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버, “화폐 기능 수행하는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

[한수연의 블록체인, 이 사람] ② 비트코인 '예수'에서 '적그리스도'가 된 사람, 로저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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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의 블록체인, 이 사람] ② 비트코인 ‘예수’에서 ‘적그리스도’가 된 사람, 로저 버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묘(妙)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블록체인은 사람들의 참여를 엔진 삼아 작동합니다. 인간 개입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술 발달사에서 튀는 녀석이죠. 자동화 기술이 인간을 생산 프로세스 밖으로 밀어내고 인공지능(AI)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블랙박스 영역을 넓혀갈 때, 블록체인은 사람을 끌어안습니다. [한수연의 블록체인, 이 사람] 시리즈는 블록체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바로 그 요소, ‘사람’에 집중합니다. 블록체인 씬(scene)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기록하겠습니다.

한때 ‘비트코인 예수’, 지금은 ‘비트코인 적그리스도’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 이야기다.

로저 버는 비트코인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으로 1BTC가 1달러 안팎이던 2011년 막대한 돈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그리고 같은 해, 자신이 운영하던 메모리딜러스에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했다.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에 교육적 배경을 갖고 있어 비트코인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그는 비트코인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열정적으로 앞장섰고 비트코인 예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수에서 적그리스도가 된 것은 로저 버가 비트코인캐시(BCH)를 지지하면서다. 2017년 8월1일,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하드포크로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이때 새로 생긴 암호화폐가 비트코인캐시다. 로저 버는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이라고 말하며 비트코인코어(BTC) 진영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배신자 유다, 적그리스도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4월 첫째 주, 제1회 분산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로저 버를 만났다. 그는 명함 대신 비트코인닷컴 스티커를 건네며 “비트코인캐시와 비트코인코어를 둘 다 써보라.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4월3일 '분산경제포럼 2018'이 열린 워커힐 호텔에서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를 만났다.

4월3일 ‘분산경제포럼 2018’이 열린 워커힐 호텔에서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를 만났다.

로저 버에게 비트코인의 주요 가치는 ‘교환의 매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화폐에는 ▲교환의 매개 ▲가치의 저장 ▲가치의 척도 등 3가지 주요 기능이 있는데, 이 중 교환의 매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로 ‘가치의 저장’을 내세우는 비트코인코어 진영과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는 주장이다.

로저 버는 비트코인캐시의 효용성을 직접 보여주겠다며 내 컴퓨터에 비트코인닷컴 지갑을 설치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갑에서 1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캐시를 전송했다. 지갑 설치부터 전송까지 약 5분이 걸렸다. 로저 버는 “100달러 보내는데 수수료는 1페니 정도”라며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트코인코어였다면 수수료로 16센트 정도 나왔고 거래가 처리되는 데 최소 10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지갑으로 전송했던 비트코인캐시를 다시 자신의 지갑으로 재전송한 그는 전송 내역을 보여주며 비트코인캐시로 빠르고 쉽게, 그리고 수수료는 거의 물지 않고 거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비트코인캐시가 실생활에서 소액결제에 어떻게 쓰이느냐고 묻자 블로그 사이트인 ‘유어스닷오아르지’를 소개했다. 유어스닷오아르지 사이트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쓴 저자에게 비트코인캐시로 소액 후원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로저 버는 “비트코인코어는 수수료가 너무 높아서 비트코인캐시로만 후원할 수 있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교환의 매개 기능만 보면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코어보다 효용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그림은 좀 더 복잡하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지적은 비트코인캐시가 과연 ‘탈중앙화’의 가치를 지니고 있냐는 것이다. 비트코인코어 개발자들은 비트코인캐시가 소수 채굴자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탈중앙화를 왜곡한 블록체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로저 버는 “그들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못 박았다.

“비트코인캐시는 다수의 개발팀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 세계 수천개 회사, 수만명의 사용자가 비트코인캐시를 사용한다. 그 누구도 비트코인코어를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비트코인캐시 역시 누군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탈중앙화는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돈에 대한 검열에 저항하기 위한 도구다. 때문에 무한대의 탈중앙화가 필요한 게 아니다. 검열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의 탈중앙화면 충분하다.”

로저 버는 이어 다시금 ‘교환의 매개’ 기능을 강조하며 “비트코인코어 지지자들과 토론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들은 비트코인코어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 그들은 비트코인코어를 돈처럼 쓰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로저 버는 또 올해 안에 비트코인캐시의 시가총액이 비트코인코어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만약 내년까지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엄청 놀랄 것”이라면서 자신의 예측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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