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불법시장 규모는 잠재력의 크기”

취향저격 만화추천 및 감상 서비스, 라프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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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테이션 T43

2000년대 초반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아래위로 몇 년 정도, 같은 세대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비슷하게 생각할 텐데, 반에는 꼭 몇 명씩 부모님이 인강 들으라고 사준 PMP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에 많이 쓰였던 구시대의 유물로 동영상 콘텐츠를 인코딩 없이 저장해 볼 수 있었다. 크기는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살짝 크고, 하드디스크를 저장장치로 썼으며, 무게는 거의 2-2.5배 정도였다close에 P2P로 일본 애니메이션(이하 ‘애니’)만 잔뜩 다운받아서 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애니만 그렇지는 않았다.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등등 그때는 다들 PMP에 P2P 서비스로 받은 콘텐츠를 넣어서 봤다.

콘텐츠는 대여와 소유의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에 안착했다. 스포티파이, 국내에서는 멜론으로 대표되는 음악이 그렇고,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영화 및 드라마 콘텐츠가 그렇다. ‘월정액제’는 콘텐츠 제작자라면 누구나 탐내는 모델이다. 처음에 고객을 유치하는 게 어렵지만, 일단 들어온 고객은 서비스의 편안함을 느끼면서 어지간해선 해지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니지만 내 것처럼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편안함이 뒷받침한다.

사진=라프텔

영화도 월정액제가 자리잡고 있고, 음악도 월정액제가 자리잡고 있는데 어쩐지 일본 애니는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단이 상당한데, 제대로 소비할 수 있는 출처는 토렌트나 웹하드 혹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가 거의 전부인 상황이다.

불법이 판치는 시장이지만 국내에서도 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평가데이터를 바탕으로 애니만화 추천 서비스로 시작해 애니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를 확장한 ‘라프텔’이다.

김범준 라프텔 대표

실패 거듭했지만 적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김범준 라프텔 대표는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연세대학교 인터넷 컴퓨팅 연구실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만난 선배가 창업에 뛰어들자고 권했다. 바닥부터 시작해 거창한 무언가를 일궈보자는 건 아니었다. ‘해외에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데 활용해서 결혼자금 한 번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대학원과 병행하면서 조금씩 일을 하다 보니 빠져들었고, 휴학하고 풀타임으로 집중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아이템이 뚜렷한 건 아니었다. ‘구상한 것을 만든다’는 스타트업 특유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1년 반 동안 서너 개의 아이템을 내놓고 수정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봤지만 전부 다 실패했다. 한번은 패션상품을 믹스매치해서 룩북형태로 만들고 커뮤니티, 커머스를 결합한 모델을 구상했다. 정작 김범준 대표 본인은 소위 말하는 ‘패션고자’였고 ‘왜 사람들이 옷을 믹스매치 하는지’ 같은 것은 이해도 못 했다. 첫 번째 실패 이후 실패를 분석하면서 두세 번의 피벗을 거쳤지만, 결과는 거듭된 실패였다. 이렇게 돈도 못 벌고 실패만 반복됐지만, 오히려 스타트업이 적성에 맞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템 선정에 신중했더라면 조금 더 빠르게 시장의 니즈와 격차를 좁혀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보상도 없이 일은 많이 했는데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다음번에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준비해서 창업해야겠다 생각하고 복학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팀과 좋은 아이템을 빠르게 찾았습니다. 휴학을 다 써버려서 중퇴하고 나왔죠.”

사진=라프텔

시장 <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창업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염두에 두라고 하잖아요. 첫 번째 창업 때는 ‘시장이 원하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들어갔어요. 근데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니까 디테일하게 들어갔을 때 엣지있는 부분을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좋아하는 것/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아이템을 지워나가면서 골랐습니다.”

김범준 대표는 데이터 처리, 개인화 추천, 최적화 등에 관심이 많았다. 큰 도메인을 잡고 소재를 고민했다. 만화나 여행 등 개인적인 선호를 바탕으로 후보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만화를 선택했다. 여행은 정보를 얻는 빈도가 낮을 것 같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만화 불법시장이 수면 위의 시장보다 훨씬 크다는 판단이 있었다.

라프텔 앱 화면. 라프텔은 만화 ‘원피스’에서 나오는 설정 중 하나다. 위대한 항로의 최종 종착지.

불법시장이 클수록 잠재력도 크다

만화는 대부분 시리즈물로 나온다. 하나의 콘텐츠를 일단 보기 시작하면 쉽게 재구매가 이뤄진다. 다른 콘텐츠에 비해 팬층이 강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팬심에 힘입은 네트워크 효과는 기존 커머스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데 만화는 가능하다.

김범준 대표는 “만화는 서브컬처라서 저평가받고 있는데 다들 ‘에이 만화는 돈 안 되잖아’라든지, ‘오타쿠’라든지 사회적으로 안 좋게 생각하는 시선도 있었던 것 같다”라며 “그래서 저평가돼 있었고, 그래서 불법 시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웹툰은 많은 플레이어가 들어가 있는 시장이지만, 애니메이션은 아직 수면위로 올라와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국내 시장이 특수해요. 일본 만화시장이 가장 발달해 있고 큰데요. 예를 들어 출판만화 기준 만화시장은 9조원, 애니는 20조원 정도의 시장이 있어요. 전세계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런 일본에서 가장 큰 불법 사이트의 트래픽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이 나오는 불법 사이트가 10배에서 20배가 더 큽니다.”

나쁘게 보면 그만큼 시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가장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김범준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창업했던 건 아니고, 어떻게든 기술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사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사진=라프텔

15만, 700만, 1만6천

추천에는 콘텐츠 기반 필터링(CBF)과 협업 필터링(CF) 방식을 적절히 엮어서 사용한다. 콘텐츠 기반 필터링은 콘텐츠 자체의 특성을 분석해 유사 콘텐츠를 찾는 방식이고, 협업 필터링은 다양한 사용자의 선호도를 수집해 관심 분야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김범준 대표는 “언제나 잘 맞지 않은 아웃라이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 비율을 최소로 해서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13명의 팀원 중 개발팀이 절반이다. 추천엔진, iOS, 안드로이드, 백엔드, 영상, 웹을 각각 전담한다.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인 만화 평가 데이터는 700만개다. 만화, 웹툰, 애니, 라이트노벨 등 모든 작품에 대한 데이터다. 사용자들이 평가할 수 있게 라프텔에 등록된 작품수는 2만4천개, 그중 애니메이션은 8천개이며, 또 그 중에서 바로 시청 가능한 작품이 860개 정도다. 에피소드로 바꾸면 1만6천개가량이다.

사진=라프텔

“2014년 말에 학산이나 대원 등 CP사에 제안서를 보낼 때는 개인화 추천 엔진 기반 스트리밍에 대해 흥미 있어 했거든요. 그래서 만났는데, 저희 회원 수가 1900명 정도 있다고 하니까 ‘그건 안 된다’ 하시는 거죠. 저는 정말 만화 팬으로서, 소비자로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업계 상황은 잘 몰랐던 거죠.”

처음에는 ‘추천엔진 구성하고 판권을 따오면 되겠다’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원래는 애니가 아니라 만화를 서비스하고자 했다. 저작권 보호 등에서 만화가 조금 더 쉬운 측면이 있어서다. 하지만 웹툰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커진 만화 시장의 진입장벽은 상당히 높았다. 애니는 이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CP의 요구조건이 상대적으로 더 적었다.

오리지널 판권은 토에이나 본즈 등 일본 제작사가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관련해 가장 큰 업체가 애니플러스, 애니맥스, KTH 같은 업체다. 라프텔은 국내 판권을 가지고 있는 업체와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수급한다.

다양한 작품을 가지고 오지만 타이틀 급은 없다. ‘원피스’나 ‘나루토’부터 요즘에 뜨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같은 작품은 가지고 오기가 어렵다. 그래도 최대한 가지고 오려고 한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시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가 있어서 국내 업체들이 꽤 많은 판권을 따 온다. 글로벌 판권을 가지고 있는 넷플릭스가 산 작품이나 도저히 국내 심의를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 말고는 거의 가지고 오려는 추세다. 라프텔은 국내에 들어오는 작품은 다 라프텔로 끌어오는 게 목표다. 너무 깊지는 않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플레이스토어에 올라온 라프텔 리뷰 중 갈무리

한 길만 판다

라프텔은 프라이머에서 초기 투자를 받았고, 팁스TIPS 프로그램은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으로, 기술아이템을 보유한 창업팀을 민간주도로 선발해 창업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성공벤처인 중심의 엔젤투자사, 초기전문 VC, 기술대기업 등을 운영사로 지정해 엔젤투자·보육·멘토링과 함께 R&D 자금 등을 매칭해 일괄 지원한다.close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시리즈A 투자를 받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라프텔은 올해 7월에 비즈니스 모델을 운용하기 시작했는데, 주마다 120-150%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SVOD(가입형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도 준비하려고 한다. 광고 보면 작품도 볼 수 있게 하는 무료 영역도 넓히려고 한다.

“기존의 대형 스트리머 사업자가 많이 있긴 합니다. 조금 나이브한 생각일 순 있는데요. 저희가 버티컬 분야에서 가장 잘 한다면, 차라리 저희를 인수하는 게 비즈니스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복잡하게 생각 안 하고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만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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