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애덤스의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바벨피시라는 물고기가 나온다. 귀에 집어넣으면 어떠한 언어든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 가상의 생명체는 자동 통·번역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포털 사이트 야후의 번역 서비스는 이 물고기의 이름을 따다 쓰기도 했다. SF 속의 생명체를 현실로 불러들인 건 구글이다. 2017년 10월 4일 구글이 발표한 무선 이어폰 ‘픽셀 버드(Pixel Buds)’는 동시통역 기능을 갖췄다.

픽셀 버드는 구글이 내놓은 동시통역 기능이 탑재된 무선 이어폰이다. <출처: 구글>

 

실시간 40개 언어 통역

‘픽셀 버드’는 구글이 애플 ‘에어팟’의 대항마 격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애플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비서와 연동해 쓸 수 있으며 가격이 159달러로 동일하다. 케이스가 무선충전기 역할을 한다는 점도 똑같다. 구글 역시 애플처럼 자사 스마트폰 픽셀2의 3.5mm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면서 무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으로 픽셀 버드를 선보였다.

가장 큰 차별점은 동시통역 기능이다. 한국어를 포함한 40개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준다. 오른쪽 이어폰을 길게 누르고 “프랑스어로 말할 수 있게 도와줘”라고 하면 통역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통역 기능은 구글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와 연결했을 때만 작동한다.

케이스가 충전기 역할을 한다. <출처: 구글>

제품 발표 당시 시연만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언어권 사람이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한 모습이다. 한 사람은 영어로, 다른 한 사람은 스웨덴어로 대화했지만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픽셀 버드가 기기를 착용한 스웨덴어 화자에게 영어권 화자의 말을 실시간으로 스웨덴어로 번역해 들려주고, 다시 스웨덴어 화자의 말을 영어로 번역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구글의 번역 기술이다. 구글은 실시간 통역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건 아니다. 픽셀 버드는 기존 구글 번역기를 활용한다.

무선 이어폰이지만 분실 우려 때문에 양쪽 이어폰이 선으로 연결돼 있다. <출처: 구글>

구글 번역기는 인공신경망 기술을 적용하면서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구글은 2016년 11월 ‘구글 신경망 기계번역(GNMT)’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자사의 번역 서비스에 적용해 번역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구글에서 위키피디아 및 뉴스 매체의 샘플 문장을 기준으로 주요 언어 조합의 번역을 평가한 결과, 번역 정확도는 기존 55%에서 88%까지 올라갔다. 향상된 번역기 성능을 바탕으로 구글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픽셀 버드의 실시간 통역 기능도 그 일환이다.

 

출시 후 평가

픽셀 버드의 통역 기능은 새롭지 않다. 기존 구글 번역 앱에서도 쓸 수 있다. 단지 픽셀 버드를 매개로 사용성을 높여줬을 뿐이다. 스마트폰을 꺼내고 잠금화면을 해제하고 구글 번역 앱을 실행하고 음성 인식 기능을 누르기까지의 번거로운 시간을 픽셀 버드의 오른쪽 이어폰을 터치하는 동작 하나로 단축해준다. 터치 동작 후에 40개 언어 중 특정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구글 어시스턴트가 구글 번역 앱을 실행시킨다. 그리고 들리는 언어를 번역해 사용자에게 들려주고 사용자의 말을 번역해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방식이다.

픽셀 버드의 동시통역 기능은 구글 번역기에 기반한다. <출처: 구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는 만큼 픽셀 버드의 통역 수준도 구글 번역기의 성능에 비례하며 한계도 명확하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얘기다. 시연 영상처럼 물 흐르듯이 통역이 이뤄지진 않는다. 대화 속도를 통역이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픽셀 버드의 통역 기능에 대해 유망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고 평가하며 스타트렉의 우주 통역기나 바벨피시에 견줄 건 아니라고 밝혔다. 또 인간 통역사가 일자리를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여행자나 다른 언어로 간단하게 대화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통역 기능은 구글 스마트폰 픽셀과 연결할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출처: 구글>

스마트폰이 구글 픽셀 시리즈가 아니라면 효용성은 떨어진다. 통역 기능은 픽셀폰에서만 작동하며 나머지 안드로이드나 아이폰에서는 다소 평범한 무선 이어폰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픽셀 버드는 안드로이드5.0 이상의 스마트폰과 iOS10 이상의 아이폰에 연결된다. 안드로이드6.0 이상이 설치돼 있고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스마트폰에서는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와 연동된다. 아이폰 사용자는 시리를 불러올 수 있다.

총 3가지 색상으로 출시됐다. <출처: 애플>

 

떠오르는 히어러블 시장, 한국은?

귀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제품, 이른바 ‘히어러블(Hearable)’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애플의 에어팟부터 구글의 픽셀 버드까지, AI 서비스와 연동은 물론 점점 진화된 기능을 선보이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히어러블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네이버는 2018년 1월 9일부터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18’에서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 ‘마스(MARS)’를 공개한다.

마스는 네이버-라인의 AI 플랫폼 ‘클로바’와 연동되며 ‘파파고’ 서비스 기반으로 동시통역 기능을 제공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10개 언어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쪽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착용한 후 언어를 설정하면 마이크 등 별도의 기기 없이 상대방의 말을 내가 원하는 언어로 통역해서 들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도 내 말을 통역해 전달할 수 있다. 마스는 CES 2018에서 헤드폰 분야 최고 제품에 수여되는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내년 상반기 중 한국에 우선 출시될 예정이다.

네이버 무선 이어폰 ‘마스’. CES 2018에서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출처: 네이버>

삼성전자가 출시한 ‘기어 아이콘X’는 동시통역 기능은 없지만, AI 비서와 연동된다. 2017년 10월 출시된 이 제품은 삼성 ‘빅스비’ 또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지원하며 스마트폰 없이 독자적으로도 달리기와 걷기를 할 때 실시간 음성 코칭을 제공하고 운동시간, 거리, 운동량 등을 기록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히어러블 기기 시장이 2022년까지 연평균 101.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 참고자료
– 채반석, 『‘야민정음’도 번역하네…구글 번역기의 흥미로운 사실 5가지』 (블로터, 2016.11.29)
– 김인경, 『구글, 하드웨어의 중심에서 AI를 외치다』 (블로터, 2017.10.12)
– Hayley Tsukayama, 『I tried out Google’s translating headphones. Here’s what I found.』 (The Washington Post, 2017.11.15)

이 글은 ‘네이버캐스트→테크놀로지월드→용어로 보는 IT’에도 게재됐습니다. ☞‘네이버캐스트’ 보기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