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어떻게 쓸까” KEB하나은행이 풀어놓은 고민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블록체인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사업으로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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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만큼 금융 산업에 빠르게 침투한 기술이 또 있을까. 시장조사기관 IDC는 2018년 세계 블록체인 시장은 연평균 77%씩 성장해 2021년 시장 규모가 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 산업의 블록체인 기술 지출과 투자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해외 주요 금융기관은 금융 거래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호주 커먼웰스뱅크는 채권 거래 전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구현해 거래 효율성과 투명성을 개선에 나섰다. 비자(VISA)는 스위프트(SWIFT)망을 대체할 수 있는 기관 간 결제 플랫폼을 구축해 필리핀 은행 등 해외 결제와 정산 소요 시간을 단축했다. 캐나다임페리얼상업은행(CIBC)을 포함해 캐나다 주요 은행 5곳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신원 인증 모바일 서비스를 개발했다. 영국 소재 금융 그룹 HSBC는 R3 코다로 신용장 처리 전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신한은행은 이자율 스왑 플랫폼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도입했다. 동일한 채권을 두고 이자율만 스왑하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거래 당사자가 한꺼번에 정보를 확인한다. 그 덕에 거래 당사자 간 상호 확인과 정보 정합성 체크를 위해 소비되는 시간을 절감했다. 교보생명은 연계병원 간 소액 실손보험 자동 청구 시스템을 구축해 기존 실비 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했다.

블록체인에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KEB하나은행 글로벌 디지털센터 블록체인 신서비스팀 이성웅 팀장은 4월24일 진행된 ‘블록체인 테크&비즈니스 서밋 2019’ 컨퍼런스에서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EB하나은행 글로벌 디지털센터 블록체인 신서비스팀 이성웅 팀장

| KEB하나은행 글로벌 디지털센터 블록체인 신서비스팀 이성웅 팀장

KEB하나은행은 블록체인 관련 별도 팀을 구성해 국내외 현존하는 블록체인 사업 모델을 정리하는 식으로 블록체인에 접근했다. 기존 연구자료 아이디어 23건 분석, 블록체인 비즈니스 구현 사례 44건 분석, 은행 업주 적용 가능 사례 23건 분석, 각 부서별 신용 내용 13건 등 기존 블록체인 관련 자료, 시장, 업계 동향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분석한 비즈니스 모델만 103건에 이른다.

이처럼 꼼꼼한 조사도 부족하다고 보았을까. 이성웅 팀장은 블록체인 분야 비관론자로 꼽히기도 하는 누리엘 루미니 뉴욕대 교수 발언을 인용해 “많은 블록체인 사업은 아직 준비단계일 뿐,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없는 상태로 블록체인은 모든 면에서 과장된 기술일 수 있다”라며 금융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향후 2-3년 간 블록체인 기술 다수는 미숙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딜로이트는 깃허브에 올라온 블록체인 프로젝트 8만6034개 중 계속 진행 중인 것을 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은 산업과 사회를 혁신하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기술 성숙도 및 시장 규모는 태동기입니다. 아직 주목할 만한 성공사례가 없는 신기술 분야지요.”

이성웅 팀장은 주변 대세에 휩쓸려 떠밀리듯이 기존 금융 프로세스에 블록체인을 도입하긴 싫었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기존 프로세스로도 충분히 효율성 높게 구현할 수 있는 분야에 억지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기보다, 블록체인 도입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일지 조사를 거듭한 배경이기도 하다.

| KEB하나은행은 검토한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103개를 4개 유형별로 다시 구분해 다시 분석했다.

| KEB하나은행은 검토한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103개를 4개 유형별로 다시 구분해 다시 분석했다.

고민1. 은행이 할 수 있는 ‘블록체인’은 무엇일지 정의가 필요

이성웅 팀장이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검토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 뜻밖에도 암호화폐 영역이었다. 국내 대부분의 금융 서비스는 정부 규제와 허가 아래 이뤄진다. 하물며 은행업은 더하다. 문제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투기 양상을 보이면서, 정부가 “투기는 규제하되 블록체인 기술은 촉진하겠다”라는 입장을 발표하면서다.

이성웅 팀장은 “국내 ICO는 명확한 규제가 없는 영역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투기 자본으로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고 있기에 암호화폐 양성화 자체를 정부가 권장하지 않고 있다”라며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참여를 유도하는 보상 자체가 중요한 만큼, 정부와 기조를 맞추면서 은행이 할 수 있는 블록체인은 무엇이 있을지, 코인을 활용한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구현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어떻게 기술을 도입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고민2. 여전히 존재하는 블록체인 거래 속도 문제

은행 서비스는 지급, 결제 업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부분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효과를 보자 하니 거래 속도가 걸림돌이 됐다. 가게에서 카드 결제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카드를 내밀고 순식간에 거래가 끝난다. 이 결제가 바로 이뤄지지 않고 10분이 걸린다고 상상해보자.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 해도 사용자 입장에서 사용하기 불편할 수밖에 없다. 지급결제 거래는 속도가 필수다.

“지급결제 거래를 블록체인으로 구현하면, 일상 거래에 적용하기 힙듭니다. 저희도 내부적으로 시험을 해봤는데, 원하는 거래 속도가 나오지 않더군요. VISA의 처리속도는 24,000TPS라고 하는데, 이더리움은 20TPS에 불과합니다. 이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면 속도 개선이 필수입니다.”

이성웅 팀장은 실시간 지급결제 거래는 여전히 속도가 필수라며, 이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았다. 블록체인 도입 검토할 때 만난 기업이 1만-2만TPS는 기본으로 지원하고 10만-100만TPS도 지원한다고 해서 자세히 살펴보면 합의 알고리즘을 간소화 하거나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조합한 형태가 많았다고도 지적했다.

“속도가 빠르다고 무조건 좋은 블록체인일까요.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 여기서 더 간소화한 방식인 DPoS(위임지분증명) 등 속도를 높이기 위한 합의 알고리즘 개선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은 속도 못지않게 안정성도 챙겨야 합니다. 지급결제 거래에서 바로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꼭 고민할 부분입니다.”

고민3.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을 하지 말자

많은 기업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격으로 꼭 블록체인을 도입할 이유가 없는데도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곳도 있다. KEB하나은행도 지난해 TF팀을 꾸리고 블록체인 서비스를 검토할 때 비슷한 고민에 부딪혔다.

| KEB하나은행이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때 고려한 점

| KEB하나은행이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때 고려한 점

“특히 은행이라면, 이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있는지, 고객과 은행에 도입이 되는지, 블록체인 구축 이유가 있는지 등 뜯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솔루션, API 연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괜히 주위 이목에 블록체인으로 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KEB하나은행은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블록체인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사업으로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검토하겠다고 내부 방침을 정했다. 블록체인 사업의 성패는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에 달려 있기 때문에 기준과 다른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고민 끝에 올해 5-6개 블록체인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 KEB하나은행이 그리는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방향

| KEB하나은행이 그리는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방향

“저희 혼자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금융 거래 적용할 수 있는 분산원장을 구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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