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정리

리디는 왜 전자책 단말기를 직접 만들까

2019.03.22

전자책 많이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는 비중이 높다면 아마도 전용 기기, 즉 e잉크 기반의 전자책 단말기에 대한 관심도 뒤따를 겁니다. e잉크는 전자책의 경험을 바꿔주는 도구지요. 백라이트나 청색광 등 눈에 피로를 주는 요소를 줄이고 종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콘텐츠를 보여주기 때문에 e잉크 단말기는 전자책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리디의 ‘페이퍼’ 시리즈는 리디북스의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 단말기입니다. 2세대 제품인 ‘페이퍼 프로’는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고, 아직도 1세대 페이퍼는 지하철에서 종종 눈에 띕니다. 그런데 리디는 왜 직접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까요? 전자책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리디북스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앱은 잘 만들었다는 평을 받습니다. 굳이 소프트웨어, 콘텐츠 기업이 하드웨어를 유통하고, 직접 개발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리디는 왜 페이퍼를 만들까요?

“리디는 전자책 회사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사업입니다. 하지만 기기를 통해서 봐야 합니다. 전자책은 보통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많이 읽지만 전자잉크에 대한 수요는 꽤 큽니다. 전자잉크 고유의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책과 비슷한 느낌, 또 집중해서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더 나은 e잉크 단말기를 원하는 만큼 단말기를 직접 개발, 공급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김승범 페이퍼 사업 본부장은 직접 전자책 단말기를 개발하는 이유로 ‘일관된 경험’을 꼽았습니다. 리디는 페이퍼를 내놓기 이전에도 e잉크 단말기용 앱을 내놓고 이용자들이 직접 안드로이드 기반 e잉크 단말기에 앱을 설치해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마트폰부터 태블릿, 외부 기기 등 리디는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기들에 대해 구분 없이 똑같은 경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리디에게 페이퍼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전자잉크를 통해 독서 경험을 더 끌어올리는 것에 대한 한 가지 방향성입니다. 물론 페이퍼가 모든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기기는 아닙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이 더 편하고 컬러로 된 만화는 태블릿이 더 낫습니다. 이용자들이 각 콘텐츠에 맞는 기기를 직접 골라서 쓸 수 있도록 모든 플랫폼을 열어야 합니다.”

페이퍼 프로는 리디가 만든 두 번째 세대의 전자책 단말기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출발부터 달랐습니다. e잉크 단말기가 아마존의 킨들을 제외하고는 판매량이 아주 높지는 않기 때문에 대체로 몇 가지 화이트박스 형태의 제품들이 있고, 여기에 최적화를 거쳐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페이퍼 프로는 비슷한 제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외의 전자책 서비스 업체가 페이퍼 프로를 수입했지요.

“사실 1세대 페이퍼는 기존에 제조사들이 어느 정도 기본 설계를 끝내 놓은 제품 중에서 하나를 골라 조금 손을 보고 소프트웨어를 얹는 방식이었는데 페이퍼 프로는 아예 백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미 1세대 제품을 통해 하드웨어에 대한 경험을 갖게 됐고, 기기에 대해 이용자들이 원하는 것과 리디가 원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 기기를 만드는 것이 사용 경험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습니다.”

김승범 본부장이 페이퍼 프로에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디스플레이라고 합니다. 7.8인치 디스플레이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일반적인 책과 가장 비슷한 판형으로 읽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한 프론트 라이트의 색온도를 조정할 수 있어서 눈이 편안하고 블루라이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잉크의 가장 큰 강점이 ‘눈이 편하다’인데 색 온도를 그때그때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이용자들의 바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지요. 또한 물리 버튼을 비롯해 페이퍼의 특징들을 더 살리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단말기를 만드는 목적은 이용자들이 책을 더 즐겁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독서 경험을 강화하는 데에 있습니다.”

서비스 기업이 사용자 경험을 토대로 하드웨어를 설계하는 것은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리디 페이퍼의 물리 버튼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 터치 외에도 딸깍딸깍 눌리는 버튼을 달고, 화면은 터치가 작동하지 않게 했는데 책 읽는 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페이퍼 프로는 이 버튼을 4개로 늘렸습니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페이지를 앞 뒤로 넘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 손으로 작동하기 편하게 한 것이겠지요.

페이퍼 프로의 가장 큰 변화는 오른쪽에 있는 ‘퀵 버튼’입니다. 이전 제품에 있던 홈 버튼을 없애고 단축키 역할을 하는 퀵 버튼을 넣은 겁니다.

“전자 잉크는 디스플레이 반응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정 기능으로 이동하기 위해 조작이 많으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퀵 버튼으로 자주 쓰는 기능들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도록 단축키들을 모아 놓고 전면 디자인은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했습니다.”

김승범 본부장은 이 디자인 역시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홈 버튼의 경우 터치 방식이었는데 손이 스치면서 잘못 눌리는 경우도 있고, 기기가 켜지면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시선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동그란 링이 예뻐 보이긴 하지만 간혹 불편할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입력을 잠그는 홀드 기능이 더해진 업데이트가 반가웠습니다. 또 하나, 전면에 버튼을 두면 테두리가 더 두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버튼을 떼어내면서 아래쪽 테두리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퀵 버튼을 도입한 두 번째 이유는 터치 잠금에 있습니다. 이전 페이퍼는 터치 잠금 모드를 켜고 끄려면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누르고 있어야 했는데 이 UI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별도의 버튼을 쓰는 것이 편리하다고 판단했고, 퀵 버튼의 중심 역할로 설정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책 읽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빼고는 모두 숨기는 것이 디자인의 기본 목표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테두리를 심플하게 하고, SD카드 커버에도 덮개를 씌웠습니다. 쉬운 듯 읽어내기 어려운 디자인 속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전체적으로 페이퍼 프로가 잘 질리지 않는 데에는 이런 단순함을 끌어내는 디자인도 한 몫 하는 듯 합니다.

리디는 지난해 대만의 전자책 회사 리무에게 페이퍼 프로를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리무는 페이퍼 프로에 대해 알게 된 후 기기에 만족하고 서비스 지향점 등이 비슷하다고 판단해서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리디 역시 단순히 기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는 파트너 관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제공자가 직접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기기는 분명 화이트박스 제품과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김승범 본부장은 리디가 페이퍼의 가치를 기기가 아니라 경험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전용 기기는 손이 많이 가는 사업입니다. 사실상 요즘 나오는 e잉크 전자책 단말기들이 열린서재 등으로 외부 앱 설치를 열어주는 상황에서 앱만 내놓는 것으로 서비스를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기기 구석구석 신경 썼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결국 앱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경험들을 기기로 옮긴 것 때문일 겁니다. 페이퍼 프로는 리디에게 하드웨어라기보다 손에 잡히는 소프트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