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율주행 기술 싣고 실리콘밸리로, 토르드라이브

2018.08.09

2017년 6월 국내 최초로 자율주행차가 일반 도심도로에 진입했다.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가 제작한 자율차 ‘스누버’는 운전자 개입 없이 15분간 여의도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닐 암스트롱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는 전체 자율주행차의 역사에는 작은 한 걸음이었으나, 국내 자율차 역사에는 커다란 도약이었다. 서울대 연구팀이 지난 2009년부터 자율차 기초를 닦아왔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스누버’는 또 다른 성과도 남겼다. 스누버 연구개발에 참여해온 학생들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율차 스타트업에 뛰어든 것이다.

토르드라이브 계동경 대표는 “대학원에 들어올 때까지도 솔직히 여기까지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웃었다. 계 대표를 비롯해 연구센터에서 함께 수학하던 대학원생 대부분은 안정적인 대기업 취직이 목표였다. 그러나 연구센터에서 차량을 동작시키고 자율차를 만드는 연구를 하면서, 자율차를 ‘학문’이 아닌 실제 눈 앞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기업에 갔을 때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서 출발해 주체적으로 자율차를 연구개발하고 싶다는, 비슷한 공감대로 뭉친 연구원들은 모험을 단행했다.

이들은 2015년 종합 자율주행 솔루션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를 만들었다. 사명 ‘토르드라이브’에는 북유럽 신화 속 천둥의 신, 토르의 망치처럼 강건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들은 2017년 12월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차근차근 성장해왔다.

출범 당시 팀원은 5명 남짓이었지만 현재는 인턴과 정직원 각 8명으로, 총 16명까지 식구가 늘었다. 8명 정직원은 기본적으로 4년 이상 자율차 개발에 몰두해온 이들이다. 미국 법인에는 5명 내외 현지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여의도 도로 주행으로 복잡한 도심도 OK

자율차 소프트웨어는 사람 운전자처럼 보고, 인지하고, 판단하도록 ‘사람처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사람도 운전 경험이 쌓여야 운전을 잘하는 것처럼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 한다. 더불어 비슷한 연차로 운전을 해도 운전에 능한 사람이 있고 그보다 서툰 사람이 있듯 자율차도 인공지능(AI)의 데이터 분석 및 활용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가령 자율차의 눈 역할을 하는 ‘라이다’가 정보를 잘 수집하더라도 AI가 잘못 처리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토르드라이브의 특징은 자율주행에 필요한 인식, 판단, 측위, 지도 등 관련된 소프트웨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것. 국내외를 둘러봐도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는 드물다. 계 대표가 꼽은 경쟁사는 GM크루즈, 죽스, 웨이모. 각 모듈을 따로 구입해서 쓰는 게 보편적이지만 토르드라이브는 모든 모듈을 인하우스에서 만들 수 있어, 재빠른 적용이 가능하다. HD맵도 자체 기술력으로 제작할 수 있다.

지금은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지만 각 모듈을 따로 팔 수도 있어 추후 매출 다각화도 가능하다. SUV, 밴, 세단, 트럭 등 각종 차량에 대한 경험도 축적돼 있다. 고객사가 원하는 차종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계 대표는 전했다.

|토르드라이브 계동경 대표

그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라는 게 똑같은 차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네 바퀴 달린 것에는 전부 장착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차종에 넣었을 때 다 돌아간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며 “우리는 AI 기술 자체가 노하우가 많이 쌓였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올해 초 우버 자율차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해, 자율차 업계에 찬물이 끼얹어졌지만 토르드라이브는 오히려 이를 통해 자사 경쟁력에 확신을 얻었다. 계 대표는 “우버 사고는 자율차 업계 인식을 나쁘게 한 사례였지만 동시에 안심했다”면서 “사실 (우버 자율차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실수라, 우리도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서게 됐다”고 말했다.

토르드라이브가 주행연습을 하고 있는 지역이 ‘여의도’라는 것도 강점이다. 자율차 업계의 고민은 자율차의 안전성이 자율차 자체만으로 확보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학습된 대로 움직이는 자율차와는 달리, 사람은 규칙을 어기기도 한다. 100% 자율차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거친 운전을 하는 택시나 깜박이를 안 켜고 들어오는 차량을 기계가 ‘유연하게’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복잡한 도심환경에서 주행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여의도 일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토르드라이브의 자율주행 시범운행 차량.

지난해 첫 도로주행 당시에는 혼잡한 상황에서 차선 변경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1년 새 데이터를 축적하고 학습시키면서 운전실력도 크게 늘었다. 여의도 전역으로 지도를 확장해, 택시처럼 목적지를 임의로 설정하고 돌아다녔다. 손님을 태우고 다니는 ‘서비스’ 측면의 자율주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웨이모, 크루즈 등이 미국서 잘 주행하더라도 한국 환경에 오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미국은 젠틀하게 운전하는 편이고, 교통환경도 한국보다 잘 갖춰져 있는 반면 우리는 거친 환경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복잡한 도심환경, 그런 곳에서 강점이 있을 거라 본다. 구글 웨이모가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보다 우리가 미국으로 넘어가는 게 상대적으로 쉽지 않겠나.”

이들은 현재 지도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나 백화점 등 이른바 ‘하이퍼 로컬’ 영역을 기존 지도에 결합해 주차까지 수행하는 자율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 되면 되는 곳으로…기회의 땅 찾아 실리콘밸리로

좋은 기술력이 있다 한들, 국내 자율차 시장은 황무지에 가깝다. 전세계적으로 공유자동차와 자율차는 ‘동지적 관계’나 다름없다. 공유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자기 차를 소유하는 경향은 줄고 공유차의 운전기사가 무인화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우버, 리프트 등 공유차 업체가 자율차 경쟁에 뛰어들고, 자율차를 개발하는 웨이모나 완성차업체 포드, 폭스바겐 등이 차량호출 서비스에 진출하려는 이유다.

반면 국내는 우버도, 카풀 서비스 등 국내발 모빌리티 스타트업도 죄 고꾸라지고 있는 상황. 공유차 시장이 시동도 걸기 전 제동부터 걸리는 꼴이다. 여기에 기업들의 투자 의지도 적고 투자 규모도 인색하다. 토르드라이브는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로 눈길을 돌렸다.

|자율주행차량에 탑승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는 연구원들.

“한국을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자율주행 자체가 인력도 고급 인력이고 기자재 등 자본이 굉장히 많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그런 투자에 인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에 간 이유는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연구개발 인력이 중요하고 연구에 부대비용이 많이 든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토르드라이브는 미국 법인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개발 및 영업을 펼치고 있고, 서울 여의도에 연구센터를 설립해 핵심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국내서 개발하고 미국을 거점 삼아 판매하는 전략이다. 그 결과 지난해 토르드라이브는 고객사를 유치하고 1년간 자율주행 솔루션을 개발해 공급했다. 지급받은 개발비를 발판으로 인건비, 차량 구입 및 개조 자금 등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계 대표는 “자율주행업체 중 매출이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많지가 않다”면서 “자율주행 모듈 전체를 개발하는 곳을 경쟁사로 보고 있는데, 다른 곳은 큰 규모 투자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회사와 경쟁하는 게 쉽진 않지만 우리는 헝그리 정신으로 부딪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미국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수천, 수백억 투자를 곧잘 유치하곤 한다. 베일에 싸인 자율주행 솔루션 스타트업 죽스는 최근 5억달러 투자를 받았다. 아직 성과를 내놓은 적은 없지만 기업가치는 27억달러에 달한다.

규제 완화 이뤄져야 자율차도 달린다

스타트업은 한정된 자본과 적은 인력으로 업계에서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나,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구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토르드라이브는 함께 자율차를 연구하던 학생들이 뜻을 모은 덕에 다른 스타트업보다 안정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규 인력을 들여오는 건 여전히 여의치가 않다.

|토르드라이브 계동경 대표와 현대진 최고기술책임자(CTO)

계 대표는 “사실 외국은 대부분 대학에서 스핀오프 형태로 스타트업이 만들어져서, 스타트업을 했을 때 다양한 도전을 해볼 수 있고 한 번 넘어지더라도 해보자는 인식이 있다”며 국내 실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스타트업에 뛰어들면 ‘다시 못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 탓에 대기업으로 인재가 쏠린다는 지적이다.

그는 대기업 위주의 분위기를 스타트업 중심으로 옮겨야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반이 생길 거라 짚었다. 또 정부에서도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실증사업을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인력을 수혈하고 싶은데, 자율주행 자체를 경험한 사람 자체도 한국에 거의 없고 AI를 다루는 사람들은 대기업에 남으려 하거나 이미 해외 유수 기업에 가 있다. 자율주행은 완벽한 팀스포츠다. 어느 하나가 떨어지면 완성이 안 된다. 한 팀을 이뤄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개발자들이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스타트업을) 너무 걱정만 하지 말아 달라. 우리는 잘 될 수 있는 곳이다.”

토르드라이브는 최근 시드 라운드 펀딩을 마무리하고 다음 라운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범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게 단기적인 계획이다. 올 연말에는 미국에서 자율주행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사례를 직접 보여줄 계획이다.

|계 대표는 “우리는 잘될 수 있는 곳”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