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개발자 축제, ‘파이콘 한국 2017’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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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2일에서 15일까지 4일간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파이콘 한국 2017’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올해 총 2075장의 표가 판매됐고 1784명이 실제 참석한 파이콘 한국은 한국을 대표하는 비영리 기술 컨퍼런스다. 파이콘 한국은 2014년 개최를 시작으로 2016년 파이콘 APAC 행사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던 성과에 이어 올해 4회를 맞이했다. 매년 규모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의 다양성, 행사의 성숙도 면에서 성장하며 한국의 기술 커뮤니티에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2017년 올해에는 ‘Back to the Basic’을 주제로 파이썬을 사용하는 다양한 분야, 국가에서 사람들이 컨퍼런스에 참가했으며, 처음으로 영코더와 아이돌봄 프로그램을 새롭게 운영했다. 영코더와 아이돌봄은 개발자를 포함한 가족단위 참가를 유도함으로써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 외에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프린트와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등 오픈소스 확산에도 꾸준히 기여하고자 했다.

파이콘 한국 2017의 네임월. 모든 참가자의 이름으로 올해 슬로건인 ‘Back to the Basic’을 만들었다.

한국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비영리 컨퍼런스

대한민국을 IT 선진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빠른 인터넷, 어디서나 터지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이 소프트웨어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생적인 소프트웨어 관련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통해서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네이버의 ‘DEVIEW’, 넥슨의 ‘NDC’, SK플래닛의 ‘테크 플래닛’ 같은 기업 주도의 컨퍼런스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파이콘과 같이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여는 비영리 컨퍼런스는 다양하고 커뮤니티 지향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또다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파이콘 한국에는 더 많은 교류를 위해서 누구나 주제를 제안하고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공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이 참가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올해도 코엑스 2층의 5개 방에서 자유로운 주제로 모임이 이루어졌다. 특정 파이썬 라이브러리인 플라스크(Flask)나 장고(Django) 사용자들이 모여서 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하고, 개발자의 적정 연봉 이야기나 파이썬으로 데이터 처리하는 사람들의 모임, 멍때리기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 했다.

열린공간에는 누구나 원하는 주제를 제안하고 관심있는 사람끼리 생각을 나눌 수 있다.

파이콘 한국이 커뮤니티 행사로서 함께할 수 있도록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스프린트’가 있다. 스프린트는 특정 오픈소스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개발하며 개발문화를 공유하는 자리이다.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오픈소스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나눌 수 있다. 많은 개발자들이 오픈소스를 사용하면서 기여하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판다스(Pandas)나 장고와 같은 프로젝트 코드에 기여해본 사람들이 초보자들이 기여하기에 적절한 이슈가 무엇인지도 알려주고 프로젝트에 PR(Pull Request)를 통해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리이다.

아직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강사가 알려주면서 따라하는 튜토리얼과 혼동해서 신청하신 분들이 많다. 혼돈이 없도록 스프린트 신청자들에게는 이 자리가 가르쳐주는 자리가 아니라 그 프로젝트를 함께 개발하는 자리라는 것을 계속 알려드리고 있다.

파이콘 한국 홈페이지의 소스코드는 모두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다. 스프린트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으니 내년에는 파이콘 한국 홈페이지 기여 스프린트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된다.

파이콘 한국 2017을 준비하며

파이콘 한국은 사단법인 파이썬 사용자 모임 주최,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 주관으로 열린다. 파이썬 사용자 모임은 급여를 받는 직원이 없는 비영리법인이다. 1년 동안 행사를 준비하는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와 파이콘 전날부터 행사일 동안 다양한 일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 또한 자발적으로 행사를 준비한다. 준비위원회에서는 준비를 하면서 종종 ‘왜 우리는 돈 받는 일이 아닌 파이콘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 답은 “돈 받는일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의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했을 때, 또 특정한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많다. 파이콘을 준비하는 일은 금전적인 보상은 없지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자율성과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보람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기회를 제공한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꾸준히 노력하며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행사로 만들려는 시도를 통해 하나의 축제를 만들어나간다.

준비위원회는 대부분 직장인들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슬랙, 지메일, 구글드라이브, 깃허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물론 정기적인 오프라인 회의를 통해서 안건을 정리하고 토의하는 자리도 꾸준히 가진다.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의 회의 사진. 대부분 직장인이기에 평일 저녁 퇴근 후 샌드위치를 먹으며 회의를 한다.

준비위원회는 열린 조직이 되기 위해 매년 새로운 분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파이콘 한국 2017부터는 의장을 준비위원회 중에서 랜덤으로 선출하고있다. 랜덤 함수로는 파이썬의 유명한 수학 라이브러리인 ‘넘피'(numpy)를 사용한다. 파이썬 리스트에 이름을 모두 입력하고, 넘피 라이브러리의 셔플(shuffle) 함수로 3번 순서를 랜덤하게 섞은 뒤 넘피에 있는 초이스(choice) 함수로 랜덤하게 선택한다. 이 과정은 비디오로 저장해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도 보실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든 준비위원회 멤버가 의장이 될 자격이 있고, 파이콘 한국의 미래는 파이썬이 정해준다.

파이콘 한국 2017에서 있었던 일

발표세션과 스폰서 부스는 컨퍼런스의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올해는 2일간 발표세션이 진행됐고 발표신청을 받은 것 가운데 2대1 정도의 경쟁률을 통과해 선정된 발표자들이 다양한 파이썬 관련 지식과 경험을 공유했다. 발표 선정은 준비위원회 모두가 리뷰해서 점수를 매겨 결정한다. 올해는 각 주제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데이터처리 관련 세션이 너무 많아서 데이터 세션에는 약간의 감점을 적용해야 했다.

스폰서는 돈을 내고 회사 홍보와 채용을 위해서 부스를 운영하지만, 부스는 파이콘을 풍성하게 만드는 컨퍼런스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세션 중간중간과 점심시간에 어떤 회사들이 파이썬을 활용하고 있는지, 어떤 제품과 구직기회가 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스폰서 부스는 파이썬을 활용하는 회사들의 홍보와 채용의 공간으로서 컨퍼런스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파이콘 한국에서는 참석자들이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 재미있고 뜻있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튜토리얼: 튜토리얼은 초보자들 또는 새로운 것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파이썬을 활용한 웹 개발, 데이터 처리, 인공지능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다.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발표자, 조교분들도 자발적으로 시간으로 시간을 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라이트닝 토크: 라이트닝 토크는 그날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모든 참석자가 모여 5분 이내로 자유로운 주제로 발표를 하는 자리이다. 파이콘 한국 참가자라면 누구나 발표자가 될 수 있다. 재미있는 짧은 발표가 많아서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미리 라이트닝 토크를 준비하는 분들도 있고, 행사 당일 아이디어를 내서 즉석으로 발표하시는 분들도 있다.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신청자가 적고 즉흥적으로 신청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미리 준비해서 신청하는 분들이 많다.
파이썬으로 프로젝트 한 것을 짧게 발표하는 분들도 많고(페이스북 메시지 보내기, 경매시스템 만들기), 개발자의 삶 이야기(지방에서 개발자로 살기, 해외 파이콘 참가기), 파이콘 준비 후기(아이돌봄 준비 후기, 나는 왜 파이콘을 하는가) 등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라이크닝 토크도 모두 동영상으로 공개된다.

아이돌봄: 아이를 동반한 파이콘 참가자들을 위해 별도의 돌봄 공간을 마련했다. 파이콘 키노트와 주요 세션들이 진행되는 8월12일과 13일에 모든 연령대의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영코더와 함께 올해 처음 시도된 프로그램으로, 예상보다는 적은 사람들이 이용했지만 이용한 분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아이돌봄을 준비하면서 아무래도 안전문제 등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컸고 우리나라 컨퍼런스에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던 사례가 적어서 구체적인 운영방법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아이돌봄 프로그램을 맡아준 준비위원회 분이 아이가 둘인 여성 개발자였고 파이콘 준비위원회에서 아이돌봄 프로그램을 해보겠다는 공감대가 충분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이돌봄 비용을 조금 받았지만 파이콘 한국 입장에서는 운영업체 비용, 아이들을 위한 매트나 놀이기구 설치 비용 등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이제는 자리를 잘 잡은 라이트닝 토크 프로그램처럼 해가 지날수록 사람들이 아이돌봄 서비스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믿고 사용하고 “아이돌봄이 있어서 파이콘에 올수 있었다”라고 한 참석자 분같은 사례가 늘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영코더: 파이썬 꿈나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파이콘 티켓 구매자의 자녀, 조카, 이웃 등을 대상으로 운영했다.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는 학생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처음 시도했다.

영코더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린이가 코딩을 배우고 있는 모습.

영코더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어린이’에게 ‘교육’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역시나 진행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올해 처음 시도한 영코더는 큰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올해는 소프트웨어 교육업체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는데 내년에는 역량이 된다면 직접 운영 및 코칭을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올해는 모든 미취학 아동은 아이돌봄,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은 영코더 프로그램이라서 초등학교 1-4학년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내년에는 전 연령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엄마 아빠는 파이콘에 참가하고 아이들은 아이들을 위한 파이콘 프로그램에 맡기는” 내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재정지원(Financial Aids): 파이콘은 준비위원회, 자원봉사자, 발표자를 포함한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티켓을 구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모든 참가자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동등한 자격으로 행사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 파이콘의 중요한 철학 중 하나다. 하지만 높은 표 가격, 멀리서 오는 데 따른 교통비 등이 파이콘 한국 참석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신청을 받아 재정지원 프로그램으로 심사를 통해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

파이콘은 축제다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표면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물론 ‘개발에 대한 지식’이지만 지식은 구글 검색, 블로그, 스택오버플로우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컨퍼런스의 슬라이드와 동영상이 공개되니 ‘지식’은 꼭 참여하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다. 컨퍼런스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나 외에도 파이썬과 개발을 좋아하고 즐겁게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파이콘에서 이야기를 나눈 한 스피커 분은 한국에 파이썬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즐거운 축제 분위기라 너무나 즐거운 행사였다고 했다. 그런 느낌을 많은 분이 받았으면 좋겠다. 다 같이 하는 느낌, 축제에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느낌 말이다.

파이콘은 돈을 내고 세션을 듣고 집에 가는 행사가 아니다. 누구나 주제를 제안하고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 공간, 누구나 제안해서 5분짜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라이트닝 토크는 물론 기념품 가방의 내용물을 채우는 작업도 참석자 모두가 할 수 있도록 모두가 준비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행사가 파이콘이다. 파이콘 한국은 준비하는 사람들이 100%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준비하기 때문에 완성도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더 즐거운 행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위에 언급한 프로그램들처럼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는 파이콘 한국을 더 의미 있는 행사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가 파이콘 한국이 자발적인 노력만으로 계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해마다 같은 행사를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다면 준비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의미와 재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국에서 많은 좋은 커뮤니티 컨퍼런스가 생기고 또 없어지기도 했다. 그 컨퍼런스들은 왜 없어졌을까? 파이콘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성장할 수 있었고 이런 추세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이 없는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해가면서 내년에도 파이콘 한국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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