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음의 물결 속, 소리의 섬에 정박하다

2017.10.17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음악이었다. 이런 말을 하려면 대단한 락밴드라도 좋아해야 했으려나. 그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종례를 마치면 노래방으로 뛰어가는 게 일상이었고 중학교 때 사귀던 남자애와 투투, 그러니까 만난 지 22일이 되기도 전에 헤어졌을 땐 눈물콧물 바람으로 이별노래만 듣고 다녔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런 학창시절 헤드폰은 한 번쯤 가져보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목에 걸기만 해도 왠지 멋지고, 또 멋지고, 그냥 멋졌다. 하지만 나는 싸구려 이어폰으로 만족해왔다. 멋이 뭐가 중헌가. 노래가 들리기만 하면 됐지, 뭐. 고장나서 한쪽만 들리는 이어폰으로도 이쪽 들었다가 저쪽 들었다가 하면서 한 달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IT 기자가 되어서야 블루투스 헤드폰을 써보게 됐다. 하필이면 소니의 고급제품으로. 리뷰를 할수록 눈만 높아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침 9시. 카페에 헤드폰을 끼고 앉았다. 사실 출근하면서부터 끼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광고에서 ‘아이유’가 쓰던 모습은 분명 예뻤다. 분명 그랬다···. 그러나 거울은 진실했다.

사람들은 이어폰도 있는데, 왜 굳이 헤드폰을 쓸까 궁금했다. 무겁고 덩치도 크고 비싸기까지 한데. ‘WH-1000XM2’은 소니가 주력으로 밀고 있는 프리미엄 헤드폰 중 하나다. 가격은 54만9천원으로 만만치 않다. 값비싼 이유 중 하나는 1000X 시리즈의 자랑, 노이즈 캔슬링 성능 때문이다.

기사를 한참 쓰다가 허기가 져서 헤드폰을 벗었는데 밀물처럼 몰려드는 소음에 깜짝 놀랐다. 어느새 오후 12시45분, 티타임 시간이었다. 이 시간대의 카페는 명절을 앞둔 재래시장을 방불케 한다.

언제 손님이 이렇게 많이 왔지, 그제야 헤드폰을 왜 쓰는지 알게 됐다. 보통의 이어폰은 볼륨을 높여 주변의 소음을 차단한다. 시끄러운 곳에 가면 덩달아 내 귓속이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노이즈 캔슬링이 적용된 헤드폰은 착용만 해도 주변 공기가 고요하게 느껴진다. 헤드폰을 사는 이들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노이즈 캔슬링은 40년쯤 된 기술이다. 처음에는 공군 파일럿의 원활한 비행을 위해 개발됐다가 일반 헤드폰에까지 쓰이게 됐다. 내·외부 센서가 소음 주파수와 반대되는 주파수를 내보내서 주변 소음을 감쇄시키는데, 시끄러운 곳에서도 헤드폰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노이즈 캔슬링을 처음 상용화한 건 ‘보스’사였는데 WH-1000XM2의 전작 소니 MDR-1000X와 보스의 QC35 노이즈 캔슬링 성능 비교 테스트 결과 소니가 앞선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WH-1000XM2는 이보다도 더 향상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2개의 노이즈 캔슬링 센서로 헤드폰 내·외부의 반복되는 저음의 소음과 전체적인 소음을 분석하는 듀얼 노이즈 캔슬링과 소니 전용 프로세서 및 디지털 처리로 노이즈 캔슬링을 향상시켰다고. 사실 설명을 아무리 들어봐야 한 번 써보는 게 낫다. 아무리 좋은 키보드라도 제 손에 맞는 걸 써야 하듯 음향기기 회사마다 소리를 구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서 좋은 헤드폰도 취향에 안 맞으면 소용없다.

당신이 뭘 하든, 어디에 있든

이 제품이 기특한 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청음환경을 알아서 조절한다는 데 있다. ‘적응형 사운드 제어’는 음악과 주변의 소음, 그리고 음성을 최적화해준다. 주변소리 모드를 약 20단계 정도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대기압을 분석해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더욱 향상시켜 주는 ‘대기압 최적화’ 기능이 세계 최초로 탑재됐고 사용자의 헤어 스타일과 안경 착용 등을 분석하는 ‘개인 노이즈 캔슬링 최적화’도 지원한다.

원래는 헤드폰 버튼을 눌러 조작하던 기능이었다. 소니는 “매번 버튼을 누르는 것이 불편하다”는 소비자 의견을 받아들여서 앱으로도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스마트폰 GPS를 켜두면 WH-1000XM2가 사용자의 행동 및 사용 환경을 체크한다. 정지 상태, 걷는 중, 뛰는 중, 차량으로 이동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여기에 맞는 청음환경을 제공한다.

당신이 빨리 이동하고 있다면 GPS에 따라 ‘아,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 중이구나’ 판단하고 다른 소음을 최대한 줄여준다. 이게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기도 했다. 몸에 익은 출근길 지하철이라면 별 상관 없겠지만 급하고 바쁜 상황이라면 헤드폰은 가방에 고이 넣어두도록 하자.

버스에서 내려 걷는 중이라면 주변 소음을 좀더 들려준다. 아무래도 길을 다닐 때 소음이 모두 차단되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소리나 자잘한 차량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정지 상태, 그러니까 어딘가에서 대기를 하거나 카페에 있는 경우에는 소음은 걷어내고 음성만 들리도록 한다. 카페에서 내가 시킨 음료가 나왔을 때, “고객님, 자몽허니블랙티 나왔습니다”라는 말이 더 잘 들린다. 그렇다고 음성만 드라마틱하게 큰 소리로 들리는 그림을 기대한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말하면 더 잘 걸러주지만 그래도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하더라.

기본적으로 헤드폰을 장착한 순간 다른 소음은 잘 못 듣게 된다. 원래 헤드폰을 쓰는 건 대개 장시간·장거리를 이동할 때이긴 하지만 리뷰를 위해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동안 이상하게도 길에서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다.

스마트한 건 좋지만 단점은 알림음이 울린다는 것. 모드가 정지로, 걷기로, 차량 이동 중으로 바뀔 때마다 부드럽게 전환되는 게 아니라 알림음이 들린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아마 다음에는 알림음 문제가 개선돼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음질은 유선으로 들을 때 당연히 더 좋다. 모드를 꺼두고 수동으로 헤드폰 버튼을 눌러 조정하는 게 편하다면, 그리 하시라. 편리를 위해 생긴 기능이니 사용자 편의에 맞추면 된다.

아. 그리고 가끔 헤드폰을 쓰면 멍할 때가 있다. 여기에 익숙해지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다. 호불호가 갈리니 헤드폰 살 때 이것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터치는 편하고 통화는 불편하다

터치 제어 이어폰은 삼성 제품만 몇 번 써봤는데 작을수록 편하다. 큰 헤드폰에 대고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누르고 있으니 영 폼이 안 살았다. 그러나 모든 기기가 그렇듯 익숙해지면 괜찮다. 헤드폰 오른편에서 위 아래, 중앙을 누르면 트랙 변경, 볼륨 조절, 통화가 가능하다. 첨언하자면 통화는 ‘가능’하나 ‘원활’하지는 않다.

사용자는 잘 들리는데 통화 상대방은 내 말이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린다고 불평했다. 게다가 다른 소음이 너무 크게 잡혀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자 귀가 너무 아팠다는 거다. 그래서 전화가 오면 부득이하게 이어폰을 꺼내서 통화해야만 했다.

완충하면 유선 케이블로 최대 40시간을 사용할 수 있고 무선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하면 최대 30시간 동안 사용 가능하다. 고속충전 기능도 지원한다.

요다 현상은 다음 사진과 같다

헤드폰 유저들은 헤드폰이 양 옆으로 툭 튀어나온 모양을 두고 ‘요다 현상’이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이건 각자 판단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니 보는 이의 판단에 맡기겠다.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정수리가 아픈 것 같기도 하다. 널널하게 조정했더니 덜 아프더라. 다만 거북목이라 목에 걸고 있으면 10분도 안 돼 목이 저렸다. 어깨가 안 좋은 이들이라면 노이즈 캔슬링이 적용된 소형 이어폰 제품을 참고하시길.

WH-1000XM2를 쓰는 동안은 나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갔다.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느라 멍 때릴 틈도 없었는데 시끄러운 바깥의 소음과 잠시나마 작별하면서 깨달았다. 몸의 고단함보다도 더 귀한 게 있었다. 생각하는 것을 쉬는 거였다. 그래. 가끔은 나의 리듬을 돌아볼 때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