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페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② 메이크 코리아의 시작,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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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운동은 외국에서 시작한 문화 운동이지만, 국내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친 땅을 갈고 다듬어서 국내 메이커 문화가 지금의 성장기를 맞기까지 바탕을 일군 이들이지요. 본 시리즈 기사에서는 메이커 문화의 시작을 알린 메이크 브랜드의 국내 도입부터 여러 과정을 짚어가며, 그 시간 속에서 땀 흘렸던 ‘사람들’을 조명합니다. 작은 씨앗이 잘 자랄까 노심초사하며 물을 대고 거름을 주었던 무명의 농부들. 고마운 마음들을 잊지 않고 소개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메이커 운동에 참여하길 기대해봅니다.

메이크 매거진 한국판

| <메이크> 매거진 한국판

지금의 ‘메이커’라는 단어는 2005년 데일 도허티가 <메이크>(Make:) 매거진을 창간하면서 처음 쓴 말이다. 주변에서 혼자 혹은 여럿이 만드는 엄청난 프로젝트들을 찾아내 세상에 소개하기 위한 매체로 <메이크> 매거진을 만들었고, 이 중심에 있는 제작자들을 ‘메이커(Maker)’라 불렀다. 이 새로운 단어가 의미 있는 이유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활동하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2006년, 데일 도허티와 그의 팀은 메이커들의 프로젝트를 모아서 전시하는 ‘메이커 페어(Maker Faire)’를 주최했다. 이렇게 시작된 첫 ‘메이커 페어 베이 에어리어’는 2만2천명의 관람객을 끌었다.

메이커 페어의 12년 성장 그래프 (이미지: 메이커 페어 미디어센터)

| 메이커 페어의 12년 성장 그래프 (사진=메이커 페어 미디어 센터)

놀라운 인기였다. 무엇보다 이 축제는 재미있었다. 만들기라는 (어찌 보면) 고독한 취미를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전에 없던’ 자리였던 것이다. 메이커 페어는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디고 점점 성장해 올해로 13년째를 맞았다. 2017년 기준으로 세계 45개국에서 221회 진행됐고, 연 158여만명의 관람객을 맞이했다. 각 행사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대부분 1년에 1회 진행된다. 전 세계에서 매주 2-3개의 메이커 페어가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주변의 메이커 페어 찾기 링크: https://makerfaire.com/map/)

길고도 짧은 메이커 페어의 역사에는 한국 메이커 페어도 포함돼 있다. 한국은 2012년에 첫 ‘메이커 페어 서울’을 주최했는데, 당시에는 개최국이 전 세계에 10여곳, 이 가운데 메이크 브랜드의 공식 라이선스를 받은 파트너사가 주최한 행사는 3-4개에 불과하던 시점이다. 메이커 페어 서울은 국내에서 메이커 행사라고 부를만한 첫 번째 행사로서 국내 메이커들에게 좋은 경험을 남겼고, 지금도 국내 메이커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작년 메이커 페어 서울의 카트 어드벤처 레이싱 경주 (메이커 페어 서울 2017 사진 앨범으로 바로가기 https://www.flickr.com/photos/153380342@N07/sets/72157666007182739)

| 2017년 메이커 페어 서울의 카트 어드벤처 레이싱 경주 (메이커 페어 서울 2017 사진 앨범으로 바로가기)

여기에서 다시 <메이크>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메이커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메이커들의 활동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문화의 흐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브랜드로써 ‘메이크’는 미국 IT 출판사로 유명한 오라일리 미디어의 매거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단행본, 행사, 웹, 커뮤니티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메이커와 메이커의 활동을 연결하는 콘텐츠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됐다. 그리고 그즈음에 메이크 사업 분야는 오라일리 미디어에서 떨어져 나와 현재의 메이커 미디어라는 별도 기업으로 독립했다.

한국에서도 역시, ‘메이커’ 개념을 소개한 것은 매거진을 통해서였다. 2011년 출간된 <메이크> 매거진 한국판 창간호 3페이지에 실린 데일 도허티의 소개글에 메이커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번역문이었으나 메이커는 새로운 뜻을 담는 단어로써 그대로 유지됐는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로 새로운 제작 인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당시 ‘메이커에, 메이커에 의한, 메이커를 위한 매체’라는 슬로건으로 메이크 브랜드를 국내에 알렸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매거진 출간 이듬해에 국내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던 여러 메이커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첫 메이커 페어 서울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메이커라는 개념을 정리한 출간물, 메이크 매거진 창간호

| 국내 최초로 ‘메이커’라는 개념을 정리한 출간물, <메이크> 매거진 창간호

메이크 코리아(Make: Korea)는 2010년에 시작했다. IT 출판사로서 오라일리 미디어와 오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한빛미디어가 국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국내 채널이 오픈된 것이다. 한빛미디어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메이크> 매거진 한국판, 메이커 페어 서울 주최, 메이크 코리아 단행본 출간을 진행하며 메이커 생태계의 초석을 다졌다. 다만 전략적인 이유로 한빛미디어의 라이선스 유지가 불가하게 되자 메이커 미디어는 새로운 협력사를 찾았고, 그것이 지금의 메이크 코리아를 운영하는 블로터앤미디어다. 2017년 블로터앤미디어로 라이선스가 이관된 이후 메이크 코리아 팀이 꾸려졌고, 메이크 코리아 사업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뉴스 채널의 장점을 살려 웹 미디어로 활동을 확장하였다.

이제 메이크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온 지 9년차에 접어들었다. 메이크 코리아는 잘 유지되고 있고, 메이커 페어 서울 첫해보다 전시 인원은 4-5배, 관람객 인원은 10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메이크 코리아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활동으로 말하고, 배움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메이커가 활동하기 편안한 생태계가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이제 온라인에서도 메이커가 유명 브랜드라는 뜻의 메이커나 메이크업을 이기고 상단에 보이고, 오프라인에서도 메이커를 만날 수 있는 곳, 작업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국내의 메이커 생태계, 더 나아가 관련 사업이 커지는 와중에도 매번 새로운 미팅룸에서는 ‘한국에는 메이커가 몇 명 있나요?’, ‘시장 크기는요?’ 같은 질문이 오간다. 우리는 모두 무의식적으로라도 생활을, 쓸모를, 제품을 만들고 있는 메이커다. 누구든 스스로를 메이커라고 부를 수 있는 환경에서 누구는 메이커고 누구는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 메이커 그룹을 특정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드는 문화가 형성되면 기존 산업이나 인프라에 끼칠 영향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것이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결국 메이커 문화의 특징인 자발적인 참여가 개인의, 그룹의,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글 | 정희

‘메이커 페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
· 기획 | 윤나리 메이크 코리아 콘텐츠 매니저
· 인터뷰 | 장지원 프리랜서 기자
· 감수 | 정희 메이커 페어 서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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