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 영상, 직접 채증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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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디지털 성폭력 영상 채증을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였다.

정부 대책에는 “2018년까지 이미지·오디오·동영상의 유해성 분석 및 검출 기술을 개발하고, 2019년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몰카 등 음란물은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가웠다. 동시에 궁금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디지털 성폭력 범죄 영상이 제작·유통·소비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2년 뒤가 아닌 지금, 디지털 성폭력 영상은 어떻게 차단되고 있을까.

지난 11월9일, 답을 찾기 위해 디지털성범죄아웃(DSO) 사무실을 찾았다. DSO는 ‘지금 이 순간’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차단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2015년 소라넷 폐쇄 운동을 하며 설립됐다. 현재 웹하드 사이트웹하드는 파일 제공 서비스를 하며 영리를 추구하는 플랫폼이다. 웹하드 사이트는 이용자들에게 파일 공유를 위한 장소와 인터넷 화폐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상거래 할 수 있도록 한다.close에 올라온 디지털 성폭력 영상 근절 활동을 비롯해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면 1. “그들도 어딘가에 출근한 걸까”

(이하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활동명임을 밝혀둡니다.)

DSO로 향하는 길. 마음이 무거웠다. 겁도 났다. 1일 체험을 한다고 나섰으니 하루 종일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볼 텐데 멘탈이 깨지면 어떡하지…. 무거운 마음을 안고 DSO 사무실을 두드렸다. 하예나 대표와 팀장인 썬 님, 모니터링팀의 두루 님과 새롬 님을 만났다. 마침 오전 회의 중이었다. 슬그머니 회의 테이블에 꼈다.

“지금도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어요. 페이지 넘어가는 거 보이죠? 얘네도 어디에 출근했나 봐요.”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30분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회의 중에도 헤비 업로더들은 부지런히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새로운 디지털 성폭력 영상으로 채워진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났다. ‘우리가 이곳에 출근한 것처럼, 저들도 어딘가에 출근해 영상을 올리고 있나 보다’라는 말에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디지털 성폭력 이미지·영상을 통해 업로더와 사이트 운영자가 얻는 영리적 이득은 수천만원을 초월할 것으로 추정된다. 돈이 되는데다 처벌을 피하기도 쉬우니 누군가 직업적으로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웹하드에 올리고 있다는 추측은 합리적 의심이었다.

장면 2. 채증은 ‘정신적 노가다’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디지털 성폭력 영상들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썬 님을 붙잡고 디지털 성폭력 영상 채증 기준을 배웠다.

현재 DSO는 ①영상에 성기가 나오는 ②한국 피해 영상을 채증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물론 성기가 나오지 않아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된 영상은 모두 디지털 성폭력에 해당한다. 피해자가 직접 촬영해 랜덤채팅을 통해 건낸 영상도 유포에 동의한 것이 아니므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온라인에 유포하고 이를 시청하는 것 역시 범죄다. DSO가 ①과 ②를 채증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성기가 나오는 ‘하드포르노’가 불법이기 때문에 성폭력 범죄라는 것을 입증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100여개 웹하드 사이트가 있다. 이 중 나는 ‘케****’라는 웹하드를 맡았다.

웹하드 사이트 '케이디스크'에 올라온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직접 채증했다. 자극적인 장면을 담지 않기 위해 노력해 찍은 사진.

웹하드 사이트에 올라온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직접 채증했다. 자극적인 장면을 담지 않기 위해 노력해 찍은 사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성인’ 카테고리로 들어가 ‘노국’을 검색했다. 끝에 ‘new’를 단 제목 목록이 떴다. 강간 문화의 민낯과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제목 속 여성들은 온갖 ‘××녀’부터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를 뜻하는 ‘골뱅이’까지 다양하게 묘사돼 있었다. 하나같이 이들에게 인격이 있다는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성적 대상화 한 제목들이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채증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디지털 성폭력 영상 업로더의 아이디 하나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올린 영상에서 이미지 파일 총 4개를 채증해야 한다. ①디지털 성폭력 영상이 올라온 페이지 화면 ②해당 영상 다운로드 창 화면 ③영상에서 성기가 나오는 장면 ④해당 영상을 올린 게시자가 올린 영상 목록을 모아놓은 페이지 화면 등이다. 피해자가 채증 지원을 요청해온 영상의 경우엔 ⑤피해자의 얼굴 장면까지 캡처해야 한다. 이처럼 꼼꼼히 채증하는 이유는 경찰마다 요구하는 파일 형식 등이 다양해 최대한 꼬투리 잡히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보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의식이 없는 피해자가 등장하는 영상, 남성의 얼굴은 정성스레 모자이크하면서 여성의 얼굴은 줌인하는 영상도 있었다. 자막으로 ‘○○대 ○○학과 ○○학번 이름 ○○○’, ‘○○○아파트 ○○○호’, ‘이름 ○○○, 주민등록번호 ××××××-×××××××’ 등 피해 여성의 신상을 적어놓은 영상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 디지털 성폭력 영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피해 당사자가 영상 속 자신의 얼굴과 성기가 나온 장면을 직접 캡처하는 일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채증을 시작한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머리가 멍해졌다. 업로더와 시청강간에 참여하고 댓글로 감상평까지 남겨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파렴치함에 분노가 일었다. 더딘 내 작업 속도에 대한 무력감까지 더해졌다.

이날 내가 본 모든 디지털 성폭력 영상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여성이 피해자인 영상들이었다. 새롬 님에게 피해자가 남성인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본 적은 없냐고 물었다. 새롬 님은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 가해자도 남성이고, 피해자가 퀴어 남성인 피해영상”이라고 답했다. 하예나 대표는 “모텔에 설치된 불법촬영 카메라로 찍힌 남녀가 피해자인 경우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장면 3.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필요한 일이잖아요”

DSO 활동가들에게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온종일 보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냐’라는 뻔한 질문을 던졌다.

새롬 님의 답변 :

“정말 힘들어요. 솔직히 오늘도 ‘이번 주까지만 해야겠다’라는 심정으로 출근했어요. 그런데 이게 필요한 일이잖아요. 제가 안 하면 이 역할을 다른 누군가가 하게 될 텐데…. 누가 하든 힘든 작업 같아요.

보셔서 알겠지만 심각하면 강간 영상도 있고 (피해자가) 의식 없는 상태에서 촬영된 것도 있어요. 또 딱 봐도 나이가 어린 사람, 기껏해야 중학생으로 보이는 피해자가 영상에 나올 때도 너무 힘들죠.

등장하는 장소도 다양해요. 화장실부터 베란다를 통해 몰래 촬영한 영상, 탈의실, 목욕탕 등. 어딜 가나 이런 위험이 존재한다는 게 슬프기도 하면서 경각심을 갖게 하죠.

저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예요. 제 피해 경험과 맞닿아 있는 영상을 봤을 때는 더 힘들어요.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제목이 달린 영상은 시청하기 너무 싫고 힘들어요.”

DSO 모니터링팀이 낸 통계 결과, 디지털 성폭력 영상 제목에 묘사된 여성들은 현 여자친구가 18.5%로 가장 많았고 배우자가 14.1%로 뒤를 이었다. 지인으로 확인되는 피해자는 13.3%였고, 그다음으로 헤어진 연인의 유포범죄는 6.5%로 확인됐다. 그 외에 동생이나 누나, 딸, 친인척 등 순이었다. 게시글에 피해자에 대해 기술하지 않은 게시물은 30.1%였다.

썬 님의 답변 :

“많이 힘들어요. 정말 많이 힘들어요. 영상을 클릭해서 보기 전까지 과정이 정말 힘들어요. 힘드니까 자꾸 매뉴얼을 만들어서 그대로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실행까지 가기 위한 게 힘들죠.

한 번씩 훅 올라올 때가 있어요. 감정을 통제하려고 해도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면 한 번씩 나가서 바람 쐬고 오고….

그런데도 분노를 해결할 수 없어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어요. 올해 초에 모니터링했던 영상은 100% 강간 영상이었어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계속 강간 영상만 봤어요. 2개월 보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심리치료를 받아야겠더라고요.”

장면 4. 헤비 업로더 3명 고발하다

지난 11월15일 DSO가 웹하드 사이트에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업로드한 헤비 업로더 3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고발했다.
11월15일 DSO가 웹하드 사이트에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업로드한 헤비 업로더 3명을 '성폭력 처벌법'으로 고발했다.
DSO가 웹하드 모니터링을 통해 정리한 헤비 업로더들의 아이디 목록은 A4 용지 5장 분량이다. 이번에 DSO가 고발한 3명은 이중에서 DSO에 피해를 신고한 피해자가 있고 심각한 수준의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올린 업로더들이다.

하예나 대표는 “다른 헤비 업로더들도 순차적으로 고발할 예정”이라면서 “이들이 꼭 ‘성폭력 처벌법’으로 처벌돼 디지털 성폭력 영상 유포만으로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는다는 선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성폭력 처벌법으로 처벌받으면, 웹하드 사업자들이 이들의 활동을 방조할 경우 ‘방조죄’로 성폭력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에필로그

11월9일 하루 동안 나는 디지털 성폭력 영상 업로더 아이디 7개를 수집했다. 또 피해자가 채증 지원을 요청한 디지털 성폭력 영상 1건에 대한 채증 작업 일부를 했다. DSO는 이 자료들을 무료 업무협약을 맺은 FTP 필러링 업체에 등록한다. 필터링 업체는 해당 자료가 디지털 성폭력 영상인지 판별한다. 디지털 성폭력 영상으로 분류된 영상은 그 순간부터 업로드 및 다운로드 할 수 없게 된다. DSO의 채증 자료는 디지털 성폭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경찰 측과도 공유될 예정이다.

내가 피해자 영상 하나에 대한 채증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어딘가에선 수천개의 새로운 디지털 성폭력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했다. 하지만 이 작업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통받는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의 고통으로 버젓이 돈을 버는 가해자가 있다. 작은 노력이 모여 웹하드 사이트를 디지털 성범죄 청정 지역으로 만들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믿는다. 가까운 미래에 웹하드 사이트에서 법적으로 문제없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자료들만 찾아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참고자료 

  • 디지털성범죄아웃. (2017.09.26) 디지털 성폭력 구분과 실태 종합 분석(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 토론회발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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