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경량·투인원·게이밍PC 부흥기, 델의 전략은?

2017.11.28

‘PC 산업은 죽었다.’ 언론에서 익숙하게 봐온 문구일 것이다. 문구대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17년 3분기 기준 전세계 PC출하량은 12분기 연속 하락했다.

국내 PC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IDC의 국내 PC 시장 연구 분석에 따르면 2017년 3분기 국내 PC 출하량은 전체 101만대로 전년 대비 0.7% 하락했으며 소비자 판매용 PC 부문은 전년 대비 4.1%나 감소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이희건 델 한국법인 클라이언트 솔루션 그룹 부장은 “전체 PC 시장에서 비즈니스 시장은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 수준은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면서 “PC 시장이 이제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지금의 PC 시장을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비교적 단순했던 전통 PC 시장에 비해 지금의 PC 산업은 초경량·투인원·게이밍PC 등 하나의 특징이 집적된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PC 시장 3위를 유지하고 있는 글로벌 제조기업 델은 다른 형태의 PC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경량화 필요하지만 내구성 놓쳐선 안 돼”

델 PC가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내구성’이다. 기업 고객 비중이 높은 만큼 쉽게 고장나지 않는 튼튼한 제품이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개인 소비자용 PC의 내구성 역시 필연적이다. 이는 델이 ‘초경량 노트북 시대’에 내구성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외에서 각광 받고 있는 경량 노트북 디자인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섀시’다. 섀시는 기기를 이루는 뼈대를 말한다. 사람도 뼈가 상하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디바이스도 마찬가지다. 뼈대 골격에 어떤 소재를 썼느냐가 디바이스 내구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델 이희건 부장

이희건 부장은 델 한국법인에서 PC, 태블릿, 주변기기 등을 담당하는 클라이언트 솔루션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는 “전체 섀시를 얇게 디자인하면 노트북 상판을 들 때 LCD까지 손의 압력이 전해진다. 초경량 노트북에 크랙이 간다는 후기가 많은데 그 이유가 섀시에 있을 수 있다”면서 “단단한 카본이나 양극산화 알루미늄 소재를 쓰면 겉면이 잘 벗겨지지 않고 내구성도 높다”라고 설명했다.

내구성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은 ‘힌지’다. 힌지는 노트북 모니터와 키보드를 연결하는 경첩 부분으로, 여기에는 철심이 들어가게 된다. 힌지를 지탱하는 철심의 강도가 높을수록 노트북을 단단히 받쳐줄 수 있다. 그러나 단단하고 강한 소재를 쓰면 무게가 증가하고 두께가 늘어나게 된다.

이 부장은 “초경량 제품을 제작하려면 힌지를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한다”라며 “델은 내구성을 자신한다. 소방서 및 군대 등에서 사용되는 ‘러기드’ 제품도 주요 PC 업체 중 델만 공급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한국에선 13인치 수요가 별로 없어서 15인치와 17인치 모델만 판매한다. 업무용 노트북도 한국인은 15인치를 선호한다. 국내 시장은 가볍고 얇은 제품에 대한 선호가 극명하다. 초경량 노트북은 국내 시장 소비자의 니즈에 최적화된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특히 무게에 민감한 편인 것 같기도 하다. 델 본사에서 미팅할 때가 있는데, 여러 국가 직원들이 제품을 평가할 때 같은 제품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무겁다’고 하는 반면, 미국이나 유럽 쪽은 ‘이게 무겁다고?’라며 이해를 못하더라.”

다양한 포트폴리오에도 소비자 공략법은 부족

물론 델도 소비자용 제품으로 경량 노트북을 내놓고 있다. CES 2017 혁신상을 수상한 ‘XPS13’ 모델은 두께 0.9-1.5cm에 무게 약 1.2kg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투인원 제품이다.

기업용 제품으로는 레노버의 ‘싱크패드’와 비교되는 기업용 투인원PC ‘래티튜드’ 시리즈가 있다. 게이밍PC 제품군은 ‘가성비’를 노린 ‘인스피론15 7000 시리즈’와 프리미엄 게이밍PC 브랜드 ‘에일리언웨어’ 두 종류로 나뉜다. 이중 에일리언웨어는 하드코어 게이머를 위한 브랜드로 21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델 XPS 13 투인원PC

이처럼 델의 포트폴리오에는 타깃별로 다양한 제품군이 마련돼 있지만 기업용 모니터, PC 제조사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델 한국법인의 국내 마케팅 전략도 소극적인 편이다.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하고 있는 타 외산업체와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이희건 부장은 “프로모션을 펼치기 위해서는 오래된 재고가 있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염가형 제품을 출시해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정책은 지양한다”라고 말했다.

‘파트너 비즈니스’ 성공할 수 있을까

델은 기업용 제품에서 일반 소비자용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파트너 비즈니스 확대를 꾀하고 있다. 초창기 델은 유통 과정 없이 소비자와 제조사를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성장해왔다.

그러나 유통망 없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델은 4년 전부터 다른 제조사들처럼 유통 파트너를 통한 ‘채널 비즈니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국내로 들어와도 파트너 비즈니스가 중요하기는 매한가지다. 국내 PC 시장은 LG와 삼성, 양강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날아다니는 제조사들도 한국에서는 LG·삼성 앞에서 맥을 못 춘다. 글로벌 PC기업 세 손가락에 드는 HP, 레노버, 델 모두 마찬가지다. 각 외산업체마다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델은 한국 시장의 패인 역시 파트너 비즈니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희건 부장은 “직접 유통 방식은 한국과 같은 국가에는 특히 부적합했다”면서 “서울경기 수도권 외 지역은 파트너의 영향이 정말 크다. 지인을 통해서 구매하고 유지·보수를 받는데, 우리는 파트너 유통망에 서툴렀다”라고 진단했다.

시작이 늦은 만큼 아직까지 다른 제조사에 비해 델의 유통망은 현저히 적은 편이다. 앞으로 유통망을 어떻게, 또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델의 시장 지배력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델‘EMC’가 된 후, 연구개발에 투자 중

한편 2015년 델은 우리돈으로 약 70조원에 스토리지 업계 1위 B2B 기업 ‘EMC’를 인수했다. 당시 델과 EMC의 합병을 두고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자사 PC 사업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델에게 새로운 비전이 필요했고, EMC 인수를 시작으로 B2B 사업 전략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 업계의 주된 평가였다. <뉴욕타임스>는 델의 합병 소식을 두고 “PC 사업을 넘어 엔터프라이즈 사업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듯 B2B 시장, 기업용 제품에 치중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희건 부장은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 EMC와 합병하면서 B2B 역량이 강화됐고 이를 통해 창출한 수익이 B2C, 즉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델 이희건 부장

그는 “비상장으로 전환한 것 역시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였다. 합병 이후 연구개발비용이 늘고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면서 “분사가 아니라 합병해 하나의 회사로 통합됐는데 이 길이 맞다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