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UXD] ③“브런치에선 읽고 쓰기만 하세요”

2018.03.19

브런치 하단에는 “당신은 글쓰기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혹자는 볼거리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모바일 시대에, 긴 글은 생명력을 다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커뮤니티나 블로그에서는 글이 좀 길다 싶으면 제목에 ‘스압(스크롤 압박)주의’를 표시하거나 글쓴이 스스로 내용을 ‘세 줄 요약’해 적어두기도 한다.

그러나 카카오는 호흡이 긴 글, 가치 있는 글을 담기 위해 2015년 6월 블로그 서비스 ‘브런치’를 오픈했다. 브런치 필진으로 선정되면 자신의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작가라는 이름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브런치 안에서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외부 출판사에서 브런치를 보고 출간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브런치 작가로 데뷔해 실제 오프라인 책까지 출판한 사례가 적지 않다.

허유진 창작자 플랫폼 디자인 파트 파트장

브런치 팀에서 디자인 리딩을 담당했던 허유진 디자이너(현재 창작자 플랫폼 디자인 파트 파트장)는 “시대가 바뀌어도 글이 가지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긴 글을 안 읽게 된 이유는 ‘글이 가지는 가치가 오롯이 전달되기 어려워서’. 그게 우리가 찾은 이유였다”라고 말했다.

글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오직 읽고 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는 그렇게 탄생했다.

AtoZ, 전천후 디자이너

일반적으로 UI 디자이너는 디바이스 화면 구성을 주로 설계하지만 브런치 팀 디자이너는 모바일, PC의 UX/UI 디자인부터 기획, 서비스 전략 등을 전부 구상했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슬로건도 모든 팀원이 다 붙어서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 맞냐, 곳이냐, 곳보다는 공간이다’라고 토론하며 만들었다”며 “카피도 내가 아이디어낸 것들이 많다. 우리는 모든 과정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해 많은 부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일례로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은 처음 기획단계에서 글 보관함, 글 저장 등의 단순한 이름이 붙었더랬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오프라인에서 작가들이 실제로 원고를 서랍에 넣어 보관한다는 점에 착안해 ‘작가의 서랍’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작가의 감성을 넣고 싶다고 우겼다. 일단 한 번 가보자, 했다. 이 부분이 감성을 울렸다는 작가들이 있더라. 잘돼서 좋았다.”

최근 그는 브런치의 에코백, 파우치, 엽서 등 오프라인 제작물을 만들고 있다. 브런치에 UX디자이너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영역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작가의 글쓰기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은 많았다. 그러나 ‘어디서나’ 쓰기 편한 플랫폼은 찾기 어려웠다. 모바일과 PC 화면은 연결이 되지 않았고 수정이 힘든 경우가 많았다.

브런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작가의 행동패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개 PC로 글을 썼고, 며칠 동안 몇 번의 퇴고 과정을 거쳤고, 글을 완성한 다음에는 PC에서 쓴 글을 모바일로 확인했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처음 UX를 설계할 때 작가의 행동패턴에 방해가 되지 않게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브런치는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동일한 사용경험을 주기 위해 한쪽에서만 가능한 기능들, 예를 들어 앱에선 되고 웹에선 안 되는 기능은 모두 덜어냈다.

브런치 편집 화면.

사소한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아이콘의 모양, 위치, 하단의 추천글 배치 등 브런치에서 무심코 보고 있는 모든 것은 수천 번의 프로토타입을 거쳐 그곳에 자리잡게 된 것들이다. 문장과 문단의 차별화를 위해 여백, 행간의 차이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글에 있어서 호흡이라는 게 문장에서 끝나는 호흡과 문단에서 끝나는 호흡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디자이너는 ‘그런 것까지 고민해?’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를 위한 플랫폼이기 때문에 내가 작가가 돼서 구애 받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들어갔다.”

PC 기준으로 글은 좌측 정렬로 많이 쓰니 좌측에 뒀다. 우측 클릭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이콘은 우측에 배치했다. 글을 쓰고, 꾸미고 싶을 때쯤 오른쪽을 흘끗 보면 아이콘이 있게, 그러나 ‘거슬리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용자가 고민할 만한 선택지도 줄였다. 화면을 꾸미거나 레이아웃을 잡는 일련의 ‘편집’ 과정을 없앤 것이다.

“기존 블로그는 이미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우리는 ‘LESS IS MORE’, 적을수록 좋다. 과하지 않게 기능을 빼고 기존보다 부족해도 선택지를 최소화시켰다. 뭘 골라야 하지? 고민하는 부분을 배제하는 서비스를 설계하게 됐다.”

최근 사용자가 추가해 달라고 요청한 사항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불릿’(목록) 기능을 더했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개발 코드 넣는 창을 달아 달라는 요청이 있다. 팀 내에서도 개발자분들은 넣자고 하지만 나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 철학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브런치에서 긴 글이 잘 읽히는 이유

“모든 면에서 ‘네가 글을 읽으러 들어왔으면 어떻게 행동할래?’라는 질문을 던지고 모든 UI/UX를 고민한다.”

간혹 참 안 읽히는 책들이 있다. 문장의 구성이나 난이도가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서체, 자간 탓에 가독성이 떨어져 도무지 읽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다. 화면이 깨지거나 불쾌한 광고가 뜨거나 심각하게 촌스러운 폰트를 쓰고 있으면 읽고 싶은 주제의 기사라도 몇 단락 버티지 못하고 이전 버튼을 누르게 된다.

브런치는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글씨의 두께, 자간, 평간 등을 무수히 테스트했다. 브런치에서는 끝까지 읽게 되는 긴 글이 많다고 느꼈다면, 브런치의 테스트는 성공한 셈이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주변 디자이너들에게서 ‘왜 같은 폰트를 쓰는데도 브런치는 안 깨져 보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도 모른다. 다만 “한땀 한땀 정리한 과정이 있어서 그런 디테일의 차이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라고 말할 수밖에.

라이킷부터 창작 생태계까지···작가를 위한 고민들

브런치의 라이킷 버튼.

브런치를 설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에 대해 묻자 허유진 디자이너는 ‘라이킷(좋아요)’ 버튼을 꼽았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숫자는 때로는 절대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콘텐츠가 숫자로 비교·평가될 수 있다는 건 자칫 작가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독자가 댓글 외에 할 수 있는 피드백도 필요했다.

그래서 브런치는 숫자가 작가의 ‘레벨’로 평가되지 않도록, 라이킷 숫자를 작가만 볼 수 있게 했다. 저작물에 대한 평가는 작가의 몫으로 남긴 셈이다. 라이킷을 누른 글은 따로 볼 수 있게 해 독자 편의도 높였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아이콘 모양도 하트와 (보관을 뜻하는) 클립의 중간 형태로 만들었다. (이해가)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이다”라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응원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처럼 브런치는 그 동안 좋은 글의 가치를 설계하고 고민해왔다. 올해는 한 발 더 나아가 가치 있는 글에 맞는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브런치의 목표다. 허유진 디자이너는 “작가, 독자의 행동패턴을 UX로 연결한 것처럼 작가와 기회를 연결해주는 게 올해의 계획”이라며 “좋은 기회와의 연결을 통해 좋은 글의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브런치 디자인이 미려하다고 한다. 우리는 디테일을 많이 고민했지만, 기본(틀)을 만든 거다. 브런치의 미려함을 완성시켜준 건 고민 끝에 써 내려간 좋은 글들이다. 인터뷰할 때 작가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응원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꼭 써 달라.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어도, 말을 잘 못하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