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덕에 시각장애 딛고 변호사 됐어요”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 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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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하나로 세상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쉽사리 체감하기 힘들다. 법을 통해 혜택을 받거나 불법행위로 형벌을 받지 않으면 일일이 법이 시행되고 있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후 10년, 이 법으로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탄생했다. ‘국내 최초’ 차별금지법이 또다른 ‘국내 최초’를 만들어 냈다. 가산점이 주어지거나 시험을 볼 때 특별한 혜택이 주어져서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기회에서 시험 볼 환경이 주어졌을 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서 다니던 로스쿨에 이것저것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어요.”

김재왕 변호사. 그는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로 꼽힌다.

시각장애인이 모두 점자를 잘 읽을 것 같지만, 김 변호사는 점자를 잘 읽지 못했다. 그가 대학원을 다니던 중 중도 실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쿨 진학에 필수인 ‘법학적성시험’에 감히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점자 시험지, 확대 시험지만 제공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로는 응시할 수 없었다. 법학적성시험 안내 홈페이지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김 변호사에게 필요했던건 ‘스크린리더’다. 스크린 리더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들려주는 특수 목적 프로그램이다.

“따지고 보면 저라는 사람은 바뀐 게 없는데, 시험 제도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느냐에 따라서 제가 변호사가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하기도 하고.”

결국 제 1회 법학적성시험에서는 점자 시험지, 확대 시험지 외에 스크린리더도 함께 제공됐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가 이 법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김 변호사는 개인 사연 말고도 장애인 차별 소송에서 입증책임이 가해자에게 있는 조항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소송에서 핵심은 위반사실을 누가 입증하는지 이다. 형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민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원고, 즉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누가 증명해야 할까? 차별받은 장애인이 아니라 차별행위를 했다고 여겨지는 상대방이다. 법리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법원에서는 가해자에게 “그정도면 해줄 수 있는거 아니냐?”로 나온다고 한다. 입증책임이 거꾸로 되어 있었다면 장애인이 차별 소송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김 변호사는 밝혔다.

“정책 수립 단계부터 장애인을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장애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사회에 당당히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책 수립 단계에서 부터 장애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장애를 고려한다는건 모든 사람을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장애인을 위한 정책 시행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까 걱정된다고 한다. 비용에 비해 수혜자 숫자가 적지 않냐는 논리에서다. 법학적성시험을 응시하는 장애인 숫자도 한 해 15명 정도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권리는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조금 더 나은 기회를 달라는 게 아니다. “정책 초기부터 점검사항으로 모든 사람을 고려하는게 추가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는 김 변호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김재왕 변호사는 현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장애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작업에 장애계의 목소리를 담는 것도 주된 업무다. 변호사가 되자마자 이 단체를 만든 그는 계속해서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할 예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김 변호사에게 법조계로 가는 ‘경사로’가 됐듯이, 그가 만드는 길이 다른 장애인에게 새로운 ‘경사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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