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포럼] 시각장애인에게 왜 ‘독서권’이 필요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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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게 독서권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할 사람은 드물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란 질문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복잡해진다. 누구나 책 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는 만만치 않다.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이 진행하는 ‘IT로’는 이 환경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시각장애인에게 ‘읽고픈 책을, 원하는 때 읽게’ 해주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뜻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십시일반 참여해 기존 종이책을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디지털 도서로 변환·보급하는 게 뼈대다. 디지털 변환이 쉽도록 전용 플랫폼과 편집기를 제공하고, 다수의 참여로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고자 했다.

IT로 점자도서관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각장애인과 독서권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단순히 ‘시각장애인이 읽을 책이 부족하다’는 탄식을 넘어서 정보 습득 환경 전반에 대한 평가와 바람직한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 일시 : 2018년 11월1일(목) 오전 10시30분
  • 장소 : 시각장애인 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
  • 사회 : 김정호(아이티로 시각장애인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 참석자 : 강완식(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장), 강윤택(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김가람(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혜일(링키지랩 접근성팀)

| 강완식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장, 강윤택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김정호 아이티로 시각장애인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김혜일 링키지랩 접근성팀, 김가람 엑스비전테크놀로지(왼쪽부터 시계방향)

김정호 | 시각장애인의 ‘독서권’이라고 하면, 주요 매체에선 식상한 주제로 여길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읽을 책이 부족하다, 책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긴 너무 당연하다. 신세한탄 밖에 안 된다. 그 전에, 과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책 가뭄이라 부르는 문제가 불가피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숙명 같은 것인지 묻고 싶다.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한지 사회적 논의를 얘기해보고 싶다.

김혜일 | 기술이 발전하며 시각장애인, 장애인 전반에게 희망이 좀 생겼다. 그전엔 텍스트 중심이었는데 이미지나 동영상 콘텐츠로 확대되면서 시청각장애인에게 한동안 정보의 소외가 발생했었다. 하지만 방대한 콘텐츠가 쌓이면서 관리하고 검색하는 니즈가 생겼다. 이미지와 동영상을 기계가 검색하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기회가 생겼다. 시청각장애인이 활용할 수 있는 텍스트화된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동으로 메타데이터도 달아주고 이미지 분석 기술이 그걸 가능케 했다. 자동으로 캡션을 다는 기능도 청각장애인에게 유용하다.

스마트스피커 나오며 UI가 음성 중심으로 변하는데, 아이러니한 게 스마트스피커를 편하게 쓰면서 비장애인도 시각장애인과 똑같은 상태가 됐다. 디스플레이가 없으니. 스피커로 쇼핑하는 기능을 구현한다 치자. 시각장애인이 쇼핑하기 어려운 게 상품정보 대체텍스트가 없기 때문이었다. 스마트스피커 덕분에 비장애인도 그 정보 필요하니 어떻게든 대체텍스트를 만들어준다. 장애인이 기계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아진 건 긍정적이다. 그 목표와 방향이 장애인도 잘 쓸 수 있는 서비스가 될 거냐 비장애인에게 특화된 서비스가 돼서 장애인은 다시 소외될 것이냐, 그게 궁금하다.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 김정호 대표

|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 김정호 대표

김정호 | 저도 집에 스마트스피커가 있다. AI가 등장하면서 디스플레이가 없어지고 음성에 의존하다보니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환경이 됐다. 쇼핑에 대한 지적도 정확하다. 물적 토대가 만들어지고 시각장애인에게 어떻게 쓰일지는 해당 기업이 고민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각장애인 인권이나 복지권 대변하는 단체에서 목소리를 내서 관심을 갖고 서비스 개발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강완식 | 시각장애인 책가뭄 얘길 많이 하는데, e북 콘텐츠가 굉장히 많이 생산된다. 그런데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이 부족하다. 그러니 제값을 지불하고 이용하고 싶어도 그럴 마음이 안 생긴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소비자성의 문제다.

강윤택 | 요즘 복지서비스에 있어 장애인의 위치는 과거 수혜자에서 지금은 소비자로 가는 추세다. 장애인이 상품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든 바우처나 연금 같은 소득보장 체계 통해 구매하든, 장애인의 위치가 소비자로 가는 게 일반적인 복지선진국의 방향이다. 단지 우리가 직접 돈 벌어 사냐 안 사냐를 기준으로 소비자성 얘기하는 건 아니다.

강완식 | 이번에 우리 연합회가 ARS를 스마트스피커에 연동했다. 음성비서를 불러내서 특정 콘텐츠를 읽어달라 하면 실행한다. 그런데 콘텐츠를 명확히 알지 못하면 사용하기 힘들다. 음성으로 불러내도 쓰기가 곤란한 점이 많다. 다행인 점은, 예전 버스도착 안내시스템 처럼 음성비서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기능’으로 포장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각장애인도 따라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예전엔 윈도우 나오고 시각장애인이 쓰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면, 인공지능 스피커로 시각장애인이 예를 들어 생필품 주문하는 거 해보면 유용하게 할 수 있다. 조금만 연동하면. IoT가 주는 메리트도 굉장히 있겠다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이 주변 환경을 제어하는 데 유용하다. 환경제어용으로 AI 스피커는 굉장히 메리트가 있다.

김정호 | 음성으로 정보를 탐색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건, 내가 AI 스피커에 얘기하는 내용들이 어떤 일련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얘기할 경우 전 얘기와 다음 얘기가 맥락상 연결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단발성이다. 결국 AI의 대화 기능이 좀 더 음성비서다워져야 한다. AI스피커가 자연스럽게 언어를 이해하는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연세 많은 어르신의 정보접근권 향상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AI 발전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문제 같다.

강완식 | 일단은 기술의 진보가 시각장애인의 독서권 확대에 매우 유용하다. 근데 너무 낙관적이진 않다. 이미 시각장애인 독서권 누리는 건 점자와 녹음이 있을 때 완성됐다. 사회적으로 어떤 권리를 누리느냐가 중요하다.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는 걸 당연한 사회적 기본권으로 보장했다면 녹음과 점자 시절부터 이미 충분히 됐어야 한다. 그건 매우 소수가 보니까, 비용이 많이 드니까, 특수 계층의 혜택처럼 생각되던 시절이었으니 잘 안 됐다. PC와 스마트폰 발전하니 제작 비용 낮아지고 출판사가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제공하는 시절이 됐는데도 똑같다. 비장애인이 기술 발전으로 독서권 보장된 데 비하면 우리 발전은 열 걸음 갈 때 한 걸음도 안 왔다. 기술 발전이 독서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이미 갖고 있는데, 시각장애인 독서권을 기본권으로서, 장애를 회수하는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기술 발전도 장애인 독서권을 담보할 수 없다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AI든 스마트폰이든 기술 발전이나 매체 접근 확장성이 그리 낙관적이진 않다. 독서권 보장은 시각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강력히 보장하거나 식으로 이뤄져야 된다.

링키지랩 접근성팀 김혜일 님

| 링키지랩 접근성팀 김혜일 님

시각장애인도 서점에서 책을 사고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읽을 책이 없다. 출판사 입장에서 시각장애인도 책 사서 보라고 말하는 건 접근성이 완전히 보장됐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은 공공 영역에서 보장되는 아주 일부 책에서만 가능하다. 소비자성을 논하긴 이르다. 어떻게든 구할 통로 있으면 책 사보겠지만, 책을 사도 읽기 만만찮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제대로 된 품질의 책을 받지 않으니 제대로 된 소비가 아니다. 제대로 된 품질의 책을 시각장애인이 읽게 해야 소비자와 판매자의 관계가 제대로 성립된다.

김정호 | 미국 사례를 보면 NLS(국회도서관)에선 1980년대부터 주요 일간지와 주·월간지를 점자로 만들어 거의 시간차 없이 제공했다. 제공되는 범위도 넓었다. 신기했던 게 <플레이보이>를 점자로 만들어 보냈다. 우리나라라면 큰일난다. “어디 3류 잡지를” 하는 식이다. 게다가 이미지 해설도 일일이 다 달아준다는 거다. (웃음)

강완식 | 예전엔 점자도서를 비싸서 못 만든다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얘길 많이 못했다. 제가 이상적으로 보는 건 IT로 진행되는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도서 제작 과정이 기존 비용이나 시간 핑계를 물리치고 독서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호 | 김가람 선생은 LG상남도서관에서 오래 근무하셨다. 당시 유비쿼터스 도서관을 지향한 트렌디한 도서관이었다. 기술 발전이 시각장애인의 독서권을 과연 해결할 수 있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김가람 | 소비자성은 꼭 책을 무료로 받는다기보다는 원하는 책을 어디서든 무료든 유료든 구할 수 있어야 소비자성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일하다 보면 가끔 안타까운 연락도 받는다. 한 여성 시각장애인의 문의가 기억난다. ‘남편이 당뇨가 있어서 식단을 짜줘야 하는데, 그런 책 구할 수 없겠느냐’고 했다. (데이지 제작) 희망도서로 신청을 3개월째 하는데도 신청자가 일단 많고 선정 기준도 까다롭다보니 4-5개월이 지나도 책이 안 만들어지는 상황이라 했다. 이분은 사정사정하는데 제가 드릴 말이 없었다. 물론, 제가 어릴 때보다 기술은 많이 발전했다. 그나마 OCR이 나와서 급하면 글자가 좀 깨져도 OCR을 돌릴 순 있었다. 그런 기술을 접할 수 없는 격차가 있는 세대도 있다. 독서권이 보장됐다 안 됐다 논하긴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김정호 | 소비자성과 소비자의 권리는 다르다. 시각장애인은 돈 내고 책 안 산다고 하는데, 시각장애인이 돈 주고 사는 것 중에 돈 낼 만한 게 없다. 쓰레기를 돈 주고 사냐는 얘기도 한다. 독서권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경제력 유무에 상관없이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 강완식 팀장

|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 강완식 팀장

강완식 | 예컨대 시각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스마트TV를 똑같이 200만원 주고 산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TV의 몇 %를 쓸까. 10%도 안 쓴다. 20만원 주고 살 걸 200만원 주고 산다. 그래도 필요하니 아무 말 안 하고 산다. 이런 관점도 봐야 한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도 시각장애인이 얼마나 쓰겠나. 우리가 홍채인식이나 안면인식이 왜 필요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20-30만원이면 될 걸 100만원 주고 사서 쓴다. 그렇다고 항의해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순 없다.

김정호 | 시각장애인의 책가뭄 문제는 본질적으로 독서권의 위상과 관계가 있고, 기술 발전으로 단순히 해결될 순 없다. 그래서 ‘IT로’는 기술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크라우드소싱 방식을 택했다. 올해 1년에 1200권 작업하고, 내년 목표가 주요 서점 베스트10 들어가는 책을 일주일 안에 제공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자원봉사자도 현재 5천명 넘었는데, 1만명을 목표로 가고 있다.

제가 신기한 건, 과거에 비해 점자책 만들기 위해 책정된 예산은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 책은 여전히 부족하고, 시각장애인이 기다리는 시간도 줄지 않았다.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강완식 | 예산이 늘어난 건 맞다. 80·90년대만 해도 공식적인 책 제작 예산이 없었던 걸로 안다. 도서관도 시각장애인에겐 한국점자도서관 하나가 있었고, 복지관에서 자체 예산으로 점자책을 만들어줬다. 그것도 도서 위한 예산이 아니라 복지관 예산 일부를 가져다 쓰는 거다. 지금은 공식적 예산이 있다. 그런데도 책가뭄 나타나는 건 이유가 있다. 첫째, 출판 대비 그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양의 절대적 부족이 크다. 2%도 안 된다. 그것도 통계가 지나치게 많이 잡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개인화에 맞춰주다보니 큰 예산이 들어가는 책은 개인이 요청하는 전문서적이 많다. 그 수요자는 몇 명 안 된다. 어느 정도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과거와 현재 출판된 책 통틀어 제작량은 일정한데 필요한 사람은 많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동일 책 제작 문제가 크다. 우리도 올해 1200권 만드는데 유사한 책이 있을 거다. 우리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립중앙도서관도 똑같은 책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면 예산이 중복 낭비된다. 실제 그 예산을 집행하고 통제하는 곳에서 사업하기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본인이 그렇게 하면서 남의 목록 보고 중복 책을 만들지 마라 한다. 우리도 이용자가 선호하는 책을 만들려면 최신 책을 만들어야 한다. 인건비도 든다. 지방의 소규모 도서관도 많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책까지 따지면 예산은 어느 정도 투입되고 늘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

김정호 | 정리하자면, 예전엔 책 하나 만들고 공급자 중심으로 이용자가 이용했다면, 이제는 수요자 중심이다. 만들어야 하는 종 수가 많아지고 체감하는 건 별로다.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가람 님

|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가람 님.

강완식 | 두 번째는 기관의 문제다. 책 선정하는 사람이 다 비슷하게 생각한다. ‘우리도 베스트셀러 해야지’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책이 중복 제작된다.

김정호 | 우리 책 트렌드 보면 이슬람이나 LGBT, 젠더 책이 별로 없다. 도서관 이용하는 곳이 주로 기독교 단체인데, 그분들 입장에서 이런 책은 불온서적이다. IT로에서 그런 책 제작하자 해서 700종 이상 선정했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거의 다 점자책으로 만든다. 그만큼 이슬람, LGBT, 젠더 관련 책이 국내에서 빈약하다.

강완식 | 성과주의를 떠나 각 분야별로 전문화해 책을 제작·제공하고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가람 | 책가뭄 문제는 정말 있나. 난감한 지적이다. 책가뭄이 내가 읽고픈 책을 제때 못 읽는다는 관점이 있고, 다양한 책을 읽지 못한다는 관점이 있다. 상황에 따라 베스트셀러나 소설을 잘 찾아보긴 하지만, 정말 개인적으로 필요한 수험서 같은 건 만드는 게 쉽진 않았다. 본인이 영어공부하겠다고 신청한다 해서 영어책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기관에서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시각장애인 위해 문제집은 많이 만드는 추세다. 나는 영어책 보고 싶은데 개정된 책은 안 나오는 문제는 있다. 제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책가뭄일 수 있다.

강완식 | 제일 인상깊은 건, EBS 수능 교재를 점자책으로 만들어준 거다. 거의 금방금방 왔다.

강윤택 | 제가 인상적이었던 건 예전엔 LG상남도서관이 제작 맡기면 엄청 빨랐다. 한국시각장애인협의회 학습지원센터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정말 빨랐다. 감동적이었다.

김정호 | IT로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신청하면 일주일 안에 책이 완성되는 게 목표다. 앞부분이 완성되면 앞부분부터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이런 걸 활성화하려 한다.

김혜일 | 책가뭄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내가 바로 읽든 안 읽든,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몇 권 있는지를 보면 안다. 중요한 건, 시각장애인의 삶의 수준도 올라가고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니즈가 다양해졌으니 만들어야 할 책 수도 늘었다. 그 니즈를 못 채우니 가뭄을 더 느낀다. 도서라는 매체의 변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금은 이미 디지털화해 인쇄된 도서를 다시 디지털화해 문서화한다. 이게 말이 안 된다. 처음 디지털화된 걸 받아 서비스하면 훨씬 빨리 제작될 수 있는데. 출판사가 바뀌지 않으면 세대가 바뀌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강윤택 | 책가뭄이 절대 해소 안 되는 건 중복제작 문제도 있다. 베스트셀러는 전국 도서관이 다 만든다.

김정호 | <태백산맥> 찾아보면 한 20군데 나온다. 심지어 책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일동 웃음)

강윤택 | 도서관은 읽지 않는 책도 점자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제작된 책은 누구나, 언제든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점자책이냐, 데이지냐, 오디오북이냐를 보면 다 다른 책이다. 그건 중복제작이 아니라 대체매체다. 한 책도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제작 과정에서 들어가야 한다. 어디서는 오디오북만 만들고, 어디선 텍스트만 만드는 식으로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제작은 다양한 곳에서 각자 하고, 이걸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소장

|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소장

또 하나, 복지관에 책을 맡기면 여러 달 걸리는 이유가 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익사업에 주력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비영리 목적으로 도서를 제작하겠다고 인력 배치랑 예산 다 받은 복지관이 학생이나 시각장애인 의뢰 도서를 안 받고 자기네 수익사업에 인력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복지관이 그렇진 않겠지만. 이런 왜곡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 비영리단체에서 대체자료를 수익사업으로 하는 건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정호 | 시각장애인 부모가 비장애인 자녀 키우며 장벽이 있다. 부모 역할에 있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도 독서권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건 다르다. 저희 도서관에서도 관심 있는 게 아동 도서다. 아이들 도서가 너무 없다. 제 초3때 학교에 처음 도서관이 생겼는데, 장서가 10권이었다. 그 중에 1번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제가 11살 때 <데미안> 읽은 사람이다. (웃음)

강윤택 | 독서권은 비장애인은 굳이 안 붙여도 읽으면 되니 특별한 권리라고 생각 안 하는데, 시각장애인은 권리라고 주장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하니 권리라고 붙인다. 비장애인에겐 공기 같은 것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겐 특별한 영역이다. 그 책을 읽고 안 읽고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기본적 문제다. 제도적으로 제작 과정이나 역량을 조직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차별 없이 모든 독서에 대한 언제든 어떤 방식이든 읽을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게 모든 것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호 | 독서권을 사회권의 하나로 사람들이 인식하면 좋겠다. 내가 책 못 읽는 게 팔자가 아니라 내 권리가 침해당하는 거라는 인식이 돼야 한다. 우리집에 불이 났는데 119에 전화했더니 ‘담당이 휴가 가서 내일 꺼드리면 안 될까요’ 하는 식이다. ‘소방관님도 휴가 가셔야 하니, 내가 집을 태워야 하는구나’하고 이해할 게 아니라, 사회가 당연히 보장해야 할 권리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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