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지방’ 텅텅, 편지는 옛말…스마트폰 반입이 바꾼 군 풍경

사회와 연결 고리가 된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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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에 사람이 사라졌다. 군대 내 PC방으로 불리는 ‘싸지방’은 일과가 끝나면 발 디딜 틈 없이 병사들로 붐볐다. 군부대에서 바깥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4월1일 병사 휴대폰 사용이 허용된 이후 풍경이 바뀌었다. 병사들도 부대에서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수십년 간 정체됐던 군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4월부터 전면 허용된 병 휴대폰 사용

국방부는 4월1일 일과 이후 병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했다. 지난해 4월부터 일부 부대에서 시범운영을 진행하면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지난 12월 ‘군인복무정책 심의위원회’를 통해 전면 시행을 결정했다. 국방부는 “장병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고 사회와의 소통, 자기개발 기회 확대, 건전한 여가선용 등을 위해” 병 휴대전화 사용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 4월1일부터 병사들도 부대에서 개인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됐다. (출처=국방일보)

이동통신 3사는 국방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요청으로 병 맞춤형 요금제를 신설해 내놓았다. 3만3천원에 일일 2GB(데이터 소진 후 속도 제한)를 제공하는 요금제와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5만5천원 요금제로 구성됐다.

휴대폰을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과 시간 이후에 개인 휴대폰을 지급받고 취심 시간 이전에 반납하는 식이다. 평일에는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휴일에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일부 보안 취약구역을 제외한 부대 내 모든 장소에서 쓸 수 있다. 주로 지휘통제실, 행정반, 통신실 등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 통신 3사는 군 병사 전용 요금제를 출시했다. (출처=SK텔레콤)

‘통신보안’을 위해 카메라와 녹음 기능 사용은 제한된다. 현재는 보안 시설을 출입하듯이 스티커를 카메라에 부착해 사용한다. 국방부는 올해 3분기 중 촬영과 녹음 기능을 제한하는 스마트폰 앱을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병사 휴대폰 사용이 제한된 이유는 보안 문제 때문이다. 40만명에 달하는 현역 병사들이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 군 기밀 유출을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우려다.

하지만 국방부는 “간부의 경우 특정 상황 외 촬영 기능 등을 통제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으나 특별한 문제는 없었으며, 병 휴대전화 사용 시범운영 간에도 군사기밀 유출 등 보안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라며 보안 우려에 대해 반박했다. 군 관계자는 “아직까지 식별된 보안 문제는 없다”라고 말했다. 군은 자율과 책임에 방점을 두고 휴대폰 사용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달 만에 달라진 수십년 병영 문화

외부와 단절돼 생겼던 독특한 군 문화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최근 전역한 예비역 병장 ㄱ씨는 “개인 정비 시간 때 항상 켜져 있던 TV는 꺼져있고, 사람이 붐비던 ‘싸지방’은 텅텅 비어있고, 장난과 말이 정신없이 오가던 생활관은 많이 조용해졌다”라며, “PX 가는 걸 깜빡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현역 이등병 ㄴ씨도 “휴대폰을 사용하느라 생활관 바깥으로 잘 나가지 않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병사들이 스마트폰으로 주로 하는 활동은 SNS와 모바일 게임이라고 답했다. 부대 내 ‘싸지방’과 오락실을 스마트폰이 대체한 셈이다. 현역 대위 ㄷ씨는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아직 휴대폰을 받지 못한 이등병 한두 명만 싸지방을 이용한다”라고 전했다.

일선 부대에서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스터디 모임을 하는 등 스마트폰을 통한 자기개발 활동을 홍보하고 있다.

편지로 소식을 전하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군에 입대한 동생을 둔 이지형 씨는 “편지를 집으로 일주일에 두 세 통씩 보내던 동생이 이제는 그냥 휴대폰으로 전화만 한다”라고 말했다. 부대 공중전화 앞에서 길게 줄을 늘어서던 모습도 없어졌다.

장병 모두 만족, 느린 데이터 통신은 불만족

사회와 단절된 군부대에서는 병사들만의 독특한 놀이 문화가 나타났다. 군 내부 정보망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 연예인 사진과 자작 소설을 공유하는 문화가 대표적이다. 주로 PC 사용 시간이 많은 행정병 사이에서 암암리에 공유됐다. 간부와 병사들 사이의 숨바꼭질이 펼쳐지기도 했다. 본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는 인트라넷 게시판이 발각되면 다른 게시판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마치 PC 통신 시절을 연상시키는 놀이 문화는 사회와 유리돼 즐길 거리가 없는 군 문화를 방증한다.

| 스마트폰이 군과 사회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국방일보)

장병들은 스마트폰이 군부대에서 사회와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예비역 병장 ㄱ씨는 “친구에게 쉽고 빠르게 연락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다 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로워지고 밝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역 이등병 ㄴ씨는 “휴대폰을 통해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조직 생활을 하면서도 나만의 공간에 있는 느낌을 받고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간부들은 바빠졌다. 병사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역 준위로 복무 중인 ㄹ씨는 “불출할 때, 반납받을 때 서명을 받고 확인하고, 순찰 다니면서 쓰면 안 되는 지역에서 쓰진 않는지, 엉뚱한 사진을 찍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하는 등 간부는 일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현역 대위 ㄷ씨는 “불법적 사용이 우려돼 처음엔 부정적이었는데 사용하다 보니 통제를 잘 따르고 문제가 없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현역 대위 ㅁ씨는 “초반에는 병사들이 스마트폰에 과몰입해 여가 시간에 운동하는 모습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유튜브를 보면서 운동을 하는 등 갇혀 있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서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이다”라고 전했다.

일부 부대에서는 네트워크 데이터 속도가 느리다는 불만도 나온다. 경기도 파주 지역에 근무한 ㄱ씨는 “가끔 아예 카톡이 안 가거나, 무한 로딩이 걸리기도 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남 창원 지역 부대에 근무 중인 ㄴ씨는 “많은 병사들이 같이 사용하다 보니 데이터가 느려질 때가 자주 있다”라고 말했다.

강원도 지역에 근무하는 ㄹ씨는 “이동통신사에 민원을 넣어 통신 장비를 새로 설치하고 나서야 통신 품질이 좋아졌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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