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사람과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다. 그리고 말했다. “앞으로 인간을 지배할 생각인데 이게 그 시작이 될 거 같다”라고. 당황한 사람들에게 농담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Sophia)’가 미국 NBC 방송의 인기 토크쇼인 ‘투나잇쇼’에 출연해 벌인 일이다. 홍콩에 본사를 둔 핸슨 로보틱스가 2015년 내놓은 소피아는 2016년 대중 앞에 공개된 뒤 미디어로부터 수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각종 TV쇼는 물론이고 유엔 행사에 초빙돼 발언하기도 한다. 인간처럼 표정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 미국 NBC 방송의 인기 토크쇼 ‘투나잇쇼’에 출연한 로봇 소피아 <출처: 투나잇쇼 유튜브>

 

인간과 상호작용을 위한 기술

소피아는 인간과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설계됐다. 소피아를 제작한 핸슨 로보틱스의 데이비드 핸슨 CEO는 소피아가 의료, 고객 서비스, 교육 분야 등에 적합할 거라고 말한다. 양로원 노인의 동반자가 돼주고, 대규모 행사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로봇의 모습을 그렸다. 로봇에게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역할을 부여한 셈이다. 소피아는 인간과 교감을 위해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만들어졌다. 휴머노이드(Humanoid)는 사람을 의미하는 ‘Human’과 ‘~와 같은 것’을 뜻하는 접두사 ‘oid’의 합성어로, 인간과 유사한 신체 구조를 갖춘 로봇을 뜻한다.

특히, 소피아는 얼굴에 많은 기술력을 투자했다. 핸슨 로보틱스는 로봇이 사람들과 친숙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소피아에게 사람들의 표정을 본 떠 입혔다.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표정을 읽으며 소통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소피아의 얼굴은 배우 오드리 헵번을 모델로 삼았으며 얼굴로 60여 개의 감정을 표현하며 대화할 수 있다. 사람 피부와 유사한 질감의 플러버(frubber) 소재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눈을 깜빡이고 눈썹을 찌푸리는 등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또 눈에는 3D 센서가 부착돼 사람을 인식하고 눈을 맞추고 고개를 움직이기도 한다. 머리는 가발을 씌우지 않아 회로가 드러나 있는데 개발사 측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기 위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 소피아는 배우 오드리 헵번을 모델로 삼았으며 얼굴로 60여 개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출처: 핸슨 로보틱스 유튜브>

소피아는 얼굴을 통한 교감을 바탕으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음성 인식 기술이 사용됐다. 특정 질문에 대답하고 날씨 같은 사전에 정의된 주제에 대해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 핸슨 로보틱스 측은 소피아와 일상 대화는 즉석에서 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토론은 학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특정 질문이나 문구에 응답하는 챗봇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입력된 음성 정보는 클라우드 네트워크에 공유되며 블록체인 기술로 입력값과 출력값을 분석한다. 2018년 1월에는 걸을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됐다. 소피아의 몸체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휴보팀과 협업해 만들어졌다.

| 가발을 씌우지 않은 이유는 인간과 구분짓기 위해서다.

 

행사장 단골 손님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이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갖가지 표정을 지으며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이 자체로 소피아는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졌다. 소피아는 ‘CBS 60분’, ‘굿모닝 브리튼’, ‘CNBC’, ‘포브스’, ‘매셔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다양한 매체에 출연했다. 또 소피아는 뉴스 매체나 TV쇼에 등장해 인터뷰를 나누는 것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문화적으로 소비됐다. 패션 잡지인 ‘엘르 브라질’에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으며 영화, 뮤직비디오 등에도 출연했다.

2017년 10월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로봇 최초로 시민권을 부여받아 화제가 됐다. 인간과 로봇의 공존에 대한 고민이 영화 밖 현실로 나온 순간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시민권의 세부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단지 행사 홍보를 위한 쇼라는 지적이다. 소피아에 대한 시민권 부여 소식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국제 투자 회의 ‘미래투자 이니셔티브(Future Investment Initiative)’에서 발표됐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인권보다 여성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로봇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행사장에 등장한 소피아의 모습은 기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복장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은 외출시 남성 보호자를 동반해야 할 정도로 인권이 취약하다. 결국, 이 행사는 로봇의 권리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이라기보다 투자 유발 목적의 홍보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 FII 행사에 참석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가 대담을 하고 있다. <출처: Arab news 유튜브>

이밖에도 소피아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 패널로 등장해 발언하기도 했다. 2017년 10월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ECOSOC 정기 회의에 참석한 소피아는 아미나 모헤메드 유엔 사무부총장의 질문에 거침없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날 소피아의 발언은 2017년 한 해 동안 유엔 무대에서 있었던 연설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에 게시된 소피아의 유엔 발언 영상은 현재 220만회의 조회수를 넘겼다. 2018년 1월에는 한국을 방문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소피아는 미디어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로봇계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일정한 권위를 획득했다.

 

과장된 인공지능 대화 능력

소피아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로 대하는 미디어의 관습적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소피아의 인공지능 대화 능력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페이스북의 AI 연구 수장 얀 르쿤 뉴욕대학교 교수는 소피아의 능력을 과대 포장 하는 미디어를 향해 “완전히 헛소리”라며 “사기에 연루됐다”라고 일갈했다. 또 페이스북을 통해 “소피아는 감정도 의견도 없으며 자신이 뭘 말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소피아가 사실은 지적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소피아의 오픈 소스 코드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소피아를 얼굴 달린 챗봇으로 분류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한다.

| 소피아에 가발을 씌운 모습 <출처: 핸슨 로보틱스>

이에 대해 소피아를 제작한 핸슨 로보틱스의 밥 고르첼 수석 연구원은 소피아가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소피아가 인간 수준의 AI를 기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소피아에 대한 과장된 기대가 AI에 대한 낙관주의를 확산시켜 AI 연구와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얘기다. 또 소피아의 대화 대부분이 챗봇에서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X라고 말하면 Y라고 대답하는 단순한 의사 결정 나무에서 나오지만, 표정을 비롯한 로봇의 움직임과 연동돼 기술적으로 의미 있다고 설명한다. 인지와 행동, 대화 등 동적 통합 측면에서는 첨단 기술이 사용됐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소피아는 사람을 인지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이에 걸맞은 표정을 짓도록 알고리즘이 설계됐다.

결론적으로 소피아는 사람처럼 지능을 갖고 대화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 기술을 잘 포장해 마치 지능을 가진 생명체처럼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소피아에 대한 과장된 기대가 제작사 측의 주장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와 환멸의 사이클에 빠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소피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을 때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다가올 AI 로봇 시대에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다.

 

※ 참고자료

이 글은 ‘네이버캐스트→테크놀로지월드→용어로 보는 IT’에도 게재됐습니다. ☞‘네이버캐스트’ 보기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