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만...?

죽느냐, 사느냐…CES로 본 AI 플랫폼 전쟁

2018.01.16

“헤이, 구글. 여행지 날씨 알려줘.”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CES) 2018’을 가득 채운 건 인공지능(AI) 비서를 부르는 목소리다. 구글의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찾는 목소리는 LG전자가 연 기자 간담회에서 나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스콧 호프만 구글 어시스턴트 개발 총책임자는 “시계, TV, 냉장고, 세탁기, 오븐, 에어컨까지 어떤 제품 분야에서도 협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AI 비서는 이제 스마트폰이나 스피커라는 몸통에서 벗어나 생활 공간에 스며드는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의 양강체제

지난 1월12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CES 2018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AI다. 단순히 개별 제품에 탑재되는 AI를 넘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AI 플랫폼의 현재 지형도를 보여줬다. AI 플랫폼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양강체제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구글과 아마존이 주인공이다. 2014년 스마트 스피커 ‘에코’를 통해 처음 등장한 AI 비서 ‘알렉사’는 CES 2018에서 로봇 청소기, 공기 청정기, 커피메이커, 전구 등 다양한 제품으로 몸집을 불렸다. 음성 명령을 통해 알렉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알렉사 스킬’은 2만5천개를 넘었다. 스마트폰 앱처럼 다양한 서드파티들이 참여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아마존 ‘에코’

후발주자인 구글 어시스턴트는 무서운 속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글은 LG전자를 비롯해 소니, 레노버, 뱅앤올룹슨, JBL 등과 중국계 기업 TCL, 스카이워스, 샤오미, 창훙, 하이얼에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LG소니는 스마트 TV를 중심으로 구글 어시스턴트가 적용된 제품을 선보였다. 플랫폼으로 진화한 AI 시장에서 기업 간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차량용 OS ‘안드로이드 오토’를 통해 자동차 영역으로까지 세를 넓혔다.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 두 AI 플랫폼은 개발사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 알렉사는 아마존 서비스와 연계를 통해 쇼핑 영역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구글 어시스턴트는 지메일, 구글 맵, 구글 드라이브 등 구글이 지닌 서비스와 데이터를 통해 검색에서 강점을 나타낸다. 또 자연어 처리 연구에 집중한 구글은 음성인식 정확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빅스비’로 균열 내려는 삼성

AI 플랫폼 시장이 양강체제로 재편되는 가운데 삼성은 독자 개발 AI 플랫폼 ‘빅스비’로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CES 2018 개막에 앞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2020년까지 삼성전자의 모든 스마트 기기에 AI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열린 ‘삼성 개발자 컨퍼런스(SDC) 2017’에서는 ‘빅스비2.0’을 발표하며 스마트폰뿐 아니라 어느 제품에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을 강조했다. ‘갤럭시S8’에서 시작한 빅스비는 다양한 스마트 기기로 확장되고 있다. 빅스비는 가전기기는 물론 자동차까지 포괄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하만과 함께 자동차용 스마트 전장 시스템 ‘디지털 콕핏’과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라인’을 공개했다.

CES 2018 삼성전자 기자 간담회

문제는 삼성전자의 제품 영역을 넘어 얼마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AI 플랫폼의 경쟁력은 스마트폰, 스피커를 넘어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괜찮은 AI 경험을 일상 속에서 얼마나 폭넓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갈린다. 삼성전자는 독자 모바일 운영체제, ‘바다’를 야심 차게 내놓았지만 대차게 실패했다. 후속작인 ‘타이젠’은 IoT 기기를 중심으로 반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0%에 수렴한다. 모바일 플랫폼 시장에서 구글과 애플의 독주 체제에 의미 있는 균열을 가하지 못했다. 대세에서 벗어난 독자 노선의 딜레마다.

삼성이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반면 LG는 개방 정책을 펴고 있다. LG전자는 CES 2018에서 독자 개발 AI 플랫폼 딥씽큐와 더불어 외부의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제품들을 전시했다. LG전자는 현재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네이버 ‘클로바’ 등 다양한 AI 플랫폼과 협업해 자사의 가전제품에 탑재하고 있다. 오픈 플랫폼, 오픈 파트너십, 오픈 커넥티비티 등 3대 개방형 전략을 내세웠다. LG전자는 거주 지역, 사용 언어 등 고객의 환경을 고려해 사용자가 가장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서로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는 두 국내 업체의 향방은 AI 플랫폼 시장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CES 2018 LG전자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스콧 허프만 구글 어시스턴트 개발 총책임자

 

왜 인공지능 플랫폼인가

기업들이 AI 플랫폼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는 커다란 시장 잠재성 때문이다. 모바일 플랫폼 시장은 이미 애플과 구글이 장악했다. 모바일 퍼스트 시대의 기업들은 이 둘의 생태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2014년 아마존은 파이어OS를 탑재한 ‘파이어폰’을 통해 모바일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1억7천만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AI 플랫폼은 모바일을 벗어나 생활 공간의 전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모바일과는 비교할 수도 없게 커질 수 있다. 아마존이 모바일 시장을 빠르게 접고 AI 플랫폼 알렉사에 집중한 배경이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8종의 하드웨어 제품을 공개하면서 AI 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진보한 인공지능의 교차점에서 기기들이 만들어질 때, 우리는 더 도움이 되고, 삶을 편안하게 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거대한 잠재력을 본다”라고 전했다. AI 플랫폼이 추구하는 건 더 편안한 삶이다. 사용자가 기기를 이해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기기가 사용자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쉽게 기기를 조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또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AI 기술이 적용된 구글의 하드웨어

음성은 AI 플랫폼에서 인터페이스 역할을 한다. 기존 디스플레이 중심의 인터페이스가 활용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물과 공간에 스며들 수 있다. 또 멀티태스킹에 유리하다. 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거지하면서 쇼핑 주문도 하고 음악도 틀고 메세지를 전송할 수도 있다. 기기와 인간이 자연어로 제대로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음성은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다. 기존 사용자 경험보다 괜찮은 AI 경험을 지속해서 사용자에게 제공한다는 가정 하의 얘기다.

 

인공지능 플랫폼의 미래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의 이행은 이미 시작됐다. 어도비는 어도비 디지털 인사이트의 보고서를 인용해 음성인식 기기의 시장성이 아주 밝다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음성인식 비서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103% 증가했다. 사용자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타 레시어도비 디지털 인사이트 선임 분석가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디스플레이를 통해서만 기기를 작동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소비자는 음성 기반 기술에 더욱 익숙해지고,이 기술을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IT 자문기관 가트너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2022년에는 기기가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기기가 사용자의 표정·억양·행동 패턴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적인 맥락을 이해할 경우 상황에 맞는 높은 수준의 개인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소수 독점이다. 플랫폼 시장은 기본적으로 승자독식체제다. 생존과 종속의 딜레마는 AI 퍼스트 시대에도 여전하다. 모바일 플랫폼에 대한 종속이 AI 플랫폼에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다. 게다가 AI 플랫폼은 기술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특정 기업의 시장 독과점 문제는 지금보다 더욱 커질 수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CES의 광경은 향후 많은 일본 기업이 직면할 ‘죽느냐 사느냐의 경쟁’을 비추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지금도 편리를 담보로 수많은 사용자의 개인정보가 기업에 넘어가고 있다. AI 플랫폼은 특정 기기가 아닌 공간을 매개로 한다. 모든 사물이 AI 플랫폼 탑재 대상이다. 훨씬 더 많은 개인정보 데이터가 소수 기업에 의해 관장될 위험성이 있다는 얘기다.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