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개팅을 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통상적인 질문에 IT 분야를 다루는 기자라고 머쓱하게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스마트폰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크고 묵직해 보이는, 빛바랜 흰색 스마트폰이 강남역 파스타 맛집 3번 테이블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녀의 휴대폰은 2년 전에 나온 LG ‘V10’이었다. 마침 ‘V30’을 일주일간 써보고 난 직후였다.

선택지에 V30은 없었다. 온 국민이 마주하는 아이폰과 갤럭시의 이지선다형 문제가 내게 주어졌다. 누적된 사용자 경험이 브랜드와 제품 이미지를 형성하고 제품 판매량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LG는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히는 데 실패해왔다. 후면 버튼, 세컨드 스크린, 모듈형 액세서리 등 차별화된 경험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참신한 시도들은 아름다운 실패로, 다른 제조사들에 반면교사로 남았을 뿐이다. 그녀의 V10이 V30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을 터다. V30은 어떨까.

주요 사양

  • 칩: 퀄컴 스냅드래곤 835
  • 디스플레이: 6.0형 QHD+ 18대9 화면비 OLED 풀비전 디스플레이 (2880×1440 / 538ppi)
  • 메모리: 4GB LPDDR4x RAM
  • 저장 용량: 64GB, 128GB / 마이크로SD(최대 2TB)
  • 후면 듀얼카메라: 1600만 화소 일반각(F1.6 / 71도), 크리스탈 클리어 렌즈 / 1300만 화소 광각(F1.9 / 120도)
  • 전면 카메라: 500만 화소 광각 (F2.2 / 90도)
  • 배터리: 일체형 3300mAh
  •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7.1.2 누가
  • 크기 및 무게: 75.4×151.7×7.3mm / 158g
  • 색상: 오로라 블랙, 클라우드 실버, 모로칸 블루, 라벤더 바이올렛
  • 가격: 94만9300원
  • 기타: IP68 방수·방진 / 32-bit Hi-Fi Quad DAC / HDR10 / 구글 어시스턴트 / 얼굴 인식 / 지문 인식 / Qualcomm Quick Charge 3.0 Technology / 무선 충전 / LG페이

 

퍼즐 조각 맞춘 완성된 디자인

2015년 LG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V10은 LG전자 사장의 이름을 따 ‘조준호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마치 미용실이나 음식점이 사장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것처럼 LG의 자신감과 절박함이 교차하는 스마트폰이었다. 기존 G시리즈와의 차이는 화면이 커졌다는 점과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멀티미디어 기능의 차이는 미미해졌고 세컨드 스크린 정도가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번 V30에서 세컨드 스크린은 자취를 감췄다.

세컨드 스크린은 V시리즈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기능이지만 낯설고 투박했다. 메인 화면과 별도로 동작하는 보조 스크린은 때때로 편리하지만 스마트폰의 덩치를 부풀린다. 소개팅에서 마주친 V10은 크고 무거웠다. 찾아보니 가로 79.3mm, 세로 159.6mm, 두께 8.6 mm의 크기에 무게는 192g으로, 아령 대용으로 평가받는 ‘아이폰6S 플러스’와 같은 무게다.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반면 V30은 화면 크기는 5.7인치에서 6인치로 더 커졌지만 크기와 무게는 도리어 줄었다(75.4×151.7×7.3, 무게 158g). 세컨드 스크린을 과감히 삭제하고 베젤리스와 18대9 화면비, O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결과다. V30은 현재 6인치 이상 스마트폰 중 가장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 경쟁 제품인 ‘갤럭시노트8′(6.3인치)은 195g, ‘아이폰8 플러스'(5.5인치)는 202g, ‘아이폰X'(5.8인치)는 174g이다.

3년간 치아 교정을 하고도 바뀌지 않은 내 얼굴과 달리 LG 디자인은 2년 만에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전체적으로 ‘G6’와 비슷하지만, 고집스러운 LG 로고를 후면으로 밀어낼 정도로 화면 비율을 높인 덕에 보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보여준다. 둥글게 처리된 화면 모서리도 G6보다 다듬어졌다. 특히 후면 디자인은 듀얼카메라를 적용한 최신 스마트폰 중 가장 안정적이고 세련됐다. 진작에 도입한 후면 버튼은 베젤리스 시대에 빛을 발했다. 지문인식 센서의 위치를 찾느라 헤매는 갤럭시 시리즈와 달리, V30은 손으로 감싸쥐었을 때 검지가 닿는 위치에 후면 버튼이 있어 편하다.

전작에서 돼지코 같았던 듀얼카메라는 제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카툭튀’를 없애 매끈해졌고 안정적으로 정렬됐다. 이 부분은 전체 디자인에서 듀얼카메라 부분만 겉도는 갤럭시노트8과 비교하면 자명하다. 색상도 잘 빠졌다. 오로라 블랙, 클라우드 실버, 모로칸 블루, 라벤더 바이올렛 총 4가지 색상 중 내 손에 쥐어진 건 모로칸 블루였다. 빛에 따라 색이 달라져 사진발은 잘 안 받지만 파란색을 촌스럽지 않게 잘 표현했다.

V30은 강화유리로 마감됐다. 고릴라글래스5가 제품 전체를 부드러운 곡면으로 감싸 매끈하고 일체감 있는 디자인을 구현했다. 내구성도 상당하다. 미국 국방부의 인증을 받아 밀리터리 규격을 통과했다. 군사 작전에도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또 IP68 등급의 방수·방진 기능을 제공한다. 후면 버튼, 듀얼카메라 등 전작의 퍼즐 조각이 베젤리스를 만나, G6를 거쳐 V30에서 맞춰진 느낌이다.

 

동영상으로 채운 차별화된 경험

스마트폰은 일상의 총체적 경험을 담아낸다. 디자인만으로 휴대폰이 팔리던 시절은 막을 내렸다. 길에서 음악을 듣고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캘린더에 일정을 표기하고 알림을 받는 등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함께 호흡한다. 이런 경험의 총합이 스마트폰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간단한 스와이프 동작에 버벅거리는 등 사용자 경험이 영 좋지 않으면 해당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과 함께할 수 없다. 하지만 상향 평준화된 최신 스마트폰 사이에서 체감되는 경험적 차이는 크지 않다.

결국, 차별화된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V30은 동영상 촬영 기능을 차별화된 경험으로 내세웠다. ‘일상이 영화가 된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최고 수준의 영상촬영 기능을 갖췄다며 홍보했다. 핵심은 ‘시네 이펙트’ 기능이다. 쉽게 말해 영상의 색감을 쉽게 보정할 수 있는 기능이다. TV 광고에서 하늘이 보랏빛으로 변하는 바로 그 기능이다. 실제로는 어떨까.

처음엔 다소 실망했다. 단순한 영상 필터 기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서드파티 앱으로 충분히 구현되고 있는 기능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영상을 PC로 옮겼을 때 시네 이펙트의 진가가 드러났다. 화질이 떨어지지 않았고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계조가 풍부하게 표현됐다. 시네 이펙트는 영상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다. 로그 촬영 기능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로그 촬영은 후보정을 위해 상세하고 정확한 색상값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이다. 사진으로 치면 RAW 촬영과 비슷한 거다. 시네 이펙트는 여기에 미리 만들어진 프리셋을 입히는 방식이다. 로맨틱 코미디, 멜로, 스릴러 등 15가지 효과가 있다. 설정도 단순하다. 가장자리를 어둡게 해주는 ‘비네트’와 색감의 ‘세기’ 두 가지를 조절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영화 같은 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셀링포인트는 허황된 과장이 아니었다.

여기에 원하는 지점을 줌 인·아웃해 촬영할 수 있는 ‘포인트 줌’ 기능도 더해졌다. 화면 가운데를 중심으로 적용되는 줌 기능에서 벗어나 강조하고 싶은 피사체를 중심으로 줌을 당길 수 있다. 그러나 홍상수가 아니라면 섣부른 줌 촬영은 영상에 촌스러움을 더할 뿐이다. 영상 편집을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일종의 편의 기능으로 보면 좋을 듯 하다. 전문적으로 영상 편집을 하는 사람을 위해 로그 형식으로 저장하는 기능도 있다.

 

평범한 카메라, 탁월한 오디오

카메라 성능 자체는 평범하다. 성능과 디자인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으로 보인다. V30은 ‘카툭튀’를 없애기 위해 카메라 모듈 크기를 줄였다. 렌즈 사양은 괜찮다. 후면 듀얼카메라 중 표준렌즈는 스마트폰 최초로 플라스틱이 아닌 빛의 투과율이 높은 글라스 소재 렌즈를 사용해 F1.6의 조리갯값을 구현했다. DSLR이 아닌 조그마한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 글라스 소재를 사용한 게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낼지는 미지수지만, F1.6의 밝은 조리갯값을 통해 어두운 곳에서도 좀 더 선명한 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

V30의 듀얼카메라는 표준 화각과 광각 2가지 방식으로 촬영할 수 있다. 넓은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광각렌즈의 화각은 전작 대비 135도에서 120도로 줄었지만 가장자리 왜곡을 개선했다. ‘V20’보다 덜 넓게 찍히지만, 가장자리가 휘어 보이는 현상이 줄었다는 얘기다. 120도의 화각도 충분히 넓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시리즈가 듀얼카메라로 아웃포커싱을 구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LG는 두 가지 화각을 구성하는 데 집중한다.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지는 주관의 영역이다. 다만 광각의 필요성은 직접 생활 속에서 사용해봐야 와닿는다.

문제는 이미지 프로세싱이다. 약간 과노출 경향이 있어 하늘을 하얗게 날려버리는 경우가 있으며 샤픈 효과가 들어가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쨍한 사진을 좋아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으로 보이지만 디테일을 죽이고 사실적이지 못한 사진을 뽑아낸다.

기존 전문가 모드는 사용하기 쉽게 개선됐다. DSLR처럼 조리갯값, 셔터스피드, ISO, 화이트밸런스 등을 설정할 수 있는 전문가 모드는 쉽고 빠르게 일상을 담아야 하는 스마트폰에서 계륵처럼 취급됐다. V30은 사람들이 쉽게 전문가 모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상황별로 미리 만들어진 설정값을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피 모드를 넣었다. 석양이 질 때, 불꽃놀이 등 다양한 상황의 사진을 샘플로 제시하고 해당 사진의 설정값을 빌려오는 방식이다. 미리 만들어진 설정값이 실제 환경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정 노출을 위해 어떤 설정을 바꿔야 하는지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

전문가 모드를 잘못 사용한 예

오디오 성능은 탁월하다. 전작의 명성을 계승한 음향 기능을 자랑한다. 하이파이 쿼드 DAC을 탑재하고 B&O 플레이와의 협업을 통해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주며 32비트, 192kHz의 고해상도 음원까지 지원한다. 애플이나 구글과 달리 LG는 무선 이어폰이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이어폰 잭을 살려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황금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V30은 가성비 높은 포터블 오디오 기기다.

 

문제는 신뢰 회복

V30은 V시리즈답게 멀티미디어 기능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준다. 기존의 탁월한 오디오 성능은 계승하고 새롭게 영상 촬영 영역을 개척했다. 멀티미디어 기능에서 전문성을 높여가는 건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이 일부 사용자에게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는 점이 문제다. V30은 휴대용 하이파이 오디오나 캠코더가 아닌 스마트폰이다. 일부의 기능이 아닌 총체적 사용자 경험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기존 LG 제품들은 이 점을 놓쳤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에 32비트 음원을 듣는 ‘황금귀’들이 얼마나 될까. 영상 촬영 기능도 상대적으로 우리의 일상과 밀접도가 떨어진다. 누구나 쉽게 SNS를 통해 영상을 찍어 올릴 수 있지만 여전히 생산자는 한정돼 있다. 중요한 건 일상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기본기다. LG 스마트폰이 ‘인터넷 최강폰’으로 남은 이유는 스펙 이면의 경험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LG는 G6부터 기본기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V30 역시 튼튼한 기본기 위에 멀티미디어적 강점을 쌓아 올렸다. LG 스마트폰은 10분기 연속 적자 상태다. 누적된 사용자 경험이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신뢰를 상실시켰다. V10 사용자가 V30 구매를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그녀가 어떤 스마트폰을 선택할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선택지에 없었던 건 V30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LG가 지금과 같은 수준의 완성도를 유지한다면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다시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장점

  • 동영상 촬영 기능
  • 크지만 가벼운 완성도 높은 디자인
  • 음감용으로 탁월

단점

  • 조금은 아쉬운 카메라 성능
  • OLED의 완성도
  • 장난감 같은 UI

추천 대상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