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셜 미디어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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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일.

인터넷의 모체인 미국 국방부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서 4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빨간 풍선 찾기’ 이벤트를 시행했다. 인터넷 탄생 40주년을 맞아, 인터넷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열린 이 이벤트에는 전국에서 4천개 팀이 참여해 경합을 벌였다.

주최측이 예측한 소요 시간은 9일, 그러나 실제 우승팀은 그 것을 단 9시간으로 단축시켰다. ‘기적’을 만든 주인공은 인터넷 신화의 또 다른 산실인 MIT의 미디어랩 팀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낸 것일까?

단순했다. ‘웹2.0’으로 부활한 인터넷의 ‘개방’, 그리고 ‘공유’의 정신을 살린 것이다. 그들은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MIT 미디어랩 팀과 협력해 빨간 풍선을 찾은 사람과 상금 수익을 ‘가지치기‘ 방식으로 나누어 갖기로 했고, 그 것이 네티즌의 적극적 호응을 얻어 국방부가 예상한 9일이 아닌, 9시간 만에 그 4만 달러 짜리 빨간 풍선을 찾은 것이다.

이렇듯,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 기존 게임의 ‘법칙’을 바꾼 것을 볼 때 우리는 감탄하고, 감동하고, 그리고 도전한다. 그러나 그 도전이 분별없는 열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것은 여전히 ‘4만 달러’와 ‘MIT’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4만 달러라는 상금이 화제가 되어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이벤트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MIT라는 유력한 후보가 자신들의 서포터가 되주길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 이 빨간 풍선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이 것은 게임의 ‘법칙’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바뀐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견한 예로, 미국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에서 화성탐사 수행 시 수많은 인터넷 자원봉사자들을 받아서 그들의 도움으로 행성 표면 구멍인 크레이터를 찾아내고 화성의 전체 지도를 완성한 바 있다. 이 역시 그 유명한 ‘NASA’의 이야기다. 어디 시골의 천문대나, 허름한 연구소에서 해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빨간 풍선 찾기를 도운 트위터 팔로워들과 NASA의 화성탐사를 도운 네티즌 클릭 자원봉사자들의 역할과 의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와 같은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낸 사회적 ‘현실’ 역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렉 시버스가 최근 TED 포럼의 ‘어떻게 변화를 시작할 것인가’라는 강연에서 말한 것처럼, 변화가 일어나는 데 핵심은, 처음 그 무대 위에 올라서 미친 짓을 하는 리더가 아니라, 그 미친 짓을 과감히 따라하는 묵묵한 지지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제3, 제4의 추종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교훈을 지금의 이야기에 적용해보자. 집단지성의 신화? 그것이 기존의 사회적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서 일어날 수 있는가? 그 안정성의 중력을 벗어나서 인간은 달로 도약하는가? 우리가 진공상태에 살지 않는 한 그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 본다. <끌리고 쏠리고 뜰끓다>(Here Comes Everybody)의 저자인 클레이 셔키는 소셜 미디어가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2009년 TED 포럼에서 그가 한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내는 가‘라는 강연의 논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클레이 셔키가 자신이 현재 몸담고 있는, 전세계에서도 가장 실험적이고 소셜 웹화된 도시인 뉴욕이라는 배경에서 벗어나서도 그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중국 쓰촨성에서 강진이 발생했을 때 그 소식을 중국 관영통신이나 외국언론을 넘어 실시간으로 전했던 트위터 시민기자들을 예로 들면서 소셜 미디어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의 인터넷 ‘검열 만리장성’을 해체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동유럽 출신 언론인 에브게니 모로조프는, 그것은 ‘아이팟 민주주의’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기술혁신은 ‘자동적’으로 사회변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더 많은 폭탄 대신에 더 많은 아이팟을 뿌린다고 독재체제가 전복이 되고 민주혁명이 일어날까? 오히려 그는 제3세계의 억압적 정부가 이제 인터넷 환경,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시민을 ‘통제’하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협력자가 누구인 지 알기 위해서 고문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페이스북의 친구만 확인하면 된다. 동조자를 알아내기 위해 감시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트위터의 팔로워만 쳐다보면 된다.

이 ‘중립적’인 소셜 미디어는 꼭 시민의 편에만, 변화를 원하는 쪽에만 서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 전문가인 클레이 셔키와 에브게니 모로조프의 주장이 갈리는 것도 역시 그들이 다른 사회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힘을 얻는 뉴욕과 그 변화가 묻히는 동유럽의 ‘사회 현실’ 속에서 그들은 기술 혁신이 불러 일으키는 ‘가능성’과 ‘한계’를 보고, 한 현상의 다른 두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것은 찬반의 논쟁이 아니라 긍부의 조명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났지만, 그 것이 이전 것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금의 사회 현실은 그 것이 ‘안정성’으로서, 큰 돈과 높은 이름으로서,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실제 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저 위의 빨간 풍선 이야기로 돌아가서, 빨간 풍선을 찾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쓴 것은 MIT만이 아닐 것이다. 그 중에 유력한 이름을 가진 팀도 역시 MIT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MIT가 성공한 이유? 그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가지치기’다. 그들이 자기 상금을 나눠가지게 했다고 했을 때, 그 진정성, 그 비전, 그리고 그 공유의 정신이 예상치 못한 혁신성(generativity)을 창출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 그리고 이메일 등 이용자 혁신에 의한 각종 킬러 어플리케이션을 탄생시킨 배경이었다.

그러한 교훈은 소셜 미디어의 돌풍이 부는 오늘의 시대 현실을 초월해서 영속하다.

저명한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미디어는 메시지’이지만, 새로운 언론 매체는 새로운 대화의 양식과 변화의 흐름을 만들지만, 그 미디어를 만들어 낸 사회 현실을, 지역적 환경을 우리는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셜 미디어를 쓰고자 하는 자는 이 ‘우상’의 ‘전지전능’함에 대해서 의심해야 한다. 대신에 이 ‘도구’가 대답해주지 못하는 ‘비전’과 ‘철학’, 그리고 ‘전략’을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세상을 바꾼다면, 혹은 바뀌지 않는다면, 위의 예시에서 살펴본 것 처럼,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소셜 미디어 혹은 어떤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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