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패러다임 바꿨지만 아쉬움도 남아”

장애인차별금지법 법제정위원장 박종운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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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안전하다.’ 약한 고리의 법칙이다. 다른 고리가 아무리 단단해도 약한 고리가 풀리면 사슬은 끊어진다. 사슬이 우리 사회 복지 시스템을 뜻한다면, 가장 약한 고리는 어디일까. 아마 장애인 복지일 것이다. 국민이 다 함께 즐긴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방송조차 수어(수화) 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장애인들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참고기사) 여전히 시·청각장애인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 힘들다. 고속·시외버스에는 단 한 대의 저상버스도 없어 신체장애인은 자유롭게 관광을 떠날 수 없다. 그동안 ‘장애’는 개인의 문제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 장애인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고리가 약해지기만 한 건 아니다. 장애인도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며 사회 구성원이라고 선언한 이정표가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나라 최초 차별금지법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그것이다. 사슬의 약한 고리를 단단하게 연마시키려는 사람들의 존재 덕분이다. 변호사법 제1조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를 소명으로 생각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법제정위원장 박종운 변호사가 그중 한 명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백서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전(2007년 이전) 주요 차별 사례

– 시각장애인임을 알면서 직원 채용 면접시 유인물을 읽어보라는 면접관
– 수화 통역자가 없어 성폭력 당한 청각장애여성이 간통죄로 몰리는 일
– 장애를 이유로 학교에는 아예 보내지 않는 부모와 형제

2000년대 초반은 사람들이 ‘인권’ 개념을 잘 알지 못하던 시기였다. 특히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고, 장애인은 ‘시혜’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어느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는지 기준이 없어서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도 미비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 연도별 장애 차별 진정사건 접수는 월평균 8건에 불과했다.

자료=국가인권위원회, 2018년 장차법 토론회 자료집 부록

박종운 변호사는 자신도 당시 사회 분위기처럼 처음부터 장애인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다고 했다. “거리에 나가봐도 장애인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지 못하니까 장애인 차별 문제가 실제로 있나 싶었다”며 자신은 원래 난민,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후배가 찾아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건 장애인 문제”라며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위해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이게 전환점이 됐다. 그 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연대가 출범하고 총 36번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2007년 대통령의 서명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연대 출범, 5년의 세월, 총 36번의 공청회와 토론회, 2007년 대통령 서명”

이 시간을 박 변호사는 진정한 의미의 연대운동의 결실을 보기 위한 값진 시간으로 평가했다. 그는 “분산돼 있던 범장애계 단체들이 일단 모여 힘을 합친 것도 중요했지만, 정부 부처 간 혼란이 있을 때 구심점 역할을 하며 법안 제정을 추진한 정부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을 공약사항으로 내걸었고, 2007년 4월4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서명했다. (출처=노무현사료관)

내용 면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 장애인법(ADA)에는 장애인에게 ‘합리적인'(reasonable)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장애인, 장애인단체들에서 장애인 보호라는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이라는 단어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3항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로 반영됐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야말로 수요자(당사자) 중심의 법 제정이 이뤄진 최초의 법”이라는 박 변호사의 말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스스로 법안에 담아 입법화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법을 들여다볼 때마다 아쉬움도 남는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할 당시 “시각⋅청각장애인의 문제밖에 신경 쓰지 못했다”라며 “앞으로는 장애인 전체를 위한 법안으로 완성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시혜 대상에서 인간의 권리가 있는 존재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고 했지만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사회적 감시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현실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유용한 인권 옹호, 보장 무기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정 작업도 계속 이어가야 하고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1기 특조위)에도 참여한 박 변호사에게 4월은 이것저것 챙길게 많은 1년 중 가장 바쁜 달이다.

박종운 변호사에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18년에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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