IPS 디스플레이는 2-3시간의 게임에도 눈에 큰 무리를 주지 않았다. 시야각은 170도다. 디스플레이 정면에서 180도 떨어져 게임을 하지 않는 이상 문제없는 수준이다. 밝기는 조금 아쉽다. 최대 밝기로 높여도 다소 어두운 느낌이 든다. 26.75mm 두께에 약 2.7kg 무게의 노트북을 야외로 갖고 나가 햇빛 아래에서 ‘오버워치’ 할 거 아니면 참을 만하다. 120Hz 주사율을 자랑하는 300만원대 게이밍 노트북에는 못 미치지만 60만원대 제품에 눈 돌아가는 디스플레이를 기대하기는 건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디자인은 다른 게이밍 노트북과 비슷하다. 빨갛고 시커멓다. 게이머들이 검정색과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통계 연구라도 있는 건지, 요즘 나오는 게이밍 노트북은 천편일률적으로 검은색 바탕에 빨간 포인트를 준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커버 재질은 알루미늄처럼 보이도록 눈속임을 해놓았지만 플라스틱이다. 상판 커버는 유광이며 흠집이 잘 나는 편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계속 강조하지만 니트로5는 60만원대 제품이다.

26.75mm 두께, 약 2.7kg 무게

게임의 사양이 제각각이듯이 게이밍 노트북도 다양한 형태로 분화됐다. 니트로5는 ‘캐주얼 게이머를 위한’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은 게이밍 노트북이다. 60만원대 게이밍 노트북에 200만-300만원대의 성능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니트로5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제품이다.

 

장점

  • 가격이 스펙이다
  • 캐주얼 게이밍 노트북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성능
  • 다른 게이밍 노트북과 비슷한 외관(싼 티가 안 난다)
  • 발열 수준이 나쁘지 않다

단점

  • 화면 밝기가 아쉽다
  • 2GB 부족한 그래픽 메모리
  • 잘 까지는 플라스틱 재질
  • 윈도우 미포함

추천 대상

‘오버워치’를 집에서 하고 싶은 자취생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