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현실’기반의 보수적 혁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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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모두가 빌 게이츠를 추앙할 때다. 그 때, 스티브 잡스는 철저히 잊혀진 존재였다. 10년 후, 2000년대, 아직 빌 게이츠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스티브 잡스를 무시하지 않는다.

왕은 귀환했다. 10년, 그 사이 IT를 중심으로 한 세상은 놀랍게 변했고, 그 세상은 빌 게이츠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를 택했다. 빌 게이츠가 그렇게 말하던 ‘변화의 속도’를 주도한 것은 MS가 아니라 애플이었다.

잡스가 돌아온 것이 ‘왕의 귀환’인 것은 그냥 비유가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왕이었고, 왕이어야만 했다. 맥킨토시를 통해서 상용화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의 진면목을 보일 때도, 아이튠스를 통해 디지털 음악 상거래 생태계를 구축할 때도, 아이폰을 통해 통신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을 재편성할 때에도 잡스는 늘 ‘왕’을 목표로 했다.

즉, 남이 만든 게임에 종속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그 것을 주도하는 길을, 그 것이 아무리 고된 길이라도, 그는 택해왔다. 그렇게 더 빨리, 더 많이 실패하면서 그는 오늘날의 스스로를 만들어 왔다.

나아가 그의 화려한 귀환은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애플이 만들어 내는 신천지는 신인류를 약속하는 듯 하고, ‘애플교의 교주’인 잡스에 대한, IT의 벽을 초월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것이다. 또한 그에 맞물려 애플의 디자인 중심 경영, 특별히 인문학과 IT의 접목에 대해서 많은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잡스 스스로도 이야기했지만, 인문학 중심 대학인 리드에서의 학습 경험과 젊은 시절 동양 철학과 사상에 탐닉했던 것이 그의 독특한 IT 세계관 구축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 사상을 학습하면, 혹은 좀 더 일반적으로 인문학과 IT를 같이 배운다면 잡스 같은 경영과 혁신을 일궈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대답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잡스 신화의 핵심이 ‘인문학과 IT의 교차’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 글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잡스는 철저히 현실적인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혁신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잡스가 이끌었던 혁명, 맥킨토시, 아이튠스, 아이폰 그 어느 것 하나도 잡스가 ‘최초’는 아니었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도, 디지털 음악 상거래 생태계도,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한 통신혁명도 이미 누군가가 앞서 해놓았던 일이다. 동시에 충분한 대중 시장(mass market)을 만들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실패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잡스는 그 일을 해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해냈고 이제 아이패드, 애플 TV 등을 통해서 네 번째 도전인 미디어 산업의 정복에 나서고 있다.

잡스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잡스가 이전의 기술 중심 기획에 결여돼 있던 인간성을 부여했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다. 더 착한 기업이 더 성공하는 기업이 되는 것은 모두가 소망하는 바이겠지만, 그것은 기대와 예측이지 현실과 실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예로 잡스 신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아이튠스를 보자. 여기에는 잡스가 할리우드에 갔을 때 배운 균형점에 관한 지혜가 담겨 있다.

21세기 초, p2p 파일공유 기술(peer 2 peer file sharing technology)에 의한 음악산업의 전복이 크게 이슈가 되던 때였다. 전통적으로 음악 산업계는 카세트, CD 등을 통해서 수익 구조를 창출해 냈다. 즉, 복제라는 가치가 중요한 수익원이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p2p 파일공유 기술은 이러한 전통적 상업적 유통망과 수익 구조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자신들만의 이용자 네트워크를 구축해, 그 네트워크를 통해서 파일을 공유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음악산업계의 이해관계만으로만 보면 당연히 선전포고이자, 전쟁의 시작이다. 자신들의 수익원을 바로 갉아먹는 p2p 파일 공유 기술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초기 p2p 파일 공유 기술부터 시작해서, 그 정점에 이르렀던 서비스였던 ‘냅스터’부터 이후 법정 공방의 핵심에 있었던 ‘카자’에 이르기까지 p2p 파일 공유 기술을 통한 서비스 업체와 이용자, 그리고 기존 음악 산업계의 이해관계 충돌은 치열했다.

사실 이것은 준법과 위법의 갈등을 넘어선 더 큰 이슈였다. 이것은 음악의 디지털화라는 새로운 산업 변화, 사회 변화에 맞춰서 어떻게 산업의 이해관계를 새롭게 구조조정하느냐는 근본적인 이슈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디지털 시대에서는 파일을 복사, 공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0’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했을 때 한계생산비용이 ‘0’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가격은 그 한계생산비용에 수렴하여 ‘0’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 DRM 같은 기술적 제한, 그리고 저작권법 강화 같은 법적 방어를 통해서 지대 추구 행위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파일 공유 기술은 동시에 문화적, 정치적으로 기존 상업적 유통망에서는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개방과 공유, 참여의 장을 만들어 내면서 웹 2.0 정신의 서곡을 울린 바 있다. 그런데 그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무시하고 이들을 단순 위법 대상으로 조치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던 냅스터와 달리 이 같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이해와 지지에 힘입어 카자는 법적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카자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카자의 ‘오픈’ 비즈니스 모델은 그 같은 무한한 자유를 약속하는 바람에 통제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직이 방대해지고 중심축을 잃은 카자는 곧 쓰레기 더미와 비슷한 곳이 되 버렸고, 경영진은 카자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오늘날 그 카자 개발진이 만든 새로운 신화가 전세계의 대표적 인터넷 전화(VoIP) 서비스인 스카이프다).

그렇다고 음악 업계도 기대했던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불법 다수 이용자에게 소송을 제기해 그들을 위협하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 역시 지쳐 버렸고, 한 편으로는 자신들 역시 이미 이용자들 다수에게 이 같은 오픈 컬쳐가 디지털 질서로 정착이 되어가고 있는 이상, 장기전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잡스가 한 일은 변화에 저항하는 데 지친 음악업계와 지저분해진 p2p 기술 서비스에 넌덜머리가 난 이용자들에게 깔끔하고 세련된 합의책을 제시한 것이었다.

콜롬비아 로스쿨의 통신법 전문가인 팀 우가 <인터넷 권력전쟁>(Who Controls the Internet)에서 지적한 대로, 이 합의책의 정체는 기존 음악 산업계의 이해관계의 틀은 존중하되 현실의 오프라인 권력에서 유지하고 있던 장벽보다는 온라인에는 그 벽을 크게 낮춘다는 것이었다(easy access model). 예컨대 음악 CD 한 장의 가격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한 곡 단위로 팔기 때문에 실제 구매 가격은 크게 낮출 수 있었고 그것을 서비스, 네트워크, 하드웨어 등과 긴밀히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그것이 잡스였다. 그가 한 일은 사실 새롭고 충격적인 일이 아니고, 그 새롭고 충격적인 일을 좀 더 세련되고 보수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한 면에서 잡스는 역설적으로는 ‘보수적 혁신가’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잡스가 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혁명가의 웅변과 대중의 잡담을 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전자의 이상을 후자의 소비를 위해 변화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잡스의 인문학은 고매한 철학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정신’이다.

따라서 진정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혁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할리우드로 갔을 때, 무엇을 깨닫고 다시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는 지를, 어떻게 그가 할리우드 남과 북의 조화를, 전통의 이해관계와 혁신의 가치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했는 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잡스에게 인문학이 있다면, 그것은 ‘IT 현실주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날개는 현실의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