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댓글은 나의 힘”…이야기꾼, ‘김동식 작가’가 되다

2018.01.21

하룻밤 새 ‘지저세계’로 납치된 1만명의 사람들은 기약 없이 땅을 파야 하는 숙명에 놓인다. 그들은 말라 비틀어진 빵을 배급 받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땅을 파면서 하루하루를 억지로 보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그들의 모습은 ‘회색’처럼 보였다. 그런데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통에 찬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지만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한 중년 여인은 글 쓰는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사람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들은 더 이상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회색’이 아니었다. 김동식 작가의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회색인간’을 짧게 요약한 내용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 공포게시판에 연재되던 글이 3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단편소설집 ‘회색인간’, ’13일의 김남우’,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는 지난해 12월27일 출간되고 불과 일주일만에 2쇄를 찍었다. 2주만에 3쇄를 넘겼다. 그리고 인터뷰 당일 ‘회색인간’은 4쇄 5천부를 추가 출간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커뮤니티에 ‘재밌는’ 글을 올리던 김동식 씨는 단숨에 단편소설집을 3권이나 낸 작가가 됐다.

그 사이 김동식 작가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붙었다. 주로 노동과 관련된 말들이었다. 작가 스스로 원하는 수식어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노동으로 글이 탄생했다는 얘기는 사실 조금 부끄럽다”라며 “수식어가 있다면 ‘댓글이 만든 작가’에 가까울 거다. 아니면 인터넷의 연대가 만든 작가?”라고 말했다.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던 일상, 상상을 글로 썼다

“똑같은 일을 매일 해서 지겨우니까 재밌는 걸 상상했어요. ‘영화 결말이 이랬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생각한다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거나.”

김동식 작가는 2006년부터 10년 동안 종일 같은 일을 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반복된 단순 주물노동이었다. 2-3개 틀을 옆에 두고, 틀 하나를 넣고, 원심동력기에 아연을 붓고, 틀을 빼고, 다른 틀을 넣고, 원심동력기에 아연을 붓고, 틀을 뺐다. 열이 식으면 물건이 나오는 식이었다. 이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한 반복했다.

그의 자리 앞에는 벽이 있었다. 혼자 하는 일이라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타향살이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 일도 없었다. 취미도 없었다. 오로지 집과 일터만 오가는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 머릿속에선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유롭게 펼쳐졌다.

2016년 봄 김동식 작가는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네이버에 글 쓰는 법도 검색했다. ‘접속사를 많이 쓰지 말고 간단명료하게 써라’, ‘점을 많이 찍지 마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지식iN 답글을 참고했다.

평소 심심할 때 ‘눈팅’하던 커뮤니티 ‘오늘의유머’ 공포게시판에 ‘복날은간다’라는 닉네임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귀신이나 끔찍한 이야기가 아닌, 사람이 무서워 오싹한 내용들이었다.

오유에 올라온 ‘복날은간다(김동식 작가)’ 글.

그의 글은 곧 오늘의유머 추천수 100개 이상 게시물을 모아두는 ‘베스트오브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가게 됐다. 수많은 칭찬 댓글이 달렸다. ‘다음편이 궁금하다’, ‘재밌다’는 댓글에 힘을 얻은 그는 본격적인 글쓰기에 돌입했다. 글을 올린 지 6개월 뒤에는 10년 동안 해온 일을 그만뒀다. 지쳤던 탓도 있지만 쉬면 시간이 많으니 글도 더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동식 작가의 게시글을 눈 여겨보던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그에게 책을 출간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온라인 속 ‘복날은간다’의 공포글이 김동식 작가의 단편소설집으로 재탄생해 오프라인 공간에 나오게 됐다.

“제 글을 보고 ‘이정돈 나도 쓸 수 있는데?’ 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반가울 것 같아요. 저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한테는 그렇거든요. 저 때문에 그런 사람이 나오면 제가 뭐라도 된 기분이 들 거예요.”

재밌는 이야기꾼은 어떻게 글을 만드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의 글을 쓴다. 하루키에게 글쓰기는 생활습관이다. 아무것도 안 써져서 고생한 적도 없다. 이런 면에서 김동식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는 3일에 한 번씩 단편을 써서 올렸다. 그렇게 1년6개월 동안 340편 정도를 썼다. 아무도 몰랐던, 자신과의 약속이지만 대부분 지켜왔다. 단편은 다음편을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쓰지 않으면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식 작가는 ‘이야기꾼’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의 재능을 발전시킨 것은 커뮤니티 댓글들이었다. 댓글에서 ‘이렇게 쓰면 좋지 않겠냐’, ‘이런 점이 아쉽다’고 말하면 다음 글쓰기에 반영했다. 글에 종종 등장하는 ‘요괴’ 역시 처음에 사람들이 귀여워해서 이후 재출연하게 됐다.

그는 “봐주는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면서 “글 쓰는 법은 댓글을 써준 분들한테 배웠다. 맞춤법도 알려주고, 이렇게 쓰면 좋겠다고 평가도 해주니까 피드백을 받으면서 나아졌다”라고 말했다.

댓글 반응으로 글쓰기 감각도 익혔다. 재밌는 글,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신이 풀어놓은 이야기가 끝나도 그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져야 했다. ‘여운을 남기는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찾은 답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할 수 있는 ‘딜레마’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딜레마 상황은 근본적으로 윤리, 도덕과 인간의 욕망을 건든다. 그의 짧은 단편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유다.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

소재는 일상 곳곳, 생활 면면에서 발견한다. 일례로 그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관객을 바라보는 것에 전율을 느꼈던 경험을 살려 단편 ‘시공간을 넘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마음’을 썼다. 독자의 ‘마음’을 참여시킨 글이었다.

사람들이 대개 버스, 지하철, 화장실, 심심한 공간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만큼 간결하고 가독성 높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기승전결은 직관적으로 구성했다.

글쓰기에 예상치 못하게 닥친 애로사항도 있다. 공장에서 일을 하던 때에는 종일 머릿속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두고 퇴근해서 ‘옮겨’ 적었는데, 지금은 앉은 자리에서 쓰려니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 그는 “공장에서 일할 때 이야기가 더 잘 나왔던 것 같다. (가려도 해도) 요즘은 공장에 자리가 없다”라며 웃었다.

이대로 살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책을 출간하고 받은 첫 인세로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에게 킹크랩을 샀다. 인터넷에 그가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턱 없던 가족들은 그가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대단한 사람 된 거냐’며 신기해했다.

‘작가’ 칭호는 아직 얼떨떨하지만 책을 출간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걱정도 있다. 앞으로 이대로 살아도 먹고 살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건대입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동식 작가.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책도 잘 읽지 않았는데, 정식 작가가 되니 극과 극의 조언도 쏟아진다. 누군가는 그에게 “괜히 책을 읽지 말고 쓰던 대로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에게 “이제 이런 책을 보면서 발전해보시라”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지 말란 사람이 많아 아직은 ‘열심히’ 책을 안 읽는 중이다.

오늘의유머 공포게시판에는 여전히, 3일에 한 번씩 ‘복날은간다’의 글이 올라온다. 그는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할 수 있는 것, 계속 해오던 걸 하는 게 낫다”라며 “할 수 있는 것만 하다가 굶어죽을 것 같으면 일을 하러 갈 거다”라고 말했다. ‘회색인간’ 속 소설가처럼 그는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

이야기꾼 김동식 작가를 지탱하는 동력은 단 하나, 댓글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언젠가, 댓글이 하나도 안 달리면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 하나라도 달리면 쓸 거다. 악플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