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어떻게 드라마가 됐을까…’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작가는 '포켓몬 고'에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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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증강현실(AR) 게임을 소재로 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기존 드라마 팬층을 비롯해 게이머, 심지어 IT·게임 업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그만큼 게임과 드라마는 서로 거리가 먼 존재였다. 게다가 AR이라는 최신 기술이 더해지자 드라마의 파급력은 기존 드라마 수용자층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았다.

| 송재정 작가는 ‘2019 NDC’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게임과 드라마 콘텐츠의 융합’을 주제로 발표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주인공이 AR 게임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드라마다. ‘스마트렌즈’를 착용하면 현실에 덧대어진 증강현실 그래픽이 나오며, 주인공은 실제처럼 칼을 휘두르는 병사들과 싸운다. 왜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제작되지 않았을까. 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왜 AR 게임을 소재로 채택했으며, 이를 드라마로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송재정 작가는 지난 4월25일 ‘2019년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제작 후일담을 들려줬다.

게임과 드라마는 한국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축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수용자층을 가졌다는 점에서 두 산업은 따로 떨어진 채 성장해왔다. 드라마 업계는 30~40대 여성층을 주된 시청자층으로 바라본다. 게임은 30대 이하 남성이 주 이용층으로 꼽힌다. 두 산업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실제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제작진은 게임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게임과 드라마가 융합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조금 더 간단하다. 바로 돈 문제다.

“게임은 익숙한 장르였으나, 드라마로 집필 못 한 이유는 제작비 문제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프린세스 메이커’, ‘문명’, ‘대항해시대’ 등을 즐겨하던 송재정 작가에게 게임은 익숙한 장르였다. 하지만 송 작가는 게임을 드라마화했을 때 CG 등 제작비 문제가 커 드라마로 쓸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이질적인 두 장르를 융합했을 때 시청자층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 AR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

송재정 작가가 발견한 돌파구는 모바일 AR 게임 ‘포켓몬 고’였다. 본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동명의 클래식 명곡을 소재로 한 타임슬립물로 기획됐다.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W’ 등 시간이나 차원을 이동하는 ‘타임슬립물’에 익숙한 송재정 작가는 후속작으로 같은 장르의 드라마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같은 장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염증을 느꼈고, 그러던 와중에 ‘포켓몬 고’를 접하게 됐다.

“제작비로 수용할 수 있는 게임 소재를 찾았다. 그게 증강현실이었다.”

송 작가는 포켓몬 고를 통해 영감을 받았다. 모바일 기기가 아닌 바로 눈앞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AR 게임을 상상했다. 그리고 AR을 매개로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게임 소재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았다. 영화 ‘아바타’처럼 전체를 CG로 하지 않아도 AR로 표현되는 일부분만 CG로 처리하면 제작비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스마트렌즈’를 개발 중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자문을 받아 상상을 구체화했다. 여담으로, 송 작가는 포켓몬 고를 재밌게 즐기지는 못했다고 한다. 포켓몬 세대가 아닌 탓이다.

현실에 기반을 둔 AR 기술의 특성상 CG를 일부만 적용하면 됐고, 부족한 부분은 해외 로케이션을 통해 메꿨다. 드라마는 스페인 남부 도시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마치 판타지 게임과 같은 느낌을 준다. 드라마 전체에 CG를 입히는 것보다 제작비는 대폭 줄어들었다. 송 작가는 AR을 소재로 CG 제작비를 아껴 드라마가 수익을 내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AR 게임을 소재로 제작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출처=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송 작가는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뛰어든 무모한 도전이었다”라며, “제대로 된 게임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욕심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며, 스토리를 먼저 만들어 놓은 뒤 매개체로 증강현실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타임슬립물로 기획된 드라마를 AR 게임을 소재로 변주했다는 얘기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는 제작진이 게임에 친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촬영 감독을 비롯해 주인공인 배우 현빈 씨까지 대부분 게임을 해본 사람이 없었으며, 대본을 보고 어떻게 영상으로 그려질지 잘 몰랐다고 한다. 같은 대본을 보고 각자가 다른 그림으로 이해할 정도였다. 특히 액션씬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검을 뽑기 전, 뽑으면서 CG로 나오는 장면, 가짜 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따로 찍어야 했으며, 간단한 CG 같아 보이지만 이를 표현해내기 위해 촬영장에서 많은 노고가 있었다.

| 손에서 검이 만들어진다.

| 증강현실 검을 드는 장면 (출처=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또 드라마 시청자에게 어느 수준까지 게임의 깊이를 보여줄지도 문제였다. 게임 이용자와 드라마 시청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게임 세계의 디테일을 어느 정도로 그려낼지가 관건이었다. 송 작가는 게임 개발사 전문가를 만나 자문을 받고, 게임에 문외한인 두 보조작가의 피드백을 받아 이를 조율했다. 전문가들은 디테일한 게임 세계를 더 보여주길 원했고, 게임을 잘 모르는 보조작가는 극 중 로맨스를 강조했다.

결국 송 작가는 드라마에 레벨업, 아이템 획득, 무기상, 적, 대결, 퀘스트 등 기본적인 게임 개념만 남겼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런 기초적인 게임 개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고충을 겪었다고 전했다.

송 작가는 “첫 방송이 나간 뒤 맘카페를 살펴보다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시청률 지표상 현빈이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청률이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2회부터는 기존 드라마 시청층인 30~40대 여성층이 확 떨어졌다. 대신 남성과 10대 시청자가 늘었다. 송 작가는 시청층 교체를 통해 드라마가 안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혹스러운 반응을 많이 봤다. 우리나라 수많은 인구가 게임을 하는데, 게임 채널도 있고 강국인데 잘만 만들면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게임은 게임 하는 사람만 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당황했다.”

드라마에 대한 피드백도 다양했다. 게임 얘기가 나올 때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송 작가는 “게임 진전을 스토리 진전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라며, “게임은 가짜의 싸움이기 때문에 스토리라고 생각 안 하는 사람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또 “드라마 속 게임에서 레벌업이 되는 걸 재밌게 보는 사람들은 왜 게임이 안 나오고 사랑 얘기를 하냐며 나무랐다”라고 전했다. 게임과 게임이 아닌 부분을 엮어 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아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었다고 토로했다.

송 작가는 AR 게임을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제작진의 시행착오, 배우들의 톤 조정 등 촬영 기간과 대본 작업이 전체적으로 늦어졌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사전 제작으로 기획됐지만, 방송 종료와 동시에 작업이 끝났다. 송 작가는 “시간과 제작비가 더 있었다면, 조금 더 엔딩이 멋있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신선한 소재와 전개, 현빈과 박신혜 두 배우의 조합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용두사미’ 드라마였다는 혹평을 받았다.

송 작가는 “나름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멘붕’이었다”라며, “시즌2를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기 위해 열린 결말로 썼다”라고 말했다.

SF적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SF가 아닌 게임 소재 판타지 드라마”라며, “증강현실이라는 과학적인 소재를 택하면서 시청자들이 헷갈렸을 것 같은데 서툰 저의 잘못 같다”라고 전했다.

| 강연이 끝난 뒤 현장에서는 송재정 작가의 팬 사인회가 자연스럽게 열렸다.

송 작가는 앞으로도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제작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게임의 레벨업 구조와 드라마 속 성장 서사가 유사하며, 일반 드라마에서 보여줄 수 없는 판타지적 요소를 보여 줄 수 있어 드라마 작가 입장에서 게임은 매력적인 소재라고 전했다. 송 작가는 “앞으로도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제작해볼 계획이다”라며, “여러 도움을 받아 걸음마를 띄웠으나 본격적인 게임 드라마를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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