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B씨] 망 중립성 폐지, 뭐가 문제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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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 위원들(사진=FCC)

망 중립성 원칙이 결국 폐기됐습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 12월14일(현지시간) 망 중립성 원칙 폐기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결과,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가 결정됐다고 밝혔습니다. 표결에 참가한 총 5명의 FCC 위원 중 공화당 추천 인사 3명이 찬성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번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망 중립성 폐지는 간략하게 말해 버라이즌, AT&T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를 미국 통신법상에서 ‘공공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분류하기로 결정한 것을 말합니다. 딱히 뭐가 다를까 싶게 단순한 결정 같지만, 여파가 어마어마합니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인터넷, 콘텐츠, 통신, 미디어, 플랫폼 등 각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제출한 ‘인터넷 자유 회복’ 문건 中 ‘타이틀2’인 유무선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를 타이틀 1로 회복하자는 조항과 그 배경 설명.

망 중립성이 도대체 뭔가요?

이번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망 중립성’의 개념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을 통해 발생한 데이터 트래픽을 통신사업자가 대상·내용·유형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가 동영상을 송출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와 개인 사용자가 메시지를 보낼 때 필요한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하자는 겁니다. 더 쉽게 말해볼까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차선마다 도로 컨디션, 요금, 속도 등을 다르게 하는 차등은 없습니다. 이처럼 통신사는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고객이 모두 동등한 데이터를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가 망 중립성 원칙을 따라야 하는 당위성은 하나입니다. 인터넷 중립성. 인터넷을 통한 혁신과 표현의 자유를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는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안에 대해 “이번 일은 인터넷에게 재앙이 될 것”라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또한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을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인터넷은 수수료를 지불하거나 누군가의 허가를 맡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망은 공공재인가요?

하지만 인터넷망 역시 특정 사업자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미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인 버라이즌, AT&T, 컴캐스트 등은 직접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그에 따른 데이터를 소비자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통신사업자와는 또 다른 부분입니다. 한국의 경우 국가가 공공 이익이나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에 한해 인터넷망을 운영할 수 있게 제한해두고 있습니다. 아무튼 미국과 같이 상업적 영역에서 인터넷 사업을 꾸려왔던 통신사업자 쪽에서는 사실상 인터넷 중립성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번 이슈에 대해 ‘정보에 대한 권리가 또 한 번 자본주의 논리에 점령되는 사례’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상업적 문법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망 중립성 폐지로 통신사업자 측은 여론의 강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통신사가 망 중립성 폐지로 얻게 될 혜택을 상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트래픽을 많이 잡아먹는 서비스에게 막대한 추가비용을 내게 하거나, 자사의 콘텐츠 사업에 더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겁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고속도로 사례를 다시 가져올 수 있겠습니다. 돈을 더 많이 낸 차량은 훨씬 더 빠르고 쾌적한 도로를 제공하거나, 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 차량은 안 좋고 막히는 도로를 주는 거죠. 합리적이거나 타당한 이유 없이 사업자를 차별하거나 차단할 기회가 제공됐다는 점에서 통신사 이외의 사업군에서 거센 항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flickr.CC BY.jcneto

위에서 든 예시는 사실 이번 망 중립성 폐지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 측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통신사 측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신사는 인터넷 이용료를 인상시켜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들은 기술 발전으로 데이터 인프라 투자에 대한 비용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 플랫폼 회사들이 이용하는 인터넷망이 점점 고도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표결의 중심에 있었던 아짓 파이 FCC 회장은 “해당 법률이 혁신을 저해하고, 대기업이 새로운 인터넷 인프라에 투자하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서로 다른 무대에서 상생을 꿈꾸는 플랫폼사 & 통신사

flickr.CC BY.nakashi

이번 논쟁이 단순한 각자 사업에 대한 싸움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콘텐츠’에 있습니다. 콘텐츠라는 매력적인 파이를 두고 서로 선 넘기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의 시대라고 할 만큼 너도나도 콘텐츠 기업을 자처하는 때에 나온 논쟁입니다. 플랫폼사와 통신사의 속내에는 콘텐츠 기업의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욕심이 담겨있습니다. HBO, CNN 등을 소유한 타임워너와의 합병을 발표한 AT&T나, AOL·허핑턴포스트·야후를 인수한 버라이즌의 사업 방향만 봐도 짐작할 수 있죠.

망 중립성 폐지는 플랫폼사 입장에서는 마지막 한계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유통에 대한 권력을 소유한 통신사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을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정 어려우면 콘텐츠를 가지고 ‘제로레이팅(데이터 차감 없이 미디어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것)’과 같은 협업 딜이 가능하지 않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하지만 플랫폼 사가 이같은 거래에 뛰어드는 순간 논리의 모순이 생깁니다. 플랫폼 사는 언제까지나 플랫폼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통신사를 향해 계속해서 ‘인터넷의 자유’와 ‘공공성의 훼손’과 같은 비난을 씌우는 이유입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으로 재탄생을 노리는 플랫폼사와 통신사는 각자의 환경을 기준으로 상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 통신망은 시장재에 가깝고, 망 중립성 폐지가 결정된 이상 지금부터는 자율경쟁이 곧 상생입니다.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생각보다 조용한 이유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본에 의해 상생 무대가 꾸려진 곳에서 글로벌 IT 기업이 질 이유는 크게 없다는 자신감이 있는 듯합니다. 오히려 자본력을 투자할 수 있는 무대가 생긴 셈이죠. 소규모 콘텐츠 회사나 인터넷 기반 스타트업에 대한 걱정을 안 하는 쪽은 오히려 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만 내냐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의 불만

국내 상황은 어떨까요.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모두가 국내 사정에 눈을 돌렸습니다. 국내에도 미국과 같은 환경 변화가 적용돼 통신사에게 유리해지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좀 다릅니다. 일단 앞서 말했듯 한국 통신사업자의 인터넷망은 공공재적 성격이 아주 강합니다.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망 중립성 역시 명확한 원칙이 입법돼 있지 않습니다. 가이드라인으로 망 중립성이 지정되어있기는 하지만, 관행적으로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들은 매년 막대한 규모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지난해 기준 734억원을 자사 망 사용료로 지불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국내에선 통신사와 플랫폼 사가 각자 억울함을 표출하는 이유입니다.

통신사 측은 망 중립성에 대한 법적 의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재의 책임의식, 즉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반면 국내 플랫폼은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관행에 따른 망사용료를 지불합니다. 모두가 구글, 유튜브 쪽을 흘깃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만간 국내 통신업체는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망사용료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통신사들도 콘텐츠 기업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가 비슷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만큼 경쟁구도가 잡히는지는 의문입니다. 애초에 시장 내에서 망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망 사용료 관련한 문제는 망에 대한 국내외 기업의 역차별 선을 넘지 않고서는 다음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으로선 자율경쟁이라는 무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콘텐츠 기업으로서의 경쟁은 망 사용료 문제가 정리된 후부터 시작입니다.

과금의 끝에는 소비자가 있다

flickr.CC BY.Lisa Pailla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차량을 운행하는 자(플랫폼 사업자)는 탑승한 고객(소비자)에게 더 좋은 도로로 가기 위한 돈을 더 요구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인터넷 사용 환경과 서비스 방식에 거대한 변화가 생기게 될 수 있습니다. 사업자들은 결국 소비자에 대한 책임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적절한 경쟁 유도를 넘어선 과금을 하는 통신사나, 서비스 품질에 대한 과금 책임을 소비자에게 넘기는 플랫폼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망 중립성의 기본은 단대단 원칙(end-to-end principle)이라고 합니다. 망의 끝과 끝에 있는 사람이 동등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단대단 원칙에서 주장하는 동등성이 과연 정말로 공평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망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모범적 명제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방향이 기업 상생과 소비자를 위한 공평성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곳이 콘텐츠 기업으로서 성공을 가져갈지에 대한 여부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결국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게 될 주체도 소비자입니다. 망 중립성 폐지를 계기로 통신사가 콘텐츠 시장을 헤치게 될 수도, 아니면 오히려 공정 경쟁이 가능한 판을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향성이 소비자 헤택을 증가하는 것인지는 지금부터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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