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소셜 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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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교수를 지냈던 엘팅 E. 모리슨은 그의 역저 <인간, 기계, 그리고 현대 사회>(Men, Machines, and Modern Times)에서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지만 그 기계에 의해서 또 다른 제한된 현실을 갖게 됨’을 지적했다. 동시에 그는 책의 결론부에서, 그 제한된 현실을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기계적 현실을 포괄할 수 있는 ‘문화의 중요성’을 말했다. 즉, 과거 시대의 문화 유산만으로는 급격한 물질 문명의 발전 가능성과 한계를 포괄하기 어려우므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관점, 시각, 사고의 틀을 가지고 변화하는 과학, 기술 문명이 인간, 사회와 어떻게 조우하는 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 고전이 MIT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1966년이었다.

그리고 42년이 지났다.

2008년.

옥스포드에서 법학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하버드 로스쿨로 자리를 옮겨 인터넷과 사회를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인 버크만 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and Society)를 창설한 조나단 지트레인이 <인터넷의 미래, 어떻게 그리고 그 것을 멈출 수 있는 가>(The Future of the Internet and How to Stop It)라는 책을 출판했다.

1969년생으로 법학계의 기린아에서 이제는 중진이 된 그가 주장한 바는, 아이폰의 출시는 네트워크의 사회적 발전에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수십 년 전 생애 처음 양복을 입고 ‘애플2′(Apple II)를 발표하던 21세의 스티븐 잡스가 만들어낸 PC, 그리고 그 후 IT계의 불세출의 경영자 빌 게이츠가 유틸리티화시킨 PC 생태계의 ‘창조성'(generativity)을 ‘제한’시키는 것이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잡스 시리즈라는 것이다.

그 논거는 무엇인가. 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나단 지트레인이 말하는 PC 기반 생태계의 ‘창조성'(generativity)를 이해해야 한다. 지트레인이 말하는 창조성이란, PC를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네트워크,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소위 ‘인터넷’이라고 하는 것이 그 것을 디자인한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그리고 광범위한 영향력, 활용도를 가지고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첫째, 인터넷이 ‘오픈 시스템'(open system)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보다 근본적으로 그 것을 유지하는 ‘PC’라는 기반(end-point)이 역시 ‘일반적 목적'(general-purpose)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오픈 시스템이라는 것은 내가 인터넷에서 무언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허락'(permission)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것은 기업, 창작, 공유 활동이 오프라인 공간과 비교해 상당한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둘 째로 이 기반인 PC가 일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계산기, 타자기 등과는 다르게 PC는 특정한 어느 한 목적을 위해서 디자인된 기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PC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되어 있고 그 위에 자유롭게 새로운 코드(code), 혹은 PC의 DNA를 주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능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기능과 역량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것이 바로 지난 역사였다.

그에 반해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잡스 시리즈’는 지트레인의 눈에 보기에 어떠한 ‘변화’인가?

단기적으로 보기에는, 물론 이 것은 컴퓨팅의 대중화, IT의 인프라화라는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큰 혜택이 있다. 스펙 차원에서 보면 넷북과 엇비슷한 데, 가격은 수 배를 받는 아이패드에 대해서 전문가나 소위 컴퓨터광(geek)들은 외면할 지 몰라도, 일반에 큰 호응을 얻는 이유는 이 것이 놀랍도록 편리한 이용자 환경(UI)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한 이용자 환경의 창조, 활용은 사실 맥킨토시가 등장했을 때부터 잡스가 가지고 있었던 주특기였고,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기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가 그치고, 그 위에 새로운 DNA를 주입하는 코딩이 제한되고, 앱스토어라는 한정된 생태계 내에서만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그 것도 언제든지 제조사에 의해서 금지, 폐쇄 당할 수 있는 시스템은 PC에 기반한 인터넷 체제에 의해 유지, 발전했던 ‘창조성’을 소외, 축소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근거없는 노파심이 아니다. 최근 라라닷컴 인수 후 최근 국내 음악 관련 앱스를 자사의 앱 스토어에서 추방시킨 애플의 행보에서도 그 조짐을 짐작해볼 수가 있지 않은가.

이 같은 ‘이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은 굳이 IT 업계에 제한된 것이 아닌, 산업계 전반에 적용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나가아 지금의 IT는 새로운 사회적 인프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용자 혁신의 축소가 사회 전체에 미칠 파급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먼저 ‘이용자 혁신’이라는 개념과 그 영향력을 좀 더 넓은 틀에서 생각해보자.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에릭 본 히펠은 그의 2005년 문제작 <혁신의 민주화>(Democratizing Innovation)에서 혁신의 주인공은 정부, 기업의 연구개발센터가 아니라 이용자들 그 자신이라고 했다. 팔기 위해 하는 혁신(innovation to sell)이 아니라 쓰기 위해 하는 혁신(innovation to use)이 훨씬 더 실제적 필요에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잠재적 시장 창출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예로 든 것 중에 하나가 산악자전거(MTB)다. 어느 자전거 제조업체가 이용자가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올라갈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 있었고, 많았고, 해냈다. 그들이 해낸 결과물이 호응을 크게 얻자, 결국은 그 것이 상품화된 것이다.

책에서 보면, 이 같은 주도적 이용자들(lead users)이, 생태계를 만들어낸 제품과 서비스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실질적으로 지속적인 혁신을 창출한 사례는 몇몇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통계에서 조망하여 보아도, 지난 산업의 발전에서 주요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자유로운, 그리고 광범위한 플랫폼과 생태계가 ‘PC에 기반한 인터넷’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스타벅스에서 소셜 웹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것은 이름없이, 얼굴도 없이 그 플랫폼을 성장시켜 준 ‘이용자’라는 존재들이였다. 그들이 스타벅스를 단순한 커피숍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만들었고, 그들이 인터넷을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창조와 혁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대가, 특정한 이유 없이 참여했고, 공유했고, 그리고 함께 오늘날 우리가 서로를 ‘연결’하고 그 ‘연결’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생태계를 창조해놓은 것이다. 바로 그들이 거기에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이 그와 같은 활동을 만들 수 있었던 제도적 기반, 기술적 기반, 그리고 문화적 기반이 있었기에 오늘의 현실이 있는 것이다.

컴퓨팅이 ‘소유’에서 ‘연결’로 변화하는 시대, 우리는 그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시대가 만들어내는 소위 ‘웹 2.0 시대’, 모바일 혁명에 감격하고 있다. 하지만 새 시대의 탄생과 성장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극복’할 뿐 아니라 동시에 무언가를 ‘제한’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것이 우리에게 신선한 공기와 같이 평소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 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아쉬워 할, 아주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운명은 오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 이용자 혁신에 대한 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잡아먹는 ‘토사구팽’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홍대 거리를 만든 디자이너와 음악인들이 홍대거리가 ‘상업화’되면서 뒷골목으로 밀려나 듯이, 트위터를 키운 개발자들이 이용자 혁신을 기반으로 성장한 트위터가 그것을 ‘상업화’시키면서 다시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야 하 듯이 말이다. PC가 발전하고 인터넷이 성장하고,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넘어서 이제 월드 와이드 컴퓨팅(World Wide Computing)의 시대가 오자, 우리도 모르는 사이 ‘네트워크 창조성 죽이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기반한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모델에서 고민을 한다. 하나는 조지 오웰의 <1984>이다. 여기서는 모든 인간이 빅 브라더에 의한 ‘정보통제’를 당한다. 다른 하나는 올더스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Brave New World>다. 여기는 정보 통제가 없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체 이 정보가 필요한 지에 대한 감각 조차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헉슬리의 비전을 이어 받아 미디어에 대한 비평을 쓴 미국의 문화 비평가 닐 포스트만의 말을 빌리자면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결국은 민주사회에 대한 의지를 가진 민주주의자들, 시민들에게 달려 있고 경제발전이 결국은 기업가 정신을 향유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몫이 듯, 네트워크에 기반한 사회의 미래는 이용자 창조성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의 제도적(지적재산권 등의 법적 문제), 기술적(모바일, 태블릿 등의 창조성 문제), 문화적 환경(오픈컬쳐의 성숙, 확산 문제)의 가치와 필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된다.

스마트폰이, 태블릿이, 아니 그 무엇이 문제가 아니다. 기술은 언제나 가치중립적이다. 과학의 진보는 그 자체가 도덕은 아니다. 우리는 끓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며, 이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와 동시에 위기를 창조하고 있는 지를.

그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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