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동상이몽] 👨‍💻’결정적 순간’을 위한 입문서, ‘라이카CL’

2018.07.16

“결정적 순간.”

취미란의 공백을 채워준 건 사진이었다. 100장 찍어 얻어걸린 1장의 사진이 카메라를 손에 쥐게 했다. 하지만 99장의 영혼 없는 셔터질이 사진에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반복되는 구도와 정지된 화상의 무기력함에 염증을 느꼈다. 카메라가 장롱 속으로 입관하기 직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만났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사진가는 대상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하고 가로채는 데 능했다. 기다림 끝에 원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재미를 브레송의 사진을 통해 배웠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라이카 카메라를 고집했다. 라이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라이카CL’

관심은 관심에만 머물렀다. 어마무시한 가격 탓이다. 당시 크롭바디 DSLR을 쓰던 내게 라이카는 박제된 전시품에 가까웠다. 가격 장벽이 예술가를 위한 카메라라는 라이카 브랜드를 유지해줬지만, 대중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간극을 SLR 카메라들이 메웠고 RF 방식의 라이카는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남았다. ‘라이카CL’은 라이카 브랜드와 대중성 사이의 타협점이다. RF 방식의 이점인 컴팩트한 휴대성을 미러리스 방식으로 이어가면서 가격 부담은 낮췄다. 물론 여전히 ‘가성비’ 같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격이지만, 라이카 브랜드 안에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제품임은 틀림없다.

 

라이카를 라이카답게

라이카CL은 라이카다운 모양새를 갖췄다. 라이카CL은 APS-C 포맷(크롭) 미러리스 카메라다. 제품군으로 따지면 풀프레임 미러리스인 ‘라이카SL’과 크롭 미러리스 ‘라이카TL’ 사이에 껴있다. 같은 크롭 미러리스인 TL이 알루미늄 유니바디로 설계돼 기존 라이카와 다른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면, CL은 기존 라이카의 디자인 전통을 계승한다. 상단과 하단에는 알루미늄을 쓰고 그 사이를 마그네슘으로 채워 넣었다. 여기에 검은 가죽을 덧댔다. 라이카다운 모노톤의 블랙으로 마감된 타원형 원통 디자인이 ‘라이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라이카가 지향하는 가치 중 하나는 컴팩트함이다. 라이카를 처음 만든 오스카 바르낙은 지병인 천식 때문에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없었고 세계 최초로 소형 판형 카메라를 개발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라이카를 썼던 이유도 기본적으로 높은 휴대성에 있다. 거리에서 ‘스냅샷’을 찍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라이카는 레인지 파인더(RF) 방식의 카메라로 유명하다. RF 카메라는 거울을 통해 피사체를 확인하는 SLR 카메라와 다르게 파인더와 거리계를 연동시켜 초점을 잡는다. 구조상 카메라와 렌즈의 크기가 SLR보다 작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이러한 특성을 이어간다. 요컨대 라이카CL은 미러리스라는 현재의 기술에 과거부터 이어져 온 라이카 디자인과 가치를 입힌 제품이다. 라이카CL이 오스카 바르낙의 유산을 표방하는 이유다.

 

미러리스와 아날로그 사이의 손맛

카메라는 흔히 손맛이라고 한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버튼을 착착 돌려 원하는 장면을 가로채는 조작감이 카메라를 손에 쥐게 만든다. 미러리스는 기본적으로 카메라 후면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보고 촬영을 하도록 돼 있고 버튼 배열도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돼 있다. 그래서 조작감이 아쉽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크롭 미러리스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짙다. 반면, 라이카CL은 버튼을 최소화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손맛을 살려뒀다. 라이카 내의 다른 크롭 미러리스인 TL 시리즈는 뷰파인더가 따로 내장돼 있지 않지만, CL은 전자식 뷰파인더(EVF)를 내장했다. 특이하게 뷰파인더가 왼쪽 끝에 치우쳐 있어 RF 카메라를 연상시킨다.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뷰파인더는 필수가 아닌 보조 장치다. 구조상 뷰파인더가 필요한 DSLR이나 RF 카메라와 달리 햇빛 등으로 후면 디스플레이를 보기 힘들 경우에 쓰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CL은 자꾸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게끔 한다. 처음엔 뷰파인더 성능이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느꼈는데 내가 쓰는 소니 ‘a7R2’와 비슷한 사양을 갖춘 탓이었다. 236만 해상도의 뷰파인더는 전자식이지만 큰 이질감 없이 세상을 비춘다. 라이카는 디지털에 약하다는 편견을 버리게 된 순간이다. 또 상단의 다이얼도 뷰파인더를 자꾸 들여다보도록 조작감을 뒷받침한다.

처음엔 아무런 기능 표기도 돼 있지 않은 다이얼 버튼이 당황스러웠다. A, S, M, P 촬영모드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상단의 두 다이얼은 촬영 모드에 따라 달라진다. 조리개 우선 모드일 경우 오른쪽이 조리개값, 왼쪽이 노출 보정 제어 역할을 한다. 셔터 우선 모드일 경우 왼쪽이 셔터 속도, 오른쪽이 노출 보정을 조정한다. 다이얼 가운데 있는 버튼은 기본적으로 왼쪽이 촬영 모드, 오른쪽이 ISO를 선택하는 기능키 역할을 하지만 설정을 통해 기능을 바꿀 수 있다. 처음엔 헷갈리지만 익숙해지면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해진다. 제품 상단에 촬영 모드, 조리개, 셔터 속도, ISO 및 노출 보정 정보를 보여주는 흑백 LCD도 손맛을 올려주는 요소 중 하나다.

 

결정적 순간의 순간들

라이카CL은 렌즈 교환식 카메라다. 입맛에 맞는 렌즈를 물려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CL의 컴팩트함은 단렌즈와 결합했을 때 빛을 발한다. 내가 선택한 렌즈는 서미크론 23mm(Summicron-TL 23 f/2 ASPH) 단렌즈다. 환산 화각 35mm, 예로부터 전설적인 르포르타주 작가들이 즐겨 썼다는 화각이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로버트 카파의 말을 되새기며 발줌으로 북촌 거리를 돌아다녔다.

해상력은 적당하다. 엄청난 고해상도는 아니지만, 2400만 화소의 이미지 센서에서 기본기 있는 사진 품질을 뽑아낸다. 기본 설정된 색감은 살짝 채도가 낮다. 이른바 물 빠진 색감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진 스타일을 제공해 취향에 따라 설정하면 된다. RAW로 찍고 보정 떡칠을 하는 방법도 있다. 추천하는 사진 스타일 설정은 ‘경조 흑백’이다. 대비가 높은 흑백 사진을 보여주며 흑백 시대의 사진가들을 흉내 낼 수 있는 밑바탕을 제공한다. 흑백 사진이 갖는 아우라를 바탕으로 부족한 사진 실력을 메워준다.

물 빠진 색감

 

라이카는 ‘경조 흑백’이다.

특히, 컴팩트함과 조작성, 적당한 품질의 조화가 거리 사진에 최적화된 성능을 발휘한다. 브레송 등 과거 르포르타주 작가들이 라이카를 즐겨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출되지 않은 거리 사진에서 큰 부피의 카메라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또 크고 무거운 카메라는 휴대성이 떨어져 사진을 찍을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지난해 큰맘 먹고 산 풀프레임 미러리스 ‘a7R2’도 사진을 찍겠다는 큰맘을 먹어야 겨우 들고 나가게 된다.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일정한 품질이 보장돼야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이 점은 라이카CL이 갖는 분명한 장점이다.

라이카CL의 단점은 미러리스의 특성에서 온다. 무엇보다 배터리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 라이카CL은 3시간 반 만에 221장의 사진을 남기고 운명을 다했다. 공식 사양에서도 1200mAh 배터리를 통해 약 220장가량을 찍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엔 아쉬운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가격적 대안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브레송이 라이카를 고집한 이유는 당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카만의 쉽고 빠른 탁월한 촬영 접근성은 포토저널리즘을 열어젖혔다. 지금은 라이카 말고도 컴팩트한 크기에 빠른 오토포커스, 적당한 사진을 뽑아내는 카메라가 많다. 가격도 더 싸다. 그래도 라이카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라이카의 탁월한 만듦새가 궁금하다면, 라이카CL은 라이카 입문서로서 훌륭한 선택지다.

 

장점

  • 라이카 경험을 위한 문턱이 낮음
  • 빨간 딱지에서 오는 위엄
  • 높은 휴대성과 일정하게 보장된 성능

단점

  • ‘결정적 순간’에 꺼질지 모르는 배터리
  • 빨간 딱지가 도둑의 표적지로 작용
  • 다양한 ‘가성비’ 대안 제품

추천 대상

라이카에 관심 있는 풀프레임 DSLR 보유자

[동상이몽] 👩‍💻나의 첫 라이카, ‘라이카CL’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