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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주유도 결제도 신경쓰지 마, 스마트 주유소니까”

2018.06.29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아마존의 무인 매장 ‘아마존 고‘에는 기다리는 줄도, 계산대도 없다. 아마존 고 앱을 실행시키고 물건을 골라 들고 나가면 아마존 계정으로 금액이 청구된다. 아마존 고를 닮은 주유소가 있다면 어떨까?

차량에 ‘카 아이디’를 설치한 차량이 주유소로 진입하면 미리 설정된 주유비가 자동 결제되고, 주유원은 결제금액만큼 기름을 넣어준다. 운전자가 창문을 굳이 내리지 않아도 주유와 결제가 가능하다. 국내 정유업체 GS칼텍스가 커넥티드카 커머스 스타트업 오윈과 손잡고 지난해부터 정식 서비스 중인 스마트 주유소의 모습이다.

스타벅스에서만 ‘사이렌 오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주요 정유업체들은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 다양한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서는 한편 주유소에 ICT를 접목,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꾀하고 있다.

그중 GS칼텍스는 지난 2016년 8월 혁신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직보 조직 ‘위디아(We+Dea, We와 Idea를 합쳐 만든 조어)’팀을 신설했다. 이후 다양한 스타트업과 손잡으며 발 빠르게 4차 산업혁명 키워드에 적응하고 있다. GS칼텍스의 행보가 정유업계를 비롯해 IT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다.

경유지와 목적지 사이, ICT 주유소

“주유소에 머무르게 하려고 애썼지만 안 되더라. 아픈 얘기지만 사람들이 주유소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주유소가 사람들이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공간이라면, 주유라는 숙제를 빨리 해치우게 해 주거나 여기서 다른 것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디아팀은 GS칼텍스 주유소를 커넥티드카, 카 셰어링, 자율주행차, 전기차로 대표되는 모빌리티 산업의 허브 역할로 개편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두고 있다. GS칼텍스 위디아팀을 이끌고 있는 김남중 팀장은 “주유소는 정유업계가 소비자와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접점”이라며 주유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GS칼텍스 삼성로 셀프 주유소는 현재 커넥티드 카 커머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GS칼텍스는 전국 2500여개 주유소를 보유하고 있다. 수도 많지만 위치상 대부분 통행량이 많은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세대 물류 및 모빌리티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사람들이 모여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모색할 수 있을 터였다.

먼저 위디아팀은 주유소를 두고 두 가지 실험을 하기로 했다. 들렀다 가야 하는 경유지로 기능할 경우 할 일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처리하도록 하고, 소비자의 니즈와 주유소를 결합해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가 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위디아팀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접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앞서 소개한 주유비 자동결제는 대표적인 경유지 실험 사례다. GS칼텍스는 최근 소비자의 비대면결제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반영해 커넥티드카 커머스 결제 솔루션 스타트업 오윈에 지분투자를 하고 ‘커넥티드 카 커머스’ 서비스를 런칭했다.

(유류 및 금액을 설정해두면 주유소에 도착해 바로 주유할 수 있다. 영상=커넥티드 카 커머스 소개 영상)

오윈이 만든 ‘카 아이디(ID)’를 시거잭에 꽂으면 차가 곧 결제수단이 된다. 카 아이디는 블루투스로 최대 150m까지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하다. GS칼텍스 주유소에 한정된 결제수단이 아니라, 제휴를 맺은 업체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앱으로 커피, 꽃, 음식 등을 미리 주문하면 차량 동선 내에 위치한 제휴업체들이 카 아이디의 신호를 받고 공유해 차량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다. 매장 도착 시간에 맞춰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 기능을 이용하게 되는 셈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성남의 GS칼텍스 직영 주유소 및 외식, 음료 매장, 꽃집 등 100여곳 점포에서 커넥티드 카 커머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유소는 다른 시장에 비해 결제 수단이 낙후되어 있다. 자동 결제를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위치 측정이 필요하다. 가령 차량이 7번 주유기 옆에 있는지 8번 주유기 옆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GPS로는 그 정도 차이를 인지하기 어렵다. GS칼텍스 주유소는 오윈 기술을 활용하여 마이크로 센싱을 통해 어느 주유기에서나 소비자의 관여 없이 자동결제가 가능하다.”

김 팀장은 “맥도날드의 ‘드라이브 스루’가 기존 매장 대비 40%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이 방식으로 모든 매장을 드라이브 스루화할 수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타사에서도 우리의 결제방식을 쓸 수 있다. 오윈의 기술을 독점사용하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판을 키우기 위해 멀리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향후 자동차 수리견적 비교 O2O 스타트업 카닥과 함께 중정비, 자동 세차, 주유는 물론 카페와 편의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주유소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가을 제휴를 맺은 엔쓰리엔(N3N)의 빅데이터 분석력을 빌려 주유하는 운전자, 세차하는 운전자 등의 동선은 효율화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또 GS칼텍스는 추후 자율주행 실험 테스트에 카 셰어링 업체들이 활용될 상황을 고려해 카 셰어링 업체 그린카와 제휴를 맺고 그린카 주차면을 GS칼텍스 주유소에 배치하는 등 모빌리티 시장을 둘러싼 변화의 풍랑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먼저 떠올리는 기업이 되는 게 목표”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비유로 들자 ‘직접 커피를 사면 되는데 왜 사이렌 오더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스타트업 특성상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 기존 구성원을 설득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기업의 역사와 혁신의 속도는 반비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특히 보수적인 정유기업이 스타트업 DNA를 받아들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GS칼텍스의 위디아팀이 정유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다.

위디아팀은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소수정예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스타트업과 닮은꼴이다.

김 팀장은 “1년 반 동안 스타트업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더니 GS칼텍스가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주시한다고 입소문이 났다”면서 “지금은 타사에서 스타트업을 찾아오면 꼭 ‘위디아팀 다녀갔어요?’하고 묻는다더라”고 말했다.

“우리도 이런 일을 처음 하다보니 고생이 많았다. 좌충우돌하면서 바닥부터 훑었고 모빌리티 스타트업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전부 훑고 나니 협업, 제휴, 지분투자할 곳을 보는 눈이 생겼다.”

위디아팀은 CEO 직보조직으로 대폭 줄어든 보고라인 덕분에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이 가능하다. 김 팀장은 “스타트업은 시간이 생명”이라며 “스타트업과 일할 때 우리가 이 사업을 같이 키우려는 자세가 돼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GS칼텍스 본사가 있는 GS타워에서 스타트업이 모인 강남 코워킹 공간 ’드림플러스’로 둥지를 옮겼다.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판을 벌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위디아팀의 바람은 한 가지. 내년부터는 스타트업에게서 ‘콜드콜’을 받는 것이다.

GS칼텍스 삼성로 주유소. 자동결제가 가능한 주유기 앞에 선 위디아팀 김남중 팀장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인지 묻자 김 팀장은 “업계에서 무언가 화두가 되면 곧 다 따라하게 돼 있다. 우리는 독점하기보다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스타트업이 모빌리티나 주유소와 관련해 뭔가 도전하고 싶으면 GS칼텍스를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생태계를 우리가 선도할 테니 함께하고 싶은 스타트업이 있다면 같이 해보자’, 이게 우리의 모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