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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2017] ‘아이폰’ 10년, 분기점에 서다

2017.12.11

혁신은 없었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 후 매년 쏟아지는 한국 언론의 레토릭이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목 장사라면 세계 유수의 언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한국 언론은 ‘아이폰X’에 빗대 “아이폰X, 혁신X”라는 혁신적인 제목을 뽑아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 이후 언론은 애플의 혁신성에 대한 부고 기사를 쏟아냈다. 물론 애플은 여전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최고로 잘 나간다.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은 삼성에 내어줬지만 매출액과 이익 점유율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언론과 시장의 간극은 여전히 크지만 점점 거리를 좁혔다. 기대치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시장은 애플에 호의적이지만 경쟁자와의 격차는 좁혀졌다. 때마침 올해는 아이폰의 10주년이었다. 2017년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아이폰에 대한 높은 기대치만큼 온갖 루머가 쏟아졌다. 기대와 실망의 낙차가 어느 때 보다 클 시점이었다. 애플로서도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분기점이었던 셈이다. 혁신은 정말 없었을까. 2017년 애플의 한 해를 돌아봤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애플의 한 해는 루머와 함께 시작한다. 신제품 일부가 공개되는 6월 세계개발자회의(WWDC)와 9월에 열리는 아이폰 공개 행사 사이의 공백을 루머가 채운다. 애플 제품은 마치 문제지의 답안을 맞춰보듯이 루머와 실제 발표를 대조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진다. 가장 기대를 모은 건 새로운 아이폰이다.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에서 나와 애플의 핵심 제품이 된 아이폰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유출자와 애플, 창과 방패의 싸움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원래대로라면 올해는 ‘아이폰7’의 성능 개선판인 ‘아이폰7S’가 출시될 시점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아이폰 10주년을 맞이해 완전히 달라진 ‘아이폰8’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 초부터 제기된 ‘아이폰8’의 예상 스펙은 ▲OLED 디스플레이 탑재 ▲베젤리스 디자인 적용 ▲무선 충전 기능 ▲후면 유리 디자인 ▲듀얼 카메라 ▲얼굴과 제스처를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3D 센서 기술 ▲홈버튼과 지문 인식 센서의 화면 내장 등으로 정리됐다. 가격은 1천달러 이상으로 예상됐다.

이 중 홈버튼과 지문인식 기능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화면에 내장될 거라는 견해부터 후면에 탑재될 거라는 관측까지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9월 아이폰 공개 행사가 가까워지자 홈버튼과 지문 인식이 사라질 거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얼굴인식 기능인 ‘페이스아이디’가 지문인식 ‘터치아이디’를 대체할 거라는 얘기도 이때 등장했다. 아이폰8과 더불어 아이폰7S의 출시도 점쳐졌다. 또 정식 명칭이 아이폰8이 아닌 ‘아이폰X’이 될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이른바 ‘M자형 탈모’ 디자인도 정식 공개 직전 유출됐다. 애플의 발표 형식을 잘 알고 있는 팬들은 애플이 다른 제품을 쭉 공개한 뒤 ‘원 모어 띵(One More Thing)’을 외치며 아이폰X을 공개할 거라고 예상했다.

'아이폰8' 예상도 (출처: Benjamin Geskin 트위터)

‘아이폰8’ 예상도 (출처: Benjamin Geskin 트위터)

아이폰 이외에 가장 화제를 모은 건 ‘시리 스피커’다. 음성인식 비서 ‘시리’를 탑재한 스피커가 공개될 거라는 전망이다. 아마존 ‘에코’를 필두로 인공지능(AI) 스피커 시장이 자리 잡으면서 애플이 시리를 활용한 스피커를 내놓을 거라는 얘기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시리 스피커가 아마존의 ‘에코 스피커’나 ‘구글 홈’처럼 오디오 기능에만 집중한 형태로 나올지 아마존 ‘에코 쇼’처럼 화면을 탑재할지는 불분명했다. 이밖에도 AR 안경, 새로운 맥북과 아이맥 라인업, 3세대 애플워치, 4K 애플 TV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원 모어 띵

애플은 6월5일(현지시간) ‘세계개발자회의(WWDC) 2017’ 기조연설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망라한 신제품을 발표했다. ‘iOS11’과 신형 맥 시리즈, 10.5인치 아이패드 프로 그리고 스마트 스피커 ‘홈팟’ 등이 공개됐다.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음성인식 비서 시리를 탑재한 스피커, 홈팟이다. 시리 스피커 프로젝트로 불리던 홈팟은 WWDC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졌고 예상은 적중했다. 화면이 내장될 것으로도 예상됐지만 애플은 음악을 차별점으로 내세우며 스피커에 집중했다.

홈팟이 갖는 기존 AI 스피커와 차별점은 음악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아이팟을 떠올리게 하는 제품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플은 전략적으로 음악을 내세웠다. ‘스마트’보다 ‘스피커’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늦은 출발이지만 애플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에 집중했다. 애플이 설계한 상향식 우퍼와 커스텀 A8칩의 결합을 통해 깨끗하며 왜곡이 적은 음색을 전달한다. 또 공간 인식 기능을 통해 방 안에서 홈팟 자신의 위치를 감지하고 오디오를 자동으로 조절해 준다. 탁자 위인지 방구석에 있는지 등을 파악해 사운드를 공간에 맞춰 최적화한다는 얘기다. 가격은 미국 기준 349달러로 책정됐다. 12월에 출시할 것으로 발표됐지만 애플은 최근 홈팟 출시일을 내년 초로 연기했다.

아이폰은 9월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신사옥 애플파크에 있는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공개됐다. 애초 새롭게 발표될 제품으로 ‘아이폰7S’, ‘아이폰7S 플러스’, ‘아이폰8’ 등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행사 직전 나온 유출 정보대로 각각 ‘아이폰8’, ‘아이폰8 플러스’, ‘아이폰X’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발표됐다. 먼저 발표된 건 아이폰8이다. 아이폰8은 외형적으로 큰 변화 없이 아이폰6 이후 이어져 온 패밀리룩을 따르고 있다. 후면이 유리 재질로 바뀐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필립 쉴러 애플 월드와이드 마케팅 수석 부사장은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폰의 모든 장점을 향상시킨 아이폰의 새로운 세대”라며 아이폰8을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소개하려고 애썼지만 뒤이은 팀 쿡의 “원 모어 띵” 한마디에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애피타이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아이폰X이 공개됐다. 행사 직전 유출된 정보가 대부분 들어맞아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정말로 홈버튼과 지문인식이 사라졌다는 점, ‘탈모형 디자인’이 그대로 나온다는 점, 그 디자인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는 점, 1천달러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 가격에서 1달러가 빠졌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아이폰과 함께 ‘애플워치 3세대’, ‘애플TV 4k’가 공개됐다.

새로운 사용자 경험

아이폰X에 홈버튼의 자리는 없었다. 제품 전면부가 화면으로 가득 찬 만큼 제품 후면으로 이동하거나 화면에 내장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홈버튼은 결국 ‘밀어서 잠금해제’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문인식 기능인 터치아이디 역시 함께 실종됐다. 대신에 새롭게 추가된 기능들이 사라진 것들의 자리를 메웠다. 홈버튼은 제스처로, 터치아이디는 페이스아이디로 대체됐다.

터치아이디는 페이스아이디로 대체됐다.

홈버튼은 지난 10년간 아이폰의 상징이었다. 많은 것이 바뀌어도 홈버튼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또 단순한 상징을 넘어 사용자 경험의 핵심이었다. 뒤로가기 등 여러 버튼이 있는 안드로이드와 달리 아이폰의 조작은 터치와 홈버튼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홈 화면으로 돌아가거나 멀티태스킹을 할 때 홈버튼 하나로 조작이 이뤄진다. 이런 홈버튼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사용자 경험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이 도입한 건 제스처 방식의 조작이다.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는 방식으로 홈버튼 기능을 구현했다. 물리 버튼의 조작 체계를 단순히 소프트웨어 키로 옮겨온 안드로이드와는 다른 방식이다.

'아이폰X' 화면

또한, 지난 수년간 안정적인 보안 수단으로 자리 잡아 온 지문인식을 빼고 얼굴 인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페이스아이디는 전면 카메라인 ‘트루뎁스 카메라’에 적용된 기술로 구현된다. M자형 탈모를 연상시키는 전면 디스플레이의 빈자리에는 도트 프로젝터, 적외선 카메라, 투광 일루미네이터로 구성된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보이지 않는 3만개 이상의 도트를 얼굴에 투사해 사용자의 얼굴 맵을 만들고 적외선 카메라가 얼굴의 도트 패턴을 판독하고 데이터 일치 여부를 확인해 사용자를 인증한다.

사실 얼굴인식 방식의 보안시스템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기존 얼굴인식은 2차원 평면 이미지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평범한 전면 카메라를 통해 인식한 얼굴을 기존에 등록된 얼굴 이미지와 대조해 일치 여부를 판별하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 앞의 대상을 실제 사용자인지 사진인지 제대로 구분해내지 못한다. 페이스아이디의 경우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을 통해 말 그대로 얼굴의 깊이를 측정한다. 3차원 이미지를 대조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바라보는 경우에만 잠금이 해제되며 적외선 센서를 통해 어두운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새로운 칩셋인 ‘A11 바이오닉’은 머신러닝을 통해 외모 변화를 인지한다. 안경과 모자를 써도, 수염을 기르고 머리 모양을 바꿔도 사용자를 알아본다.

트루뎁스 카메라를 활용한 애니모티콘

페이스아이디는 단순히 보안 시스템으로 그치지 않는다.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은 얼굴을 3만개의 점으로 정교하게 맵핑하기 때문에 입체적 이미지가 필요한 분야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일례로 애플은 ‘애니모티콘’을 들고 나왔다. 이는 증강현실(AR) 분야와 맞닿아 있다.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AR은 정교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어색하지 않고 가상 이미지를 녹여내는 게 관건이다.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은 이런 측면에서 AR 분야에 정교함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애플은 iOS11부터 AR키트를 지원해 아이폰을 AR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아이폰 10주년이었던 올해, 애플은 아이폰8과 아이폰X을 통해 이전의 10년을 완성된 형태로 정제하고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는 아이폰의 미래를 제시했다. 애플 스스로도 올해를 분기점으로 삼은 셈이다. 정말 혁신은 없었던 걸까. 혁신이 없었던 건 ‘혁신은 없었다’는 말 자체이지 않을까.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