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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게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2018.07.25

충무공전, 임진록, 거상….

한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한때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 ‘임진록’ 시리즈와 MMORPG ‘거상’ 등이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르의 편중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개발되는 한국 게임 특성상 한국사가 게임에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 탓이다. 하지만 한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늘고, 게임 업체는 새로운 IP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한국사 기반 게임의 가능성이 다시 열리고 있다.

지난 7월23일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2018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가 열렸다. 게임인재단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한국사 강사 최태성 씨와 ‘임진록’ 시리즈를 개발한 김태곤 조이시티 CTO,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해 ‘한국사 대중화와 게임적 상상력의 융합’을 주제로 한국사 소재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했다. 최태성 씨는 “최근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으며 경제가 성숙할 수록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게 새로운 먹거리가 된다”라며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 아닌, 현재와 미래,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조할 수 있는 많은 요소가 들어있으며 역사를 바탕으로 게임 영역도 풍부해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김태곤 조이시티 CTO, 한국사 강사 최태성 씨(왼쪽부터)

 

한국사 게임, 아와 비아의 투쟁

한국사 소재 게임은 한국사가 갖는 특수성, 아(我)와 글로벌 시장이라는 비아(非我)의 관계 속에 발전해왔다. 과거엔 내수시장을 노리고 한국사 게임이 만들어졌다. 20년간 한국사 소재 게임 외길만 걸어온 김태곤 조이시티 CTO는 ‘역사 게임의 역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출발점은 1996년에 출시된 ‘충무공전’이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첫 국산 RTS 게임이다. ‘충무공전’을 시작으로 게임 개발에 첫발을 디딘 김태곤 CTO는 ‘충무공전’에 대해 “역사 게임의 매력을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내수 시장에 중점을 둔 게임이지만 당시 ‘워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독일과 미국, 대만 등에 수출되기도 했다.

‘충무공전’과 ‘임진록’ 시리즈

‘충무공전’은 ‘임진록’ 시리즈로 이어졌다. 1997년 출시된 ‘임진록1’은 2001년 ‘임진록2 플러스 조선의 반격’까지 이어진다. 또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RTS 게임 ‘천년의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태곤 CTO는 “역사 게임에 대한 경험들을 계속 축적해나갔지만, 전쟁 중심의 게임에서 한계를 느꼈다”라며 “조금 더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개발된 게임이 2002년 출시된 온라인 게임 ‘거상’이다. MMORPG 거상은 전투 중심에서 벗어나 게임명처럼 큰 상인이 되는 게 목표인 게임이다. ‘거상’이 경제 시스템을 주제로 한 게임이라면 2004년 출시된 ‘군주’는 정치 체제가 중심인 게임이다. 이용자들이 내각을 구성해 서버 세율과 이벤트를 주도하는 식이다.

경제 시스템에 중점을 둔 MMORPG ‘거상’

하지만 한국사 소재 게임은 해외 진출이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게임이 고도화되면서 개발 시간과 인력, 투자금이 늘어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게임을 개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타임앤테일즈’는 한국 역사 게임을 해외로 진출시키기 위한 고민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동·서양 역사를 넘나드는 옴니버스 시나리오식 MMORPG로 구성됐다. 퀘스트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에 개입하는 식이며, 한국사 에피소드로는 장보고, 일본 역사 에피소드로는 료마, 영국은 아더왕, 중국은 유비, 미국은 제로니모 등이 다뤄졌다. 세계사 속의 일부로 한국사를 다뤄 해외 진출을 모색한 셈이다.

이러한 시도는 2008년 ‘아틀란티카’로 확장된다. MMORPG ‘아틀란티카’는 석굴암을 비롯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 전세계 유명한 유적지, 문화, 인물들을 한 데 담았다. ‘세계사 속의 한국사’에 대한 고민은 일련의 성과를 거뒀다. 일본, 북미, 중국, 유럽, 태국, 러시아 등 전세계 많은 이용자가 ‘아틀란티카’를 즐겼다. 김태곤 CTO는 “한국사를 여러 역사의 일부로, 당당한 역사로 추구해보자는 게 목표였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다룬 MMORPG ‘아틀란티카’

 

IP의 시대, 한국사 게임의 현재와 미래

차기작은 2015년 출시된 모바일 RTS 게임 ‘광개토태왕’이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며 게임의 지속성, e스포츠화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2008년과 2015년의 간극에는 개발비 문제라는 현실이 자리 잡았다. 갈수록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게임 시장에서 역사 게임을 개발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개발비 부담은 커지고, 한국사가 아직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태곤 CTO는 전통적 방법과 새로운 방법 2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먼저, 전통적 방법은 기존에 잘 알려진 임진왜란, 이순신이라는 IP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김태곤 CTO는 이러한 방향으로 ‘임진록’ 시리즈 후속작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차이는 역사 인식에 대한 수준이다. 과거의 내수시장용 게임이 선악과 피아를 명확히 구분해 조선 진영만을 부각했다면, 새롭게 개발되는 ‘임진록’ 시리즈는 2018년의 역사 인식에 맞춰 일본과 명나라 등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대등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다.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상대 역사도 매력적으로 묘사하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다.

새로운 ‘임진록’ 시리즈는 아직 장르가 정해지지 않았다.

일본의 장수도 매력적으로 그려낸 점이 특징이다.

다른 한 방향은 위치에 기반한 증강현실(AR) 콘텐츠다. 역사적 장소를 활용해 역사를 체험한다는 개념이다. 막상 역사적인 장소에서 역사를 생생히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게임과 기술적 접근 방식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다르다. 소수의 개발자가 역사적 장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모두 담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또 체험할 수 있도록 양방향으로 설계됐다.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체험형 역사 콘텐츠

김태곤 CTO는 “역사를 어떻게 해서든 게임과 녹여내고 중요한 IP 자산으로 만들어 해외 진출까지 이뤄내고 싶은 욕심이 개발자들에게 있다”라며 “개발자로서 역사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학계와 게임 업계가 공통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시작됐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행사를 주최한 게임인재단의 정석원 사무국장은 “한국 사학계에서는 역사의 대중화에 대한 고민이 있고 게임 업계에서는 소재의 고갈에 대해 걱정한다”라며 “기업들은 IP를 갖기 위해 많은 돈을 쓰지만, 한국사를 보면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등에 대해 자세히 모를 뿐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게임과 역사 두 분야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태곤 조이시티 CTO

게임인재단은 지난 3월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에 대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각 기관은 앞으로 게임과 역사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각종 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