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이런 사람들에게 강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는’ 건 좀 곤란한 사람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는데 절대 ‘그랜저’로 답할 수 없었던 사람들, 대한민국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가장 바람직한 유산인 ‘월세 꼬박꼬박 나오는 건물’에 월세 내고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
‘왜 또 똥 얘기냐’고 물으신다면, 어린이 책 중에는 똥에 관한 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서 앞으로도 종종 똥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양해의 말씀 드리고 싶다. 제목이 워낙 강렬해 기억에 남는 것만 대충 꼽아도 <똥 냄새 나는 책>, <똥싸는 집>, <따끈따끈 똥 만들기>, <음~ 내 똥 어때?>, <입이 똥꼬에게> 등 십여 가지나 된다.
이 수많은 ‘똥 책’들 중에 ‘포스 간지’ 작렬하는 불멸의 고전이 있으니, 1969년 세상에 나온 <강아지똥>이다. 지난 2007년에 작고하신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의 첫 동화집인데, 정승각 선생님이 그림을 그려 ‘그림책’으로 다시 나오면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읽혔고, 애니메이션은 물론 인형극과 뮤지컬로도 제작돼 절찬리에 상연되고 있다.

담벼락 밑에 똥을 싸는 흰둥이의 애처로운 뒷모습.
돌이네 흰둥이가 담벼락 밑에 똥을 눈다. 변비에라도 걸렸는지 힘을 주는 뒷모습이 애처롭고, 눈 똥의 모양새도 영 시원스럽지가 않다. 그렇게 태어난 작디작은 강아지똥이 책의 주인공이다.
“뭐야! 내가 똥이라고? 더럽다고?” 강아지똥은 자신이 개똥도 못 되는 강아지똥으로 세상에 났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목놓아 운다. 모두가 강아지똥을 천대하고, 그나마 “내가 너보다 더 흉측하고 더러울지 모른다”며 위로해 주던 흙덩이마저 소달구지에 실려 다시 밭으로 돌아간 뒤엔 홀로 남아 춥고 긴 겨울을 난다. 외로움보다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신의 존재와 운명이 서럽고 비참한 강아지똥. 절망으로 ‘떡실신’한 그 앞에 파아란 새싹이 조촐한 자태를 뽐낸다. 누구냐, 넌?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라고 요염을 떤 새싹은 강아지똥에게 슬슬 작업을 건다. “네가 거름이 돼 주면, 내가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어”. 뜻밖의 러브콜을 받은 강아지똥은 감격에 몸을 떨며 민들레를 격하게 껴안는다. 사흘 동안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땅 속으로 스며들어 뿌리로, 줄기로 올라가 마침내 꽃봉오리 하나를 틔운다.

강아지똥과 합체, 마침내 한 떨기 꽃봉오리를 맺은 민들레 아씨.
이 이야기가 어쩐지 귀에 익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열혈팬이 아니신지. 변비공주 혜리의 닦달에 꾸질꾸질 신신애가 신들린 듯 집필한 창작 동화 <엄마 똥 애기 똥>은, 엄마 찾아 헤매던 애기 똥이 마침내 한 줌 거름으로 거듭나는 성장 드라마이자 하수구를 관통하는 스펙터클 로드 무비다. 신애는 <강아지똥>에서 영감을 얻어 이 감동 스토리를 완성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아니냐?
기자 시절에 어린이 책 관련 기사를 쓰다가 <강아지똥>을 처음 봤다. 그런데, 훌륭한 작가가 쓴 불멸의 고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강아지똥>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책도 안 사주고 인형극이나 뮤지컬도 안 보여줬다. 아이가 강아지똥에 감정이입하는 게 겁이 나서 그랬다.
“너도 한 떨기 강아지똥일 지 몰라. 하지만 강아지똥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강아지똥답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으니. 우리 oo이도 씩씩하게 자라서 이 나라의 멋진 강아지똥이 되렴.” 내 자식에겐 차마 이렇게 말하기가 힘들었다. 뜻은 거룩하다만, 진짜 내 자식이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면…
반대로 아이가 <강아지똥>을 그저 여리고 불쌍한 ‘타자’로만 여길까 봐, 그 역시도 마뜩찮았다. <강아지똥> 연극을 보고 나서 감동의 눈물을 글썽인 다음 특목고 대비학원에 가는 건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이냐. ‘나는 한 마리 나비지만, 강아지똥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꽃가루를 온 누리에 흩뿌리는 개념찬 나비로 살겠노라’ 이런 거?
“어따 대고 측은지심이야, 너도 별 차이 없거든, 붹!” 대략 이런 심경 되겠다.
그렇게 <강아지똥>을 우리집 ‘금서’로 만들었던, 엄마가 최근 해금조치를 단행했다. 무려 서른일곱 해가 지나서야 자신이 강아지 똥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래봬도 성적 경쟁, 학벌 경쟁, 취업 경쟁, 승진 경쟁, 내집 마련 경쟁, 재테크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두 주먹 꼭 쥐고 달려온 외길 인생이다. 한 발짝 잘못 디디면 대열에서 낙오해 ‘강아지똥’이 될까 봐, 독수리는 못 되어도 참새나 나비는 해먹어야지, 슬쩍슬쩍 저 아래(에 있다고 착각했던) 강아지똥 예비후보들을 곁눈질하며 므흣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러다 비로소 최근에야 ‘불편한 진실’에 눈을 떴다. 나를 포함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아지똥이며 그게 딱히 불행한 일이 아니라는 기특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대열에서 낙오한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로 출발했는데, (낮잠을 많이 자서) 밤 잠 못 자고 고민했더니 ‘개똥철학’이 되더라.)
요즘엔 “세상은 강아지똥이 주류인데, 학교에선 왜 강아지똥으로 당당하게 사는 법을 안 가르치고 강아지똥은 ‘루저’네, 강아지똥에서 탈피하는 게 성공한 인생입네 어쩌구 엉터리 세뇌질을 하는 거야?”라며 한국 제도권 교육의 숱한 문제점을 ‘강아지똥’ 한방으로 날려버리는 신공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강아지똥>이 특별사면 된 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즈음이다. 서점에서 <강아지똥>을 만지작대며 나눈 이런 대화가 계기였다.
“<동이> 덕분에 숙빈 최씨 일대기 다룬 어린이책이 진짜 많이 나왔네. 이 동네 참 빠르다. 근데 살아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위인전은 유엔 본부에 앉기도 전에 나왔는데 서거 1년이 된 노무현 대통령 위인전은 왜 안 나오지?”
“바보야, 아무리 훌륭해도 그렇지 자기 자식이 노무현 대통령처럼 힘들게 살길 바라는 부모가 어딨다고, 그걸 누가 사겠냐?”
“대통령까지 했는데 위인이 아니냐, 그럼?”
“대통령 대접을 제대로 받았나 어디. 철저히 비주류였고, 뼈 속까지 평민이었는데. 하여튼 자신감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야. 사람이 어떻게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일’만 하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할까? 생각은 해도 그렇게 살기는 참 힘든 건데.”
“어… 꼭 강아지똥이었네…”
“뭐라는 거야??”
강아지똥이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해도, 강아지똥처럼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까. 강아지똥인 자신을 긍정하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데 ‘하늘은 안다, 이건 내 소명이다’ 믿으며 민들레를 온 몸으로 껴안는 건 ‘자뻑’의 최고봉이요, 득도의 경지다.
그래서 나는 ‘정의’나 ‘역사’처럼 교과서에나 나오는 단어가 삶으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그것도 죽어서 그걸 깨닫게 해 준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신기했다. ‘아, 그게 되는 거야?’ 생각하며 처음으로 희망 비슷한 걸 느꼈다. 노무현은 강아지똥이 강아지똥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갖고 앗쌀하게 한 세상 살면 정말 민들레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강아지똥의 좋은 예’가 아닌가. 그래서 기약 없는 위인전 대신 <강아지똥>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은 된다. 살아 생전 ‘이라크 파병 반대’를 거듭 강조하신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노무현=강아지똥’이라며 책을 사들고 온 내게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냐”고 화를 내시진 않을까.
권정생 선생님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하면서 <강아지똥>을 썼고, 이후 <몽실 언니> <점득이네> 등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자랑하는 작가가 됐지만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그렇게 모은 10억여 원 예금과 사후에 발생할 인세 수입 전부를 배고픈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명박 정부들어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선생님의 유지(북녘에 사과나무 심기)를 받들기 힘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쟁불사론’까지 거론되는 요즘이니 언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을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4대강 살리기’ 현장에서 생명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또 얼마나 가슴 아프실지.
1969년에 태어난 <강아지똥>이 2010년 지방선거 이슈와 관련 지어 생각해도 여전히 트렌디한 텍스트라니, 역시 ‘불멸의 고전’은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수식어가 아닌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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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_현실을 인정하자….
[그림책 다시읽기] 우리집 금서 ‘강아지똥’이 특별사면된 사연 을 읽었다. 사실 기자정도 되면 특권계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 사회의 ‘서민’(이라고 쓰고 평민이라고 읽는다.)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블로터 닷넷(http://www.bloter.net)에서 책 리뷰를 하는 이 분도 자신은 ‘강아지 똥’이 아니라는 생각 속에 젖어 살다가 자신이 그렇게 높이 있지 않았음을 차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